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주간 경험 '전광훈 세계'... "회원 늘려" 실적 압박, "너는 돼지" 가스라이팅
지난 1일 오후 서울 광화문역 6번 출구 앞에선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서명 운동이 한창이었다. 한 여성이 "1,000만 명을 모으면 국민 저항권을 발동할 수 있다"며 서명 용지를 내밀었다. 그러나 받아본 용지엔 정작 탄핵 반대에 서명하란 내용이 없었다. '천만(1,000만) 조직' 서명란 위에 깨알 같은 글씨로 '자유마을 / 퍼스트 모바일 / 자유일보 / 선교카드 / 광화문온 / 너알아TV&FNL뉴스 가입에 동의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기자가 "이게 탄핵 반대 종이가 맞느냐. 뭘 가입하라는 것이냐"고 묻자 "(탄핵 반대) 종이가 없어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주위를 돌아보니 주황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집회 참가자들을 붙잡고 연신 서명을 부탁하고 있었다. 이름과 휴대폰 번호, 주소(동 단위까지),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를 적고 동의란에 서명하면 종합일간지(자유일보)와 유튜브(너알아TV 등) 구독, 마을공동체(자유마을)·알뜰폰 통신사(퍼스트 모바일)·쇼핑몰(광화문온) 가입, 신용·체크카드(선교카드) 발급이 동시에 이뤄지며 '전광훈 유니버스'의 일원이 된다. 기자는 2주간 자유마을 주민으로 활동해 보기로 했다. 자유마을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원로목사가 우파 논리를 곳곳에 설파하려 전국 3,500여 읍·면·동 단위에 2022년 9월 만든 풀뿌리 공동체 조직이다. 지난 2일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아 이름과 연락처, 거주지 등을 입력해 가입을 완료했다. 거주지는 실제 사는 곳이 아닌 경기 남부 지역의 'OO동'이라고 썼다. 자유마을 가입을 마치자 자유통일당 가입, 자유일보 구독 절차 등을 안내하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전 목사가 직접 강연하는 자유마을 대회가 열리면 현장에 꼭 와달라는 연락도 왔다. 자유마을 대회는 전국을 돌며 전 목사가 직접 강연하는 행사다. '12·3 불법계엄'이 선포되고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12월 14일) 되는 등 탄핵 정국으로 요동쳤던 지난해 12월에만 12차례 열렸다. 올해 1월엔 4차례, 이달 들어서는 19일 기준으로 5차례 열렸다. 자유마을 강령은 '좌파 조직의 마을 장악 저지' '이승만의 건국 토대와 박정희의 국민정신혁명 계승' '주사파 척결로 자유통일을 이룬다' 등이다. 신참 회원이 되니 전 목사가 창당한 '자유통일당 자유마을' 단체 채팅방에 초대됐다. 회원 430여 명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탄핵 무효' '이재명 척결' 등의 제목이 달린 유튜브 링크를 하루에 80~90개씩 올렸다. 전화를 걸어 헌법재판소 직원들을 괴롭히자는 취지의 '헌재 100만 전화 운동' 동참 요청 글도 올라왔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취지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채용된) 중국 간첩단 일망타진' 같은 부정선거론과 중국 혐오 콘텐츠 전파도 회원들의 일상이었다. 회원들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널리 퍼뜨리겠다"며 연신 '좋아요'를 눌렀다. 자유마을의 지상 과제는 '회원 수 불리기'다. 이들은 회원 모집을 '파라솔을 편다'고 했다. 광화문 등 집회 현장에서 파라솔을 치고 서명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총괄팀장-실행위원-동대표-회원'으로 수직계열화된 피라미드 조직 체계를 갖췄는데 회원 12명을 모집하면 동대표가 될 수 있다. 동대표는 회원 가입 서명을 받는 현장 실무를 책임지며 회원 출결도 관리한다. 실행위원과 총괄팀장은 어떤 과정을 거쳐야 오를 수 있는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자유마을에 몸담았던 이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회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어 목사 신분이 있는 이들에게 맡긴다고 했다. 총괄팀장은 전 목사의 집회·행사 일정과 필요 인력을 파악해 지역 실행위원장들에게 전달한다. 이어 행사가 열리는 지역의 마을 실행위원들이 인력 현황을 공유한 뒤 각 마을에서 집회·행사에 불러들일 마을 회원들을 배정하는 식이다. 실행위원은 서명 명부를 토대로 행사 참여 독려, 회비 납부 연락도 한다. 길 안내부터 집회 참가자에게 헌금 명목으로 돈을 모금하는 일까지 모두 '자유마을 일꾼'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 모든 활동이 '애국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유마을 회원이 되고 나서 이틀 뒤인 이달 4일 수원 메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국 자유마을 대회에 참석했다. 자유마을 대회는 자유마을 회원만 입장 가능한데, 간부(동대표 이상)는 '필참(필수 참석)'이다. 이날은 1,000여 명이 모였는데 대부분은 6070세대였다. 남녀 비율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젊은 남성은 손에 꼽을 정도로 간간이 보였고, 기자 또래의 젊은 여성은 아예 없었다. 입구에서 나눠준 태극기와 성조기를 받아들고 빈 좌석을 찾으니 한 장년 여성이 짐을 치우고 좌석에 앉으라고 자리를 내줬다. 서울의 한 마을 동대표 김혜숙(가명·67)씨였다. 김씨는 기자를 '애국 청년'이라고 기특하게 봐주며 간식을 나눠줬다. 이후 김씨와는 광화문 집회와 사랑제일교회 주일 예배도 동행했다. 김씨는 그때마다 "나라를 지키려면 24시간도 모자란다" "전광훈 목사님 말씀을 열심히 잘 들어야 된다"고 했다. 전 목사는 이날 강연 도중 대형 전광판에 뜬 마을별 가입 실적 현황을 보며 실적 부진을 질타했다. "이 동네 봐라. 0명이잖아. 파라솔만 펴놓고 가입 안 한 데가 왜 이렇게 많아." 조금 전까지 트로트를 흥얼거리는 등 들떠 있던 장내는 일순간 얼어붙었다. 전 목사는 자유마을 회원들의 활동이 모두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며 열변을 토했다. 그러면서 "이러다 나라가 북한이랑 중국한테 먹히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고 호통을 쳤다. 공포심을 조장하며 참석자들을 옥죄는 것 같았다. 자유마을 회원들은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실제로 자유마을 회원들은 보험회사마냥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유마을 앱엔 마을별 전체 인구수와 가입자 수를 표기해놓고 바로 아래에는 동대표 실명을 공개했다. 가령 기자가 가입한 OO동은 전체 인구수가 1만7,425명, 가입자 수는 1,020명이다. 행사장에 있던 김혜숙씨는 옆자리의 동료 동대표에게 "아직 10명밖에 모으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러면서 "파라솔을 더 자주 펴야겠다"고 다짐하더니 '자유통일당·자유마을 가입 원서'를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김씨는 햇수로 7년째 '애국 운동'에 빠져 있다. 2019년 유튜브에서 전 목사의 '문재인 대통령 간첩' 주장을 듣고 광화문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나라를 지키려고 잠자는 시간 빼고 모든 시간을 애국 운동에 쏟아붓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가방에는 항상 핫팩과 담요, 보온병, 목도리를 넣고 다닌다고 했다. 자유마을을 운영하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에선 자유마을 회원이 200만 명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마을 행사장에는 '전광훈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기업·단체의 가입을 독려하는 부스가 설치돼 있었다. 자유일보와 자유통일당, 대국본 회원 자동이체 신청서가 책상 위에 쌓여있었다. 전 목사의 딸인 전한나씨가 발행인인 자유일보는 월 구독료가 2만 원이다. 자유통일당은 당비로 매달 1,000원부터 5만 원까지 자동이체를 받는다. 대국본 회원이 되면 매달 1만~3만 원을 낸다. 각종 자유마을 굿즈(물건)도 판매하고 있었다. 자유마을 로고가 박힌 모자와 티셔츠 등을 비롯해 '애국 보수'의 집회 필수품인 태극기와 성조기도 눈에 띄었다. 전 목사가 집필한 '7대 명절의 축복을 받으라'는 제목의 '애국 서적' 가격은 2만 원이었다. 기자는 2주간 자유마을 회원으로 활동하며 광화문 집회장, 자유마을 대회,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일요 예배에 수시로 참석했다. 그때마다 전 목사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간첩' 얘기였다. 그는 "대한민국은 간첩들에 넘어갔어요" "헌법재판소도, 검찰도, 국회도 주사파들이 장악했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석자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외부의 적을 선명하게 내세워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려는 목적 같았다. 전 목사는 종종 자신을 '선지자'라고 칭했다. 그는 "2022년 꿈에서 하나님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라' 했다. '결국 감방에 간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마치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도, 김혜숙씨는 "역시 전 목사님이 예언하신 대로 다 이뤄진다"며 철썩같이 믿었다. 그러면서 구국의 각오를 다졌다. "이 고비만 넘기면 좋은 날이 올 거야. 끝까지 나라를 지켜야지." 전 목사가 교인들을 앞에 두고 "여러분은 돼지 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 "먹을 밤은 나무에서 떨어지는데 돼지들은 계속 땅만 파고 있다"는 발언을 이어갔다. 하늘에 있는 선지자를 안 보고 땅만 보니 어리석다는 의미 같았다. 참석자들은 돼지 취급을 받았지만 오히려 "맞아요. 목사님 최고"라고 외쳤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상대를 깎아내려 '내가 잘못한 건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 수법"이라며 "종교단체에선 호의를 베풀고 길들인 뒤 상대를 세뇌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일보가 만난 자유마을 회원들은 "전 목사의 말은 곧 법"이라며 하나같이 그를 신격화했다. 임 교수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만큼 주변인들의 관심과 소통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