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눈앞에서 살해된, 반짝이던 스물두 살 딸... 엄마의 삶은 다시 지옥이 됐다
2024.10.08 04:30
최유선(가명·47)씨 딸은 6개월 전 무참히 살해됐다. 범인의 이름은 김레아(27). 딸의 전 남자친구였다. 범죄의 잔인성과 피해의 중대성 등이 인정돼 신상과 함께 얼굴 사진이 공개됐고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그 인물이다. 김레아는 유선씨 눈앞에서만 딸을 다섯 번 찔렀다. 피를 흘리며 어떻게든 살려고 도망치던 딸. 딸을 지키려고 김레아를 물고 늘어지던 유선씨도 20㎝ 길이 과도에 열아홉 번을 찔렸다. 그때의 상처는 여전히 유선씨를 괴롭힌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것조차 힘들다.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눈을 뜨고 있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건 눈앞에서 숨이 끊어진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후회다. 사람들은 지난 3월 25일 경기 화성 오피스텔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교제폭력에서 비롯된 흉악범죄 정도로 기억한다. 그러나 참극의 이면엔 지금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이 뒤얽혀 있다.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과 강박적 통제·집착·폭행을 일삼던 '뒤틀린 괴물' 김레아는 행복한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한부모 가정 하나를 박살 냈다.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딸을 잃은 어머니는 지금 생계조차 이어가기 힘들다. 게다가 범죄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유족구조금조차 온전히 받지 못할 처지다. 7일 한국일보 취재와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김레아에게 딸을 잃고 중상해를 입은 유선씨에게 유족구조금의 절반만 지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는 20여 년 전 이혼한 유선씨 전 남편에게 가게 된다. 전 남편은 세 살 된 딸을 두고 외도를 저질렀다. 이혼 뒤에도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아 2,000만 원 가깝게 밀렸고 그동안 딸에게 제대로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경기도 자택에서 유선씨를 만났다. 집은 온기를 느끼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지만 딸의 방은 생전 모습 그대로였다. 사고가 난 지 반년 넘게 지났지만 유선씨는 방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는 날 외엔 하루종일 누워 있다는 유선씨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힘들게 입을 뗐다. 유선씨의 첫 마디는 "딸은 세상의 전부였다"는 말이었다. 남편과 이혼한 뒤 딸은 그가 살아갈 이유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다. 딸은 2002년 봄에 태어났다. 형편은 좋지 않았지만, 유선씨는 여느 부모들처럼 딸을 예쁘게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의 외도로 그 꿈은 3년 만에 깨졌다. 홀로 딸을 키우게 된 유선씨는 앞날이 막막했다. 생계도, 육아도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유선씨는 고민 끝에 방법을 찾았다.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어린이집 통학버스를 운전했고 주방보조로 밥을 지었다. 바쁜 와중에도 주말에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해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다. 이후 딸의 유치원 교사로 취직했다. 월급은 적고, 몸은 부서질 것처럼 힘들었지만 늘 딸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전 남편은 월 30만 원의 양육비조차 제때 주지 않았다. 밀린 양육비만 2,000만 원이 넘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에 이름이 올랐다. 유선씨는 "그래도 지 새낀데, 생일에도 전화 한 번 없었다. 딸이 대학을 갈 때도··· 20년간 연락 한 번 안 했다"고 가슴을 쳤다.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어도 모녀는 행복했다. 딸은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고, 책임감도 강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도왔다. 딸은 승무원이 되고 싶어 했다. 엄마는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딸의 꿈을 지원했다. 딸은 모 대학 항공서비스학과를 나와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갑자기 불어닥친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얼어붙어 다시 작년에 경기도의 한 대학 호텔경영학과로 편입했다. 하지만 승무원의 꿈은 잃지 않았다. 딸의 방엔 면접 때 입을 옷과 머리 모양을 고민한 흔적, 사전에 준비한 답변을 초 단위로 세어가며 면접을 준비한 메모가 남아 있었다. 매일 밤, 머리맡에서 딸은 엄마에게 하루 일을 시시콜콜 털어놨다. 유선씨는 "저와딸 사이엔 비밀이 없었다"고 했다. 점심 메뉴부터 친구와 사소하게 다툰 일, 첫 남자친구로부터 받은 고백, 첫 키스까지 모녀는 모든 걸 공유했다. 그런 딸이 달라진 건 올해 1월부터였다. 딸은 김레아를 만나며 변했다. 김레아와 딸은 지난해 봄 같은 대학 같은 과로 편입한 사이였다. 편입 동기가 4명뿐이라 금방 친해졌다. 김레아가 딸을 보러 유선씨 집 앞에 찾아온 적도 있다. 결국 딸은 김레아의 구애를 받아들여 사귀기로 했다. 유선씨는 "딸이 처음에는 안 만난다고 하다가 나중엔 '오빠 괜찮은 사람 같은데, 한 번 만나볼까 봐'라고 했다"고 떠올렸다. 늘 안부를 묻고 애교 많던 딸이 연락조차 뜸해졌다. 매주 집에 오던 발걸음도 끊겼다. 인스타그램에 있던 사진도 다 내려갔다. 갑자기 카카오톡 계정이 사라져 물어보니, 딸은 김레아와 다투다 그가 휴대폰을 부숴 새 폰을 샀다고 했다. 유선씨는 김레아가 탐탁지 않았지만 참았다. 사건 이틀 전인 3월 23일 주말을 맞아 딸이 오랜만에 집에 왔다. 함께 쇼핑, 외식하는 딸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 걱정이 됐다. 다음 날 옷을 갈아입는 딸의 몸을 본 유선씨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팔다리 할 것 없이 멍투성이였다. 그제야 딸은 엄마에게 김레아가 집에 간다고 하자 때렸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집에 자주 못 오고 친구들과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간 것도 김레아가 막아서였다. 유선씨는 "딸이 카카오톡 등 SNS 계정도 다 김레아가 감시하고 있다고, 무섭다고도 했다"고 토로했다. 당장 헤어지라는 말에 딸은 "오빠(김레아)가 강제로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갖고 있는데 그걸 친구들한테 뿌리고 학교 커뮤니티에 올린다고 협박한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어 "친구들과 엄마도 다 죽여버린다고 했다"며 두려움에 떨었다. 유선씨는 "내가 있으니 걱정 말라. 당장 휴학하자"고 딸을 진정시켰다. 사건 당일 새벽 유선씨는 딸의 손을 잡고 김레아 오피스텔로 갔다. 김레아가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몰래 딸의 짐을 뺐다. 경찰에 신고할까 생각했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어 포기했다. 김레아가 돌아온 뒤 엄마는 성관계 영상 등을 유포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기 위해 합의서를 들고 다시 딸과 함께 오피스텔로 올라갔다. 증거를 잡기 위해 휴대폰 녹음기까지 켰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졌다. 본보가 입수한 녹음파일엔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목과 어깨, 등, 옆구리를 셀 수 없이 찔린 유선씨는 병원에서 깬 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칼날이 오른쪽 폐까지 들어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딸을 못 지켰다는 죄책감이 그를 짓눌렀다. 이후의 상황은 유선씨를 더 절망케 했다. 경찰은 유선씨와 딸의 것이라며 현장에서 발견된 휴대폰 3개를 돌려줬다. 알고보니 그중 하나는 김레아 것이었다. 유선씨가 "저와 딸의 휴대폰이 아닌 것 같다"고 하자 경찰은 임의제출 방식으로 그 휴대폰을 다시 가져갔다. 피의자와 피해자 휴대폰도 구분하지 못하는 경찰이 원망스러웠다. 결정적인 증거도 유선씨가 찾아냈다. 김레아가 기억상실, 심신미약 등을 주장하며 자신과 딸 소유 휴대폰 등의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해 수사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유선씨는 딸의 태블릿PC 비밀번호를 경찰에 알렸다. 평소 모든 걸 딸과 공유한 덕에 알 수 있었다. 이 태블릿에 김레아가 평소 딸을 협박했던 내용 등이 모두 담겨 있었다. 김레아의 선고공판은 오는 23일 열린다. 검찰은 지난달 25일 결심공판에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날 김레아는 자신이 부엌에서 흉기를 꺼내 모녀를 찔렀다는 기존 진술을 변경했다. 어머니가 먼저 흉기를 들었고 그것을 뺏으려다 찔렀으며 이후는 기억을 잃었다는 취지였다. 김레아는 최후변론에서 반성문을 읊었는데 말미엔 "강아지 OO에게도 미안하다"고 했다. 당황한 판사가 "OO가 강아지인가" "강아지에게 미안하다는 것인가"라고 재차 물었다. 김레아는 "강아지가 아픈데 제가 이렇게 돼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유선씨는 손을 바들바들 떨며 김레아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방청객은 열댓 명의 기자를 빼곤 유선씨와 유선씨 언니뿐이었다. 딸은 생전 매년 3월 14일 화이트데이 때면 이혼한 아빠 대신 엄마에게 사탕과 꽃을 선물했다. 딸이 선물했던 프리지어의 꽃말은 '당신의 앞날을 기원합니다'. 항상 엄마에게 "덜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던 딸. 엄마도 이젠 자식이 아닌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딸이 유선씨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도 "엄마, 사랑해"였다. 넋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힘들게 인터뷰에 응한 유선씨는 세상을 원망하는 일조차 포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럴 때면 딸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한다. 눈물조차 마른 엄마는 딸 사진이 담긴 스마트폰만 하염없이 어루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