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당일에도 국수 뽑은 '이모카세 1호'...한복에 구두 신고 시장서 요리하는 '흑수저 요리사'

화제의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100명의 요리사가 보여준 '인간극장'이었다. 배달 노동자 출신 '중식 4대 명장' 여경래부터 15년 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책임진 '급식 대가' 이미영까지. 그들이 내놓은 음식엔 손맛을 넘어 굴곡진 삶이 배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온라인엔 "먹고살기 위해 바닥부터 시작한 그들의 삶과 정체성, 꿈이 요리에 다 깃들어 있어 눈물 났다"등의 시청 후기가 줄줄이 올라왔다. 톱8까지 살아남은 김미령('이모카세 1호'·50)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한국계 미국인인 에드워드 리(52)는 정체성 혼란을 요리로 승화했다. '결핍의 음식'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보여준 게 두 요리사의 공통점. 다음은 흑·백 계급을 넘어 음식으로 '인생의 맛'을 보여준 두 셰프 중 김씨의 얘기다. 지난 4일 낮 12시 40분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신관 지하 1층 '안동집 손칼국시'. 초등학생 5학년과 3학년이라는 두 어린이가 엄마 임모(43)씨와 함께 경기 구리시에서 이 노포를 찾았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김씨가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가게다. 임씨는 "'흑백요리사'를 보고 아이들이 '이모카세 1호님 국수 너무 먹고 싶다'고 졸랐는데 마침 오늘이 학교장 재량 휴업이라 점심 먹으러 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노포 옆엔 좌판을 따라 20m 넘게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김씨가 담백한 멸치국물에 얼갈이배추를 넣어 끓여 '흑백요리사'의 인생 요리 미션에서 백종원·안성재 두 심사위원을 사로잡은 국수를 먹어보기 위해 몰린 행렬이다. 김씨는 "전통시장이 침체기였는데 젊은 분들이 많이 찾아와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 국수는 김씨가 가난으로부터 오랫동안 빚어낸 음식이다. 사연은 이렇다. 중학교 2학년 때 그의 아버지는 사업 부도 후 뇌출혈로 쓰러졌다. 2층 양옥집에서 살던 김씨의 가족은 지하 단칸방으로 쫓기듯 내몰렸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경동시장에서 국수 장사를 시작했다. 김씨는 "학교 다닐 땐 이 국수가 가난의 상징 같아 너무 먹기 싫었다"고 말했다. "창피해 너무 가기 싫었지만" 그는 학교가 끝나면 교복을 입은 채로 시장에 가서 배추와 파를 다듬고 설거지를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배우던 발레도 포기했다. 어머니가 당뇨합병증으로 눈이 어두워지자 김씨는 20대 때부터 이 노포를 책임졌다. 두 아이를 출산한 당일까지 가게에서 국수를 뽑았다. "임신해 배가 나온 채로 일하다 보니 국수 삶는 불에 앞치마를 계속 태워 먹기도 했다"고 그는 말했다. 김씨는 '흑백요리사'에서 '요리 신스틸러'였다. 레스토랑 팀전 미션에서 주목받은 건 비싼 고급 요리, 즉 파인 다이닝 셰프들이 내놓은 캐비아 장식이 아닌 그가 참기름과 들기름을 섞어 잰 소박한 김구이였다. 정교하고 화려한 기술이 아닌 평범한 손맛의 힘이다. 김씨는 "김은 우리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자 해외에서도 선호하는 음식"이라며 "한식으로 하나의 메시지를 주고 싶어 김구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만난 김씨는 분홍빛 한복 저고리에 올림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국수를 삶았다. 그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전통시장에서 한복과 구두를 곱게 차려입고 국수를 삶아내는 요리사라니. 시장에서도 늘 당당하게 요리했던 그에게 '흑백요리사'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그는 "결혼해서 아이 키우고 부모님 모시며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왔다"며 "''흑백요리사'는 내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의미를 뒀다.

졸면서 음식 만든 '흑백요리사'들...백종원 '안대 심사' 10분 전 발표에 '멘붕'이었다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안대 심사'에 당황한 건 백종원·안성재 두 심사위원뿐만이 아니었다. 요리사들은 혼비백산이었다. 준비한 음식을 접시에 어떻게 담을지에 대한 구상이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요리사 '승우아빠'(본명 목진화)는 "일대일 경연 당일 요리 시작 10여 분 전에 제작진이 '오늘은 블라인드 심사입니다'라 공지했다"며 "'요리 과정이나 시각적인 것도 당연히 심사요소겠지'라고 생각하고 다들 조리 시간을 초 단위로 맞춰 준비했는데 도저히 그 짧은 시간에 새 요리로 바꿀 수가 없어 '멘붕'(멘털 붕괴) 온 요리사들이 절반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경연 과정은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출연한 요리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일대일 경연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은 '시식 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흑·백 요리사 혼합 팀전이 벌어진 레스토랑 미션에선 셰프들이 경연장 인근 마트에서 식재료 등을 직접 구했는데 포장이 조금이라도 뜯긴 재료는 사용이 금지됐다. 외부에서 가미를 하는 등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경연은 '극기훈련'이 따로 없었다. 레스토랑 미션이 끝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36시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경연에 참여한 에드워드 리는 "사탕을 먹으며 잠을 쫓았다"며 "서서 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번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유명 셰프들 섭외 과정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안유성 요리 명장은 "3, 4개월 동안 제작진의 출연 제의를 완강히 거절했다"며 "'('백수저' 팀에) 호남 출신 셰프가 한 명도 없다'는 말을 듣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계급을 떠나 존중의 경연으로 주목받은 '흑백요리사'는 후반 팀전에서 '요리사 방출' 규정을 둬 "불화를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학민 PD는 "다양한 경쟁의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흑백요리사' 최종 우승자는 이달 8일 공개된다.

"썰어 먹는 비빔밥이 내 정체성"...'백수저' 셰프 에드워드 리가 한국 온 이유

화제의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100명의 요리사가 보여준 '인간극장'이었다. 배달 노동자 출신 '중식 4대 명장' 여경래부터 15년 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책임진 '급식 대가' 이미영까지. 그들이 내놓은 음식엔 손맛을 넘어 굴곡진 삶이 배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온라인엔 "먹고살기 위해 바닥부터 시작한 그들의 삶과 정체성, 꿈이 요리에 다 깃들어 있어 눈물 났다" 등의 시청 후기가 줄줄이 올라왔다. 톱8까지 살아남은 김미령('이모카세 1호'·50)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한국계 미국인인 에드워드 리(52)는 정체성 혼란을 요리로 승화했다. '결핍의 음식'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보여준 게 두 요리사의 공통점. 다음은 흑·백 계급을 넘어 음식으로 '인생의 맛'을 보여준 두 셰프 중 에드워드의 이야기다. "포크로 먹어야 돼? 숟가락으로 먹어야 돼? 얼마나 정체성이 혼돈스러웠을까 이해가 되네." 백종원은 '흑백요리사'에서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 셰프가 인생 음식 미션에 선보인 '참치 비빔밥'을 보고 이렇게 심사평을 한 뒤 최고점을 줬다. 에드워드 리는 밥에 김치 등을 넣어 비벼 주먹밥처럼 만들고 기름에 튀긴 뒤 그 표면을 생참치로 감싸 비빔밥을 완성했다. 그가 내놓은 비빔밥은 칼로 썰어 숟가락으로 먹어야 한다.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는 "한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문화가 내 안에 있다"며 "여러 재료가 섞여 하나의 맛을 내는 비빔밥이 바로 나"라고 말했다. 재미동포 2세인 에드워드 리는 어려서 미국 영화 '미나리' 속 순자(윤여정)의 손자처럼 자랐다. '미국 남부와 한국 요리의 비밀을 드러내다'를 주제로 제작된 그의 다큐멘터리 영상 등을 보면, 그는 일하느라 바쁜 부모 대신 할머니 손에 컸다. 할머니가 부엌에서 해준 음식을 보며 요리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할머니의 레시피는 특별하다"며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통해 가족이 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간장과 고추장 등 한국의 장은 그에게 영감의 원천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가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된장을 활용한 디저트 등을 만든 배경이다. 에드워드 리는 '흑백요리사'에서도 묵은지를 활용해 샐러드 소스를 만들었다. 그는 최근 미국의 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개인전에선) 일부러 한국식 요리만 했다"고 말했다. 미국 유명 요리 경연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2010) 등에서 우승했지만, 에드워드 리가 탄탄대로만 걸은 건 아니다. 2001년 미국 뉴욕 9·11 테러 이후 그는 맨해튼 중심가에서 운영하던 식당 문을 닫았다. 큰 충격을 받아 방황했고, 미국 남부로 터전을 옮겼다. 낯선 곳에서 다시 연 식당엔 6개월 동안 저녁 손님이 하루에 4, 5명밖에 오지 않았다. 현지 요리를 꾸준히 개발해 다시 손님을 끌어모은 그는 '흑백요리사' 제작진으로부터 이메일로 출연 요청을 받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경연에 참여했다. '두 번 다시는 요리 경연쇼에 나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에서 열리는 쇼"라 마음을 돌렸다. '흑백요리사' 참여는 그에게 '나'를 찾는 여정이었다. 7일 한국을 다시 찾은 그는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재미교포로 살며 100%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아웃사이더(이방인)로 살았다"며 "한국과 나를 연결해 줄 무언가를 항상 찾았고, 셰프로서 한국의 맛을 늘 머릿속에 담고 산 내게 이번 기회는 중요했다"고 말했다.

문화생활+

문화 기획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