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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 떤 트럼프보다, 훈계질과 잘난 척하는 해리스가 더 미웠다

미국 대선이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1년 동안 공화·민주당의 선거운동을 복기하고, 미국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이유를 선거일 즈음의 출구 조사와 득표 상황을 통해 객관적으로 분석할 때다. 538명의 선거인단 중 312명(58%)을 가져간 선거 결과부터 보자. 선거 직전의 분위기는 초박빙이었다. 10월 말 뉴욕타임스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는 48% 대 48% 동률이 나왔다. 7개 경합주에서도 모두 오차범위 이내 접전이 예상됐다. 그러나 개표가 며칠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을 깨고 다음 날 아침 너무 빨리 승리가 확정됐다. 한국 언론은 일제히 "트럼프 압승"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과연 압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선 전국 득표율 차이가 2%포인트(트럼프 50.2%, 카멀라 해리스 48.2%)에 불과하다. '압승' 평가는 7개 경합주 모두에서 트럼프가 이기면서 선거인단을 휩쓸었기 때문에 생긴 '착시현상'이다.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모두가 지목했던 중서부 러스트벨트의 경우 △펜실베이니아 1.9%포인트 △미시간 1.4%포인트 △위스콘신 0.9%포인트 차이였다. 해리스 입장에서는 중서부 3곳에서 조금만 더 선전했어도 결과를 뒤집을 수 있었다. 트럼프의 신승(辛勝)이라고 요약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트럼프가 아슬하게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은 연초부터 있었다. 경제, 특히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경제가 어려울 경우 그 책임을 현직 대통령 정당에 묻는 것인데, 정치학 교과서에서는 이를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라고 부른다. 1992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 실패, 2008년 공화당의 패배,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가 모두 그렇다. 사실 지난해와 올해 인플레이션은 미국만이 아닌, 세계적 문제였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선거에서 각국의 여당이 패배했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미국 경제가 (매우 또는 그럭저럭) 좋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전체 유권자의 32% 정도밖에 안 됐다. 33%는 경제가 매우 나쁘다고 대답했는데, 이들의 87%가 트럼프를 찍었다. 경제가 그럭저럭 안 좋다고 답한 유권자들도(35%) 트럼프를 더 많이(54%) 지지했다. 반면, 민주당이 내놓은 여성의 임신중지권 이슈는 영향력이 약했다. 2022년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는 더 이상 연방헌법에 보장된 권리가 아니라는 보수적 판결을 했고, 이것은 그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선전을 이끌었다. 올해도 비슷하리라 예상됐지만, 트럼프가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파괴력이 희석됐다. 임신중지권 보장 또는 낙태 금지는 개별 주 정부가 상황에 맞춰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한 것이다. 2020년과 2024년 CNN 출구조사를 비교해 보면, 임신중지권 보장을 찬성하지만 주 정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 유권자들의 트럼프 지지율이 30%에서 47%로 증가했다. '낙태를 금지해야 하지만 주 정부의 권한'이라고 본 사람들도 트럼프 지지가 19%포인트 늘었다. 트럼프가 불리한 이슈를 상당히 잘 컨트롤한 셈이다. 선거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높은 투표율도 트럼프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한국도 비슷하지만 미국에서 투표율이 높은 경우 대개는 민주당에 유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공화당이 사전투표를 장려하는 전략을 썼고, 일론 머스크가 약 2,400억 원의 사비를 보수 유권자들의 투표 독려활동에 사용했다. 경합주 7곳 중 6곳에서 역대 최고 투표율을 경신했지만, 트럼프 득표율이 모두 높아졌다. 사전투표율 상위 10개 주 중 8곳에서 트럼프가 승리했고, 전국 사전득표율보다 높았던 19개 주 중 11곳에서 트럼프가 이겼다. 자신을 지지하는 소위 '집토끼'를 잘 결집해 투표장에 나가도록 하는 선거운동 미션에서 공화당이 대성공한 것이다. 유권자 그룹을 좀 더 세분해서 분석해 보면 트럼프 진영의 '집토끼'와 '산토끼' 지지 패턴의 특징과 변화도 관찰할 수 있다. 역시 이번에도 가장 중요한 집단은 저학력층 유권자들이었다. 2016년 트럼프 당선을 이끈 배경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올해 그 경향이 더 확고해졌다. 2020년 대졸 미만의 학력을 가진 미국인들의 50%가 트럼프를 지지했는데, 올해는 54%로 4%포인트가 늘었다. 이런 변화는 백인 저학력층의 지지 열기 상승이 아니라, 오히려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유색인종 저학력층의 지지가 26%에서 34%로 8%포인트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학력과 연관된 소득수준도 중요한 변화가 있다. 연소득 5만 달러 미만 저소득층의 지지는 2020년 44%에서 2024년 49%로 5%포인트 증가했다. 연소득 5만~10만 달러의 중위소득층에서도 트럼프 지지율이 7%포인트 늘었다. 반면, 연소득 10만 달러 이상 고소득층은 트럼프 지지가 2020년 54%에서 올해 45%로 9%포인트 감소했다. 역사적으로 민주당은 경제적 빈곤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며 이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아왔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 구도가 변했다. 이제 민주당은 고소득층의 정당, 공화당은 저소득층의 정당이 됐다. 히스패닉 인구의 변화는 단기적, 장기적으로 모두 중요한 의미가 있다. 2020년 32%의 히스패닉이 트럼프를 지지했는데, 이것도 2016년과 비교해서 4%포인트 증가한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 비율이 45%가 되면서 무려 13%포인트 늘었다. 특히, 히스패닉 남성은 18%포인트, 30세 미만 히스패닉 청년층은 19%포인트 트럼프 지지율이 증가했다. 가톨릭 신자가 다수이면서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짙은 히스패닉은 과거 소수 인종이라는 이유로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최근 10년 정도 사이에 자신들의 이념적 성향과 부합하는 정당으로 말을 갈아탔다는 분석이 다수다.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히스패닉은 더 많은 히스패닉이 이민 와서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위협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에 불법 이민자에게 단호한 공화당을 지지하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그 원인과 무관하게 히스패닉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들의 정당 지지패턴은 향후 민주, 공화 양당의 정책 지향과 선거전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외에도 트럼프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증가한 그룹이 있다. 2020년과 비교해 30세 미만의 젊은 유권자들이 6%포인트, 아시아계 인구도 4%포인트 늘었다. 농촌지역 인구는 원래도 트럼프 지지세가 컸지만, 올해 6%포인트 더 늘어서 63%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다만, 언론에서 많이 언급됐던 여성의 해리스 지지율 증가는 없었다. 올해 여성의 트럼프 지지율(44%)은 남성보다 10%포인트 낮았는데, 2020년의 11%포인트 차이와 유사하다. 또, 30대 미만 젊은 층에서 보이는 성별 트럼프 지지율 차이도 11%포인트였는데, 다른 세대의 성별 차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요약하면, 삶이 빡빡해진 평범한 미국인들이 민주당 정권을 심판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더 어려워진 저학력, 저소득층 계층과 저숙련 노동을 하는 히스패닉 및 사회 초년생들이 더 크게 화를 냈다. 그런데도 정작 민주당은 책상머리에 앉아 입바른 소리를 하거나, 교사가 학생에게 훈계하는 투의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내보냈다. 민주당의 대오각성이 필요한 지점이다. 물론 공화당도 마냥 희희낙락할 때는 아니다. 백악관과 더불어 연방 상하원 모두를 장악하고 연방대법원까지 같은 편으로 두었으니, 거리낌 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일들을 추진할 것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 보통의 미국인들이 원하는 딱 그만큼까지만 해야 한다. "오버"하면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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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트럼프 관세보다 중국의 저가품 공세가 더 무섭다

"군주는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움(fear)의 존재가 되는 게 낫다." 미국 대선 결과를 보면서 16세기 르네상스시대 사상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설파했던 리더와 권력에 대한 통찰이 떠올랐다. 두 번의 탄핵, 2021년 의사당 난입, 2022년 중간선거 패배, 대선 후보 최초의 유죄판결, 암살 시도, 막판의 민주당 후보 교체 등 상상을 초월하는 드라마를 거치면서도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배경에는 인플레이션, 불법이민자 등 내부 문제와 함께 대외적으로 미국의 힘을 투사할 수 있는 두려운 존재, '강력한 리더'(strongman)를 선호한 것도 큰 요인이었다. 선거를 3주가량 남긴 시점에서 트럼프가 시카고 경제인클럽에서 연설하는 걸 봤다. 한국을 '돈 버는 기계'(money machine)로 묘사한 것에 우리 언론들은 초점을 맞췄으나, 필자는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트럼프가 "프랑스 등 타국 지도자들과 이견이 있을 때 관세 부과로 위협하니 태도를 바꿔 말을 잘 듣더라"는 사례를 허풍을 섞어 과시하는 대목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전통적 민주당 아성인 시카고 한복판의 화이트칼라들에게서 이런 반응을 확인한 것이 더 충격이었다. 미국의 지식인 계층마저 왜 트럼프에게 열광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미국인들이 2016년에는 트럼프에 대해 모르고 투표했지만, 이번에는 그가 누구고 무엇을 할지 정확히 알면서도 교육수준, 성별, 인종 등을 막론하고 지지를 확대한 데는 이런 민심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미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트럼프의 컴백은 단순한 승리를 넘어서 미 정치사회 지형의 근본적 변화(realignment)를 가져올 수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1기 당선은 비주류, 이단 및 일시적 해프닝(an accident)으로 간주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가 2020년에 연임을 했더라면 그 영향력이 8년 하고 끝났을 것인데, 중간 4년의 공백을 거치며 트럼프가 추구하는 정책들은 오히려 더 체계화, 조직화, 주류화된 것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역사는 전후의 신자유주의로 복귀, 정상화되는 듯했으나, 트럼프 2기의 당선으로 이제는 바이든 행정부가 오히려 거대한 변화의 조류에서 잠시 변이되었던 것처럼 보인다며, 시대의 사조로서 자유주의의 퇴조를 짚었다. 미 대선 결과는 한미 경제통상관계 및 글로벌 경제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전 세계 주류 지식인들이 비판했던 일반 관세(10~20%), 대중국관세(60%)가 미국민들의 강력한 맨데이트를 등에 업고 거침없이 추진될 것이다. 일반 관세도 그물망을 쳐 놓듯 가급적 넓게 부과하고 나서 각국에 협상 여지를 주며 최대한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필자가 주미 대사관 상무관으로 근무했던 트럼프 1기 때는 행정부 내부의 혼란과 갈등, 저항으로 신속하게 진행되지 못했지만, 트럼프 2기의 관세 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USTR과 로펌 등에서 일하던 자유무역 옹호자였던 필자의 많은 지인들이 이제는 '아메리카 퍼스트'로 전향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1기 행정부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공약을 실현할지를 잘 아는 경험A많고 노련한 전문가들이다. 트럼프발 쇼크는 모든 국가들이 겪는 것이므로, 글로벌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은 상대적인 게임이기 때문이다. EU, 중국, 일본 등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경쟁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 국가들 간 치열한 수싸움과 합종연횡이 난무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일하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워싱턴 싱크탱크들에서는 트럼프발 관세조치에 많은 국가들이 강경하게 보복조치 등으로 대응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트럼프의 과격한 조치가 수입 물가 폭등 등 미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정책방향 전환의 계기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죄수의 딜레마'다. 모든 국가들이 단결하여 대미 보복조치를 하면 모두에게 바람직한 결과를 얻어내지만, 정치와 안보가 복잡하게 얽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실제로 많은 국가들이 자국만 관세조치에서 예외를 받으려 트럼프 2기에 각종 양보안를 제시할 것이다. 당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보복조치를 준비하던 국가들도 선거에서 드러난 미국민들의 강한 맨데이트를 확인하고서는 어느 정도로 대응해야 할지 수위 조절에 고심하는 눈치다. 트럼프 2기 충격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이는 국가들은 유럽연합(EU), 중국, 멕시코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을 빼고, 관세조치를 시행하면 EU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EU 내부에서는 중국과 협조해서 미국발 보호주의 조치가 글로벌 경제를 망가뜨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멕시코는 불법 이민자들의 통로와 중국산 제품들의 우회 수출경로로 1기보다도 어려운 대미 협상이 예상된다. 이미 트럼프는 불법이민자 문제가 해결 안 될 경우 멕시코의 모든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멕시코를 대미 수출의 생산기지로 삼았던 우리 기업들의 전략도 수정될 필요가 있다. 중국은 트럼프와의 제1단계 협상에서 2,000억 달러의 미국 제품 구매를 약속하고도 이행하지 않았다. 바로 트럼프 관세의 표적이 될 것이다. 이에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관세보복조치를 당하더라도, EU 등 미국 우방국들에는 관세를 낮추고 중국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하는 등 회유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을 대상으로 비자면제를 시행한 것도 회유책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국의 공급과잉 이슈가 한국 경제로 튀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되면서 EU, 한국, 일본, 아세안 등 국가들로 중국산 저가제품 수출이 범람하는 중국 공급과잉 이슈가 더욱 심해질 우려가 있다. 1기 트럼프에서는 주요국들이 트럼프발 쇼크에 대응하느라 유사국가들 간 협력을 소흘히 했던 반면, 2기 트럼프에서는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고려해 EU, 한국, 일본 등의 미들 파워 국가들이 나서서 조율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한국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양적 팽창 모델에서 질적 전환을 했고,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필자는 트럼프 2기를 거치며 한국이 'G7 플러스' 국가로 진정한 글로벌화를 이루며 미들 파워의 리더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1980년대 반도체, 자동차 등 대미 통상마찰을 거치며 수출 의존에서 벗어나 해외투자, 현지화를 통해 환율 변동이나 글로벌 경제환경 변화에 덜 취약한 구조로 전환했다. 연초 일부 언론에서 한국의 연간 수출액이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는 기대를 보였지만 그런 단순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 수십 년에 걸쳐 일본 기업들은 수출을 해외투자로 많이 돌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앞으로도 해외에서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지만, 수출에 의존하기에는 불확실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고도성장기에 수출 드라이브의 첨병 역할을 했던 한국의 종합상사들은 많이 축소된 반면, 일본의 종합상사들은 투자 위주의 비즈니스 모델로 진화하며 지금은 워런 버핏이 골라서 투자한 알짜배기 성공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다. 중국 기업들은 1세대로 역사가 짧음에도 불구, 한국 기업들에 비해 훨씬 빠르게 해외 유수기업의 인수합병에 적극적이다. 겉으로 드러난 '트럼프 2기'의 경제·통상 위기는 한국 경제가 글로벌화와 구조전환으로 체질을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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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시진핑 사이의 윤석열, '한·미·중 2+2' 가 해답이다

전 세계가 트럼프 2.0 시대를 맞게 됐다. 트럼프는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 대통령 이후 131년 만에 '징검다리 집권'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이 됐다. 더욱 강화된 트럼피즘으로 국제사회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예견된다. '1기 트럼프' 시기의 학습경험을 감안하면, 그래도 그의 정책이 예측 범위에 있다는 반론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한국의 외교적 성과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한미동맹 70년을 계기로, 양국의 공동 이익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포괄성을 확보했고, 전통적 안보 및 비전통적 안보 위협이 두드러진 현 국제질서에서 매우 적극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한국의 글로벌 지위 향상은 한미동맹 70년 성과의 요인이면서 동시에 결과가 되었다. 한미일 협력 시스템을 일궈 냈다는 점 역시 우리 외교가 한 단계 차원 높은 곳을 지향했다는 증거다. 한미일 3국협력은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에서 가장 앞선 경제와 민주주의를 이룩한 국가들의 협조체제인 만큼, 누구도 한국의 국제적 지위에 토를 달지 못하게 됐다. 사실 아시아 50여 개 국가 중에서 근대 국가가 설정한 두 개의 목표, 경제성장과 정치발전을 모두 달성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룬 우리의 외교적 성과는 트럼프 집권 2기에 어떤 운명을 맞을까. 전례 없는 미중 전략경쟁, 북한의 러시아 파병, '글로벌 사우스'로 상징되는 일종의 반미 연대의 확산 그리고 미중 사이에서 포지셔닝 안착이 어려운 한국 외교는 위협 요인이다. 이런 요인들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우리에게 불리하게 전개된다면, 한미동맹 및 한반도 문제의 방향성이 흔들릴 수 있다. 이런 위험요인을 바탕으로 글로벌 질서 및 한미동맹의 미래를 진단한다면, 대체로 세 가지 차원에서 분석하고 관련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첫째, 트럼프 당선자가 선거 과정에서 주창했던 "당선되면 24시간 안에 러·우 전쟁을 끝내겠다"는 부분이다. 공화당이 거둔 "레드 스윕(Red Sweep)"이라는 여대야소(與大野小)로 인해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은 트럼프의 의중은 고스란히 미 의회에 반영될 것이다. 이는 의회의 우크라이나 지원 승인을 어렵게 만들 것이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우크라이나를 다소 불리한 입장에서 종전 및 평화협상에 나서게 할 수 있다. 북한의 파병으로 러·우 전쟁의 향방은 한반도 안보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다탄두 미사일 및 핵잠수함과 같은 첨단 기술은 물론이고, 러시아를 통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의 외교 진출까지 꾀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북한 문제를 다루는 한국과 미국의 고민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다자외교에 흥미가 없는 트럼프의 스타일로 볼 때, 미국의 손실과 연관된 사안이 아니라면, 북한의 글로벌 사우스 참여를 제지하지 않을 수 있다. 북한이 최근 공공연하게 남북 사이에 '적대적 두 국가론'을 강조하고 있으니, 북한의 독자적 외교공간 확보에 국제사회가 느낄 부담감은 줄어들 수 있다. 둘째, 대중국 관계 및 한미중 관계다. 트럼프의 공약에는 대중 투자 금지, 중국 상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가, 동맹국들의 대중 투자 제한 등 전방위적 내용이 담겨 있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어떤 형태로든 이런 공약에 드라이브를 걸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가 가히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수준의 난맥상을 보이고 있어서, 미중 무역전쟁의 결과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다만, 중국이 저성장 기조를 보이고 국내 정치적으로도 여러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지금이야말로, 중국을 제대로 다룰 최적의 기회라는 게 트럼프와 참모들의 생각이다. 한국으로서는 이 시점을 한미중 사이의 안정적 외교관계를 세팅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미국과 중국 모두를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한국 외교의 고민을 풀어내야 한다. 소위 '2+2'로 불릴 수 있는 '한·미·중 정책협의회'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협의체를 만들 수만 있다면,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우리 입장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안보와 경제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차관급 정도의 3국협의체를 출범시킬 수 있다면,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 환경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면서도 공존의 공간을 찾을 것이라는 차원에서, 한미중 외교 관계 상시화를 우리의 어젠다로 만들어야 한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북한 김정은을 상대로 또 한번 과감한 딜을 시도할 가능성에도 대응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 간의 또 다른 정상회담은 2019년 하노이 회담의 실패를 기준으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데, 지난 5년간 북한 핵무력은 더욱 고도화되었고, 한국과 미국을 향한 김정은의 적대심도 더욱 커진 게 사실이다. '고도화'와 '적대감'이 높아진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문턱이 높아진 것이다. 외교와 '거래'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트럼프의 입장에서, 대북 딜이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향후 1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 혹은 중동 문제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면, 트럼프 입장에서는 가능한 그 모멘텀을 향유하는 게 중요하지, 북한이나 대만 문제로 인해 스스로 외교적 난제를 만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김정은이 큰 보상을 요구하는 대신, 트럼프에게 북한의 자원을 포함한 상당한 수준의 이권을 제안한다면, 혹시 세상일은 또 모를 일이다. 확실한 건 '한미동맹'이라는 명목으로 우리가 부담할 비용이 훨씬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가치와 규범'이 한미는 물론 국제사회를 연결하는 고리라는 생각은 접어둬야 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라서, 트럼프가 이스라엘만을 싸고돈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합의한 SMA(한미 방위비분담금협정)도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이 다수이고,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이나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복잡해진 여러 사정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은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안보 자산이라는 점은 불변의 사실이다. 우리로서는 경제와 민주주의라는 두 개 목표를 모두 달성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미국의 입장에서도 소중한 외교적 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트럼프가 한국을 '현금 인출기(cash machine)'라고 칭했지만, △미중갈등 심화 △한미일 전략적 가치 △한미 간 인태전략 공감대 등을 감안하면 트럼프 시대에도 한미동맹은 미국에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 외교 관계에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늘 함께 작용하기 마련이어서, 한미관계에 놓인 다양한 이슈들을 관리하는 우리의 정교한 노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차제에 한국의 외교 자율성을 증대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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