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지하 터널' 들어선 텔아비브 '인질 광장'... 전쟁은 이스라엘 풍경을 바꿨다

2024.10.08 12:00

가자지구 전쟁 개전 1년을 이틀 앞둔 5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중심 도시 텔아비브는 평온해 보였다. 유대교 안식일인 토요일을 즐기는 이들로 텔아비브 도심 지중해 해변은 아침부터 붐볐다. 커피와 함께 오전을 보내는 남녀, 화창한 날씨를 즐기려는 가족들로 공원과 카페는 북적였다. 그러나 조금 자세히 도시를 들여다보니 텔아비브는 1년째 신음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공격한 이후 하마스에 납치된 251명 중 아직 귀환하지 못한 97명을 빨리 구출해야 한다는 절규가 곳곳에서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수영을 즐기는 인파 옆으로 '그들(인질들)을 집으로 데려오라'(Bring them home now)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휘날렸고, 시내 맥도널드 매장 내부 스크린으로는 인질들 사진이 끊임없이 나왔다. 텔아비브 미술관과 도서관으로 둘러싸인 중심가 광장은 인질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응축된 대표적 공간이다. 서울의 세종문화회관 앞처럼, 텔아비브의 대표적 문화 공간이었던 이곳에는 이제 '인질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스라엘방위군(IDF) 본부와 마주한 이곳에서 지난 1년간 인질 가족과 시민들이 주도한 집회·시위가 열렸기 때문이다. 광장은 엉성하게 조성됐다. '인질 광장' 안내판은 임시로 가져다둔 기둥에 허술하게 올려져 있었고, 집회·시위를 주도하는 무대도 헐겁게 설치돼 있었다. "인질 전원이 돌아와 언젠가는 사라져야 할 장소라 완벽하고 영구적인 무언가를 설치하지 않았어요." 인질 가족 등이 주축이 된 단체 '인질 가족 포럼'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오르나 고넨은 이렇게 설명했다. 광장 한쪽에 놓인 커다란 식탁 옆으로는 돌아오지 못한 인질 숫자를 상징하는 의자 97개가 놓여 있었다. 최연소 인질인 크피르 비바스(납치 당시 9개월) 주변으로는 형 아리엘(4), 아빠 야덴(34), 엄마 쉬리(32)의 의자가 옹기종기 놓였다. 식탁을 둘러보던 한 시민은 "곧 이렇게 앉아 식사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광장 가운데 놓인 20m 길이의 회색 터널은 가자지구 지하터널을 상징한다고 했다. 인질 누군가가 여전히 붙잡혀 머물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하마스의 은신 공간이다. 터널 안에선 물방울, 발자국 등의 소리가 들려 '진짜 터널'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고넨은 "감히 그들의 고통을 상상하기도 어렵겠지만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라도 인질을 계속 떠올리기를 바라며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하마스 공격을 받은 키부츠(공동 소유 기반 생활 공동체)들은 저마다 광장에 텐트를 치고 인질의 귀환을 염원하고 있었다. 5명이 하마스 인질로 붙잡혔던 나할 오즈 키부츠가 마련한 텐트로 들어가니 3명의 사진 옆에 '귀환' 표시가 붙어 있었다. 텐트를 지키던 나할 오즈 출신 아얄 셀라는 아직 귀환하지 못한 차히 이단(49)과 옴리 미란(46)의 사진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들의 나이는 펜으로 지워졌고, 그 옆에 50, 47이라는 숫자가 새로 쓰여 있었다. "그들은 살아서, 한 살씩 더 먹었을 거라고 확신해요." 셀라가 두 사람과 모든 인질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말했다.

미사일 사방에서 날아오는 가운데…전쟁 1년 '작은 추모식' 연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으로 수많은 생명이 스러지고 전쟁이 이어진 지 1년째인 7일(현지시간). '차분한 추모'는 그러나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 사치였다. 미사일·로켓 등이 사방에서 날아왔고,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테러 위험까지 가중되면서 이스라엘은 종일 어수선했다. 이날 오후 7시 이스라엘 중심 도시 텔아비브 야르콘공원에서는 하마스 공격 희생자 가족들이 주도한 추모 행사가 열렸다. 지난해 10월 하마스 기습으로 숨진 1,200여 명을 추모하고 납치된 251명 중 돌아오지 못한 인질 97명의 귀환을 기원하는 자리였다. 처음엔 4만 명가량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란 등의 대규모 공격이 예상되고 테러 우려까지 있는 터라 이스라엘 민방위사령부가 모임 인원을 제한하면서 2,000명만 자리할 수 있었다. 아찔한 순간은 실제로 발생했다. 행사 전 예멘 친(親)이란 후티 반군이 쏜 미사일 공습 경보가 울리며 현장에 있던 이들은 얼굴에 땅을 대고 누워 있어야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7일 하루 종일 친이란 '저항의 축'(반미·반이스라엘 진영)은 이스라엘에 로켓·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는 로켓 135발을 쏴 이스라엘 북부에서 10명이 다쳤고,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은 텔아비브 벤구리온공항 인근 마을에 떨어졌다. 후티도 미사일 2기를 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도 전투기 100대를 동원, 헤즈볼라 지도부가 있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 등 120여 개 시설에 공습을 가하며 반격했다. 이날 취재하는 내내 이스라엘 공습 경보 애플리케이션 '레드얼럿'에는 '공습 위험 지역'을 뜻하는 빨간 막대 표시가 지도 위에 수북하게 쌓였다. 하마스 공격 희생자 가족이 주도한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시민들은 이날 저녁 텔아비브 미술관 옆 '인질 광장'에 모여 스크린을 통해 행사를 지켜봤다. 이스라엘 국기를 몸에 두르고 노란색 리본을 가방에 단 이들은 사망자 및 인질 가족 등이 연설을 할 때마다 눈물을 훔치느라 바빴다. 하마스에 잡혀 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에 의해 어이없이 사살된 동생 알론 샴리즈를 떠올린 요나탄 샴리즈는 스크린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고쳐 놓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용한 추모도 도시 곳곳에서 이뤄졌다. 텔아비브 해변을 따라 이어진 구도심 올드라파는 상점들이 가게 문을 닫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이곳 관광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10월 7일은 우리에게 마음이 많이 아픈 날이기에 웃고 떠드는 분위기 대신 조용하게 지내고 싶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간이 문을 연 상점들은 촛불을 켠 채 손님을 맞았다.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등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살해된 자와 쓰러진 자를 기억하고, 납치된 자의 귀환과 IDF 및 보안군의 평화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는 문구가 떴다. 드물게나마 '어떠한 의식도 진행하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도 접할 수 있었다. 텔아비브 시민 레비는 "어딜 가도 인질 사진이, 노란 깃발이 붙어 있어 매일이 슬픈데 더 큰 슬픔으로 이스라엘을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가 기관도 다양한 방식으로 추모에 나섰다. 이스라엘 크네세트(국회)는 하마스 침공이 이뤄진 시간(7일 오전 6시 29분)에 맞춰 크네세트 광장에 있는 이스라엘 국기를 반기로 내렸다. 현충일 등 극소수의 날에만 진행하는 행사를 이날 진행한 것이다. 정부 추도식은 별도로 개최됐다. '하마스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인질도 구출하지 못한 정부가 추도식을 거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거센 데다, '인질 가족 등이 주도한 비공식 추도식과 같은 시간에 열지 말라'는 요구가 빗발치면서 녹화 방송을 오후 9시에 방영하는 형식을 택했다. 이스라엘의 슬픔은 끝나지 않았다. 최근 길거리 테러로 숨진 희생자에 대한 추모도 이뤄지고 있었다. 텔아비브 야파지구의 에를리히 경전철역은 지난 1일 하마스 지시를 받은 괴한 2명의 총격 테러로 이곳에서 희생된 7명을 기리는 메시지, 꽃다발, 촛불 등으로 가득했다. '모두가 미워하지 말고 어울려 살았으면 좋겠다' 등 메시지가 보였다. 또다시 테러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공포도 여전했다. 테러 발생 지점에서 100걸음 남짓 떨어진 곳에 산다는 고벤(74)은 "매일 오가던 역을 사건 발생 엿새 뒤에야 처음 와봤다"며 "살고 죽는 것을 그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날 가자지구와 40여㎞ 떨어진 브엘세바에서도 총기 테러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다친 사건이 발생한 터라 공포가 가중된 듯했다.

"옷 고르는 에너지 아끼겠다"던 '너드' 저커버그는 왜 회색티를 벗었나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커넥트 행사가 열린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멘로파크 메타 본사.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다소 두꺼운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며 이렇게 말했다. "스마트폰을 이을 진정한 차세대 컴퓨팅 디바이스가 될 것이다." 그가 착용한 건 메타가 이날 대중에 처음 공개한 증강현실(AR) 안경 '오라이언'(Orion) 시제품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홀로그램 그래픽을 덧씌워 보여주는 스마트 안경으로, 기존 안경처럼 착용한 상태에서 메시지 전송은 물론 통화, 동영상 시청 등도 가능하게 하는 장비다. 실제 제품이 언제쯤 출시될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날이 머지않았음을 보여준 것만으로 시장은 환호했다. 메타 주가는 오라이언 공개 후 지속적으로 올라 지난 3일에는 582.77달러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가였다. 오라이언이 워낙 큰 주목을 받은 탓에 행사 당일에는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같은 날 저커버그가 선보인 것 중 뒤늦게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그가 입고 나온 옷이다. 청바지에 검은색 반팔 티셔츠인 그의 차림새는 언뜻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스타일처럼 보였지만 티셔츠에는 평범하지 않은 글귀(Aut Zuck aut nihil)가 새겨져 있었다. 고대 로마 황제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최고 통치자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표현할 때 썼던 라틴어 문구(Aut Caesar aut nihil)에 자신의 이름(Zuck)을 넣어 변형한 것으로, '저커버그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커넥트보다 2주 앞서 참석했던 한 팟캐스트 대담에서도 그는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스어로 '고통을 통해 배우다'라는 뜻의 문구(pathei mathos)가 적힌, 역시 검은색 티셔츠였다. 다른 듯 닮은 두 장의 티셔츠는 저커버그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 마이크 아미리와 함께 제작했다고 한다. 티셔츠를 직접 디자인해 입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 일이 회자되는 것은 주체가 다름 아닌 저커버그라서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면 회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함께 그려질 만큼 저커버그는 회색 상의만을 고집스럽게 착용해 왔다. 적어도 페이스북이 세상에 나온 2004년부터 그는 대부분의 공식석상에서 회색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가 정확히는 '젖은 신문지색'(wet-newspaper gray)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비꼰 적이 있다. 여기에는 그의 취향이 적어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멋있거나 세련됐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패션 문외한'에 가까웠던 저커버그의 차림새는 그러나 올 들어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직접 옷을 디자인해 입을 만큼 그의 패션에 대한 관심은 진심인 듯하다. 매번 같은 옷을 입는 데 대해 그가 "내 모든 에너지를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 쏟기 위해서"라고 '철학'까지 밝혔던 터라, 갑자기 외관에 많은 신경을 쓰는 듯한 모습은 호기심과 의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패션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시점상 의미심장하다고 본다. 저커버그의 변신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저커버그에게 본격적인 변화가 포착된 것은 올해 초부터다. 늘 군인처럼 바짝 깎은 머리를 고수했던 그는 지난 2월 자연스럽게 기른 곱슬머리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의상 변화는 더 극적이었다. 회색 티셔츠가 흰색, 검은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털 재킷을 입고 한국을 방문하고, 꽃무늬로 뒤덮인 명품 정장을 착용한 채 인도 억만장자 무케시 암바니 아들의 결혼식을 찾았다. 은색 체인 모양 목걸이를 차고 메타 행사에 등장하는가 하면, 커다란 펜던트가 달린 금색 목걸이를 하고 언론 인터뷰 등에 자주 나서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처럼 그의 패션이 갑자기 변한 데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가장 지배적인 분석은 그가 최근 몇 년간 극심한 사업 부진과 정치적 갈등을 겪으며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으리라는 것이다. 메타는 2021년 메타버스에 올인한다며 페이스북에서 사명을 바꾼 이후부터 매출, 이익, 주가 등이 고꾸라졌다. 그 여파로 지난해 2만 명 이상을 내보내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하면서 저커버그의 리더십은 치명상을 입었다. 외풍은 더 컸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정상적인 선거 진행을 지원하는 단체에 기부한 것을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측과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다. 이는 그와 메타를 내내 괴롭게 했다. 인스타그램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미성년자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해악을 묵인하고, 오히려 이용해서 수익을 올려왔다는 이유로 의회에 불려나가 십자포화를 받고 머리를 숙이기도 했다. 이런 시간을 거치며 미국에서 그의 이미지는 '어린 나이에 성공한 천재 엔지니어'에서 '그래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유약하고 무능한 CEO'로 바뀌어갔다. 그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안 좋지만 메타에도 치명적이었다. 그와 메타를 동일시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테크업계에서는 저커버그가 이런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너드'(nerd·컴퓨터만 아는 괴짜)에서 '상남자'로 바꾸고 있는 것으로 본다. 외향적이고, 주체적이며, 변화에 능동적인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에서 옷장에 '개성'을 더했다는 것이다. NYT는 "회색 티셔츠에서 벗어난 것은 (CEO로서) 보다 유연해진 면모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저커버그가 최근 제작해 입는 옷에는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욱 분명하게 반영돼 있다. 영국 가디언은 "저커버그는 대담한 레터링(글이 적힌) 티셔츠들을 통해 자신이 왔고, 보고, 정복했으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시 이길 것이라는 의사를 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스스로는 부인하고 싶을 수 있으나 '앙숙'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듯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그가 주짓수 훈련하는 영상과 사진을 주기적으로 올리거나, 선글라스를 끼고 양손에 맥주와 성조기를 든 채 웨이크보드를 타는 사진을 게재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이런 분석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머스크 역시 주짓수 마니아이고, 괴짜라는 평가를 받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올려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한때 '현피'(온라인에서의 다툼이 실제 몸싸움으로 이어진다는 뜻의 은어) 직전까지 갔을 만큼 나쁘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둘은 젊은 나이에 회사를 성공시켰다는 점, 그를 통해 젊은 나이에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점,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계속 직접 경영하고 있다는 점, SNS 업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겹치는 지점이 많다. 공교롭게도 이날 기준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서 세계 부호 1위(머스크)와 2위 자리에 나란히 올라 있기도 하다. 테크업계에서는 이렇게 닮은 점이 많다는 점이 저커버그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이 많다. 머스크가 자신처럼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데도 막강한 팬덤(엑스 내 최대 팔로어 보유자)과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데 대해 내심 부러움을 느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커버그의 변신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당연한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터틀넥과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만 착용하며 유명해진 것을 계기로 실리콘밸리 경영자들 사이에는 한 가지 스타일만을 고집하는 이른바 '잡스 스타일'이 20년 넘게 유행해 왔다. 하지만 요즘 젊은 층은 그런 스타일을 식상하고 고루하게 여기고, 이런 경향이 다양한 패션으로 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실리콘밸리가 '포스트 잡스'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라고 평했다.

18번의 피란,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절망의 땅… "그저 평화 원할 뿐"

"어제는 우리의 '슬픈' 결혼 1주년이었어요.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났고, 우리가 결혼한 뒤로 1년이 흘렀네요. 그리고 전쟁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네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에서 피란 중인 아흐메드 알다두흐(26)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팔레스타인 치과의사 부부인 알다두흐와 비산 이드(24)는 지난해 9월 25일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이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시작되면서다.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났다. 전쟁은 무고한 민간인들의 목숨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의 삶의 터전과 평화로웠던 일상까지 앗아갔다. 가자지구에 남아 피란 중인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야기를 화상과 서면 인터뷰로 들어봤다. 이들과의 화상 인터뷰는 순탄치 않았다. 가자지구 내 전기가 부족해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화상 통화는 어려웠다. 수차례 시도 끝에 연결한다 해도 화면이 고르지 않거나 금세 접속이 끊겨버렸다. 전쟁 발발 당시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아흐메드 마흐무드(21)는 지난달 27일 한국일보 인터뷰를 위해 도보로 50분가량 걸리는 친구의 집을 찾았다고 했다. 인터넷 연결이 그나마 원활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들르는 그곳에서 마흐무드는 피란민으로서의 일상을 소개하며 기부를 호소하는 '쇼트폼'(짧은 동영상)을 찍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한다고 했다. 그는 "내가 머무는 캠프에는 인터넷이 전혀 없다"고 했다. 가자지구 북부에 살다가 현재 중부 데이르알발라 내 캠프에서 피란 중인 아흐메드 탈렙(25)은 "전력이 공급되는 이웃의 집 앞에서 다 같이 몇 시간 동안 휴대폰을 충전하는데, 이마저도 비가 오면 불가능하다"며 "그렇지만 인터넷이 외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전력과 통신 상황이 이럴진대 가자지구 의식주 문제는 거의 '재앙' 수준이다. 이들은 1년째 거듭되는 피란에 주거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고 토로했다. 탈렙은 "전쟁 전만 해도 거주민이 10만 명에 불과했던 데이르알발라에는 현재 거의 100만 명이 모여 산다"고 전했다. 4세와 2세 딸을 키우는 하야 무르타자(30)는 "비가 오면 텐트 안으로 물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주도 이들에겐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이 됐다. 유엔 인도적업무조정실(OCHA)은 지난 8월 "지난해 개전 이후 가자지구 전체 주민 약 220만 명 중 90%가 한 번 이상 강제 이주를 해야만 했다"며 "이스라엘의 대규모 대피 명령은 현지 주민들을 과밀한 지역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쟁 발발 이후 알다두흐는 18번, 탈렙은 9번, 무르타자는 10번에 걸쳐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다. 당장의 식량과 식수 부족도 이들에겐 큰 문제다. 마실 물과 식량을 얻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것도 힘들지만 이마저도 돈이 부족해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유엔 통합식량안보단계(IPC)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지구 주민 5명 중 1명이 하루 종일 한 끼도 먹지 못하는 심각한 식량 불안에 직면했다. 마흐무드는 "돈이 부족해 하루 한 끼밖에 사 먹을 수가 없다"며 "매일 가자지구 북부쪽으로 가서 물 2병을 사는데 총 14셰켈(약 4,900원)을 낸다. 이조차도 지금은 돈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간혹 자선단체에서 제공하는 쌀도 얻지만, 이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식량이 부족하니 물가도 치솟았다. 무르타자도 "물품들이 다 부족하다 보니 예전엔 1달러에 불과했던 것들이 거의 20달러로 올랐다"고 전했다. 의약품과 의료 서비스도 중단되면서 위생과 건강 문제도 심각하다. 무르타자는 "샴푸와 세제가 부족하다보니 두 딸 모두 이와 딱지가 퍼진 적이 있다"고 했고, 마흐무드는 "아빠는 당뇨와 신경 질환이 있고 엄마는 고혈압이 있는데,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생계를 지탱해 준 일자리도 이제는 머나먼 얘기일 뿐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지난달 10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가자지구 내 일자리는 전쟁 직전 대비 20만1,000개가 감소했다. 전체 일자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수치다. 알다두흐는 "전쟁이 터지자마자 아내와 운영하던 치과 클리닉이 완전히 파괴됐다"며 "개전 이후 전혀 일을 하지 못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돈을 못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일자리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가자에서 당신들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다"며 "정말로 일거리가 절박하다"고 호소했다. 치대생 출신인 탈렙도 "인턴십을 마친 지 며칠 되지 않아 전쟁이 터지면서 지금 거의 360일 넘게 수련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2016년 대학을 졸업한 뒤 마케터 겸 가수로 활동해 왔던 무르타자는 "유튜브에 노래 영상을 올려왔는데 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도 없어졌고 내 꿈도 없어졌다"고 전했다. 전쟁이 앗아간 삶 속에 아이들은 더욱 무력한 상황이다. 무르타자는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첫째 딸 샴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안나를 좋아하는데 매일 'TV 보고 싶다' '친구들 보고 싶다'고 한다. 밤에는 로켓포 소리 때문에 귀를 막고 자고 두려움에 소리를 지르면서 깨곤 한다." 행복한 가정을 꿈꿨던 알다두흐에게 자녀 계획은 사치일 뿐이다. "내 자녀를 이런 세계로 초대하고 싶지 않다. 가자를 벗어나서 집과 일거리가 있는 곳에서 아이를 낳고 싶다." 1년째 지속되는 전쟁 속에서 죽음도 점점 이들 곁으로 다가왔다. 탈렙은 "아무 잘못 없는 친구 아실 타예와 누르 야히가 '순교'했다"고 했고, 알다두흐도 "수많은 친척들과 동료들이 이유도 없이 죽었다"고 전했다. 마흐무드는 "전쟁 중 죽은 삼촌과 이모, 사촌동생들이 그립다"고 했다. 다만 이들은 전쟁과 죽음에 대한 질문에는 길게 답을 이어가려 하지 않았다. 가자에선 죽음이 너무 일상이 됐고, 남일이 아니었다. 전쟁이 남긴 아픔이고, 마음의 상처였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개전 이래 팔레스타인인 4만1,825명이 목숨을 잃었고, 9만6,910명이 부상을 입었다(5일 기준). 이러한 비극 속에서 이들은 가자 탈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SNS를 통한 기부금을 모아 가자지구와 국경을 맞댄 이집트로 가기만을 꿈꾸고 있었다. 알다두흐는 "이집트로 가려면 1인당 7,000달러가 필요하다"며 "이집트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돈과 서류가 준비되면 바로 떠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하루하루가 절망의 연속이라고 입을 모았다. "매일 마음이 무너진다. 내가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마흐무드) "제발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 아이들과 여성이 죽어가는 이 전쟁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알다두흐) "우리는 매일 죽음을 목격한다. 가자지구 어느 곳에도 안전한 장소는 없다."(탈렙) "텐트는 우리의 삶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평화로운 삶을 원한다. 전쟁은 충분했다."(무르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