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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민주당이 놓치고 있는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요즘 당내 통합 행보에 열심인 모양이다. 13일 친문재인계 적자로 불리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만난 데 이어 김부겸 전 국무총리,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의 회동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이들은 탄핵 정국에서 민주당이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황과 관련해 이 대표에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통합'을 요구한 비이재명계 인사다. 이 대표의 행보가 썩 자의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친이재명계는 '이재명 일극체제'라는 비명계 비판을 달갑잖게 여긴다. 탄핵 정국에서 이 대표에 대한 비판이 되레 상대 당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잔뜩 경계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작은 차이로 싸우는 일은 멈추고 총구는 밖으로 향했으면 한다"라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친명계는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지난해 총선을 거치며 "치욕 속에 당을 떠난 분들에게 사과하라"는 김 전 지사의 요구에 "나갈 만한 이들이 떠난 건데 무슨 사과냐"는 반응이 많다. '친문계가 주류였을 때 통합 행보를 했었느냐' '문재인 정부가 성공했으면 지난 대선에서 졌겠느냐'는 비판이 깔려 있는 셈이다. 비명계는 당내 다양성과 역동성 부족의 원인을 이 대표와 친명계에서 찾는다. 지난 총선의 '비명횡사' 공천,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85.4%란 압도적 득표율로 이 대표가 연임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로 정권교체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민주당이 지지층조차 온전히 품지 못하는 것은 경쟁자 제거에 몰두한 이 대표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친문계에선 물론 문 정부가 윤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책임은 인정한다. 다만 민주당 대선후보 중 역대 최다득표(1,614만7,738표)를 하고도 패한 것은 이 대표의 한계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양측이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봐선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 민주당의 지난 대선 패배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와 대선후보였던 이 대표의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친문계는 이 대표의 한계를 주장하기 전에 부동산 급등, 소득주도성장 실패, 대북정책 등을 돌아봐야 한다. 이 대표는 경쟁 세력의 이견에 가시 돋친 말을 내뱉거나 충분한 토론 없이 민주당이 유지해온 가치와 노선을 벗어난 정책을 발표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이 없다면 서로 악수하고 대화를 나눠본들 대선용 의례적 행사일 뿐이다. 대선은 지지층 결집 대결로 승부가 갈리지 않는다. 결국 중도 확보 싸움인데, 민주당 통합만으로 중도가 절로 따라오지 않는다. 민주당이 탄핵 찬성을 고리로 한 정당과 시민단체 등이 함께하는 '헌정수호연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배경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탄핵 찬성 세력의 중심축이 되려는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탄핵에 찬성하는 중도층이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친문계와 친명계를 관통하는 정치 문화다. 팬덤에 기반해 당권을 잡았던 친문계와 친명계는 비주류를 향한 강성 지지층의 도 넘은 문자폭탄, 18원 후원금, '수박'이란 조롱 등을 철저히 모른 척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념' 발언 역시 포용이 아니라 배제를 부추겼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민주당 주류가 팬덤에 취해 강성 지지층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사이 언로를 잃은 비주류와 중도층이 소리 없이 등을 돌렸다. 민주당이 이제 와서 국민의힘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고 멘붕에 빠질 게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 문화에 대한 불신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이에 대한 자성과 개선이 따르지 않는다면, 이 대표가 비명계를 만나고 실용주의를 내세워 친기업과 성장을 외친다고 해도 중도층은 마음을 쉽게 열지 않을 것이다. 확실한 정권교체를 위한 민주당 대선후보가 누구냐는 그다음 고민할 문제다.

지평선

한국은행은 왜 금을 싫어할까

‘금 사재기’ 열풍이다. 너도나도 금을 사겠다고 난리다. 하루 금 거래액이 사상 처음 1,000억 원을 돌파(5일)한 이후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순금 한 돈(3.75g) 가격이 60만 원이 넘는데도 ‘트럼프 효과’로 '더 오른다'는 기대감이 팽배하다. 급기야 한국조폐공사가 시중은행을 통한 골드바 판매를 중단했다.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해서다. □이런 와중에도 금을 기피하는 기관이 있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다. '금 보기를 돌같이 한' 지 12년째다. 각국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금을 사들이는 것과 정반대 행보다. 지난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사들인 금은 1,185톤에 달한다. 당연히 금 보유량 순위도 뚝뚝 떨어진다. 2013년 32위에서 작년엔 38위까지 내려앉았다. 외환보유액(4,110억 달러)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9위이지만, 금 비중은 1.2%로 꼴찌다. 평균(24.6%)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한은이 현재 보유(104.4톤)한 금의 대부분(90톤)은 2011년에서 2013년 초에 사들였다. 당시 김중수 총재의 '과감한' 결단이었다. 그 이전까지 한은은 금 매입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금값은 계속 오르는데 “이자 없는 무수익 자산인 데다 위기 시 현금화가 쉽지 않다”는 신중론 뒤에 숨어 번번이 매입 타이밍을 놓쳤다. 하지만 하필 ‘상투’였다. 매입 당시 온스당 최대 1,900달러이던 금값은 줄곧 내리막을 걸으며 2016년 1,00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이번엔 ‘고가 매입’으로 여론 질타를 받아야 했다. □사도 욕 먹고, 안 사도 욕 먹는 ‘금 트라우마’ 속에 한은은 다시 ‘안 사고 욕 먹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이 불붙인 관세 전쟁에 국제 금값은 조만간 온스당 3,000달러를 돌파할 거란 예상이 줄 잇는다. 만약 2016년 사들였다면 수익률이 200%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한은은 △과도한 변동성 △보관 비용 △낮은 유동성 등의 이유를 댄다. 2010년 이전과 똑같은 논리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답도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건, 실력의 문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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