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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또 항공기 사고... 기내 '보조배터리' 안전 괜찮나

입력
2025.01.30 18:10
수정
2025.01.30 18:1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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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에어부산 항공기 내에서 불
항공업계 "보조배터리 화재 가능성 높아"
운송 규정 깐깐하지만 관리는 어려워
전문가들 "수하물 규정 강화할 필요"

29일 오전 부산 김해공항에서 박형준 부산시장 등이 에어부산 항공기 화재사고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부산시 제공

29일 오전 부산 김해공항에서 박형준 부산시장 등이 에어부산 항공기 화재사고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부산시 제공

제주항공 참사 한 달 만인 28일 부산 김해국제공항에서 여객기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불길이 기체를 완전히 덮치기 전 탑승객 176명이 전원 탈출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다만 항공기가 반소된 큰 화재였던 데다 제주항공 참사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항공 안전에 대한 우려가 더욱 확산하고 있다. 특히 이번 화재가 보조배터리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추정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면서 기내 수하물 관련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30일 에어부산과 탑승객 증언 등을 종합하면, 28일 밤 10시 15분쯤 김해공항에서 발생한 에어부산 BX391편 화재는 기내 오버헤드빈(머리 위 선반)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사고기에 탔던 승무원들은 "기체 후미인 좌석 28열 선반에서 발화를 목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잇따르는 배터리발 추정 화재...해외도 마찬가지

항공업계 안팎에선 짧은 시간에 좁은 공간에서 불이 난 점을 고려할 때 보조배터리를 발화점으로 지목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최근 기내에서 발생하는 화재 대부분은 보조배터리가 원인인 경우가 많았다"며 "선반에서 갑작스럽게 불똥이 튀는 정도로 발화되고, 이 불이 잦아들지 않고 여객기 전체로 번질 수 있는 물체는 사실상 리튬 보조배터리 정도밖에 없다"라고 추정했다.

보조배터리는 주로 리튬메탈 혹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해 불이 나거나 심할 경우 폭발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지난달 12일에도 김해공항을 출발해 일본 후쿠오카로 향할 예정이던 에어부산 BX142편 항공기 내에서 보조배터리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해 4월 김포공항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OZ8913편에서도 선반에 있던 보조배터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고가 있었다. 두 사고 모두 승무원들이 빠르게 대응해 화재가 초기에 진압됐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자국 항공사들로부터 보고받은 '리튬 배터리(배터리, 보조배터리, 전자담배, 휴대폰, 노트북 등) 사고 현황'을 보면, 2020년 39건이던 사고는 2021년 54건, 2022년 75건, 2023년 77건, 2024년 78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2006년에서 지난해까지 발생한 587건의 리튬 배터리 사고 중 74.6%(438건)가 화물기가 아닌 여객기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탑승 후엔 관리 어려워... "직접 소지 확인" 등 규정 강화 지적도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집계한 리튬 배터리 사고 현황. FAA 홈페이지 캡처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집계한 리튬 배터리 사고 현황. FAA 홈페이지 캡처

위험성이 큰 만큼 국내외 항공 운송 기준은 리튬 배터리 운송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방침과 국토교통부 고시에 따르면, 전자장비 중 리튬메탈 배터리를 사용한 경우에는 리튬 함량 2g 이하,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한 기기는 배터리 용량이 100와트시(Wh) 이하면 위탁수하물로 부치거나 기내에 휴대하는 것 모두 가능하다.

보조배터리에 대한 규제는 더 까다롭다. 같은 용량이어도 짐으로 부칠 수는 없고 탑승객이 기내에 들고 탈 때에만 반입이 가능하다. 100Wh~160Wh 용량 배터리를 장착한 전자기기·보조배터리는 항공사 승인을 받아야만 기내에 가지고 탈 수 있다.

문제는 리튬 배터리가 기내 수하물로 실린 후다. 리튬 전지 특성상 압력과 충격에 취약해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탑승 후엔 관리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승무원 입장에서는 선반에 여러 탑승객의 짐을 꽉 채워 실어야 하는 탓에 보조배터리나 전자기기 위로 다른 수하물이 얹어지는 경우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 항공사에선 '선반에 싣지 말고 직접 소지해달라'는 방송 안내를 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권고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유사한 사례가 계속 발생하는 만큼 수하물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리튬 배터리 관련 물품의 탑승객 직접 소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강화하거나 배터리 자체의 품질 수준을 평가하는 식이다. 고승희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보조배터리 시장 가격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품질 인증이 되지 않고 연식이 오래된 제품을 주의 없이 사용하는 경우도 많아 사고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제작 연도를 표시해 승무원과 탑승객 모두가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등 관련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발화점 단정 아직 어려워... 조사 지켜봐야"

다만 아직까지는 발화점이 보조배터리가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꼭 보조배터리가 아니더라도 충전식 고데기, 전자담배가 작동하면서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화재 원인을 단정 짓긴 어렵다"고 말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관계자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신지후 기자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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