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대통령께 드리는 답장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대통령님, 구치소에서 잘 지내고 계신지요. 새해 초 직접 만년필을 들고 밤새 작성하셨다는 ‘국민께 드리는 글’을 받아보았습니다. 무려 6,780자(공백 포함 8,800여 자)에 달하는 편지를 읽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답장을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정도 장문을 일필휘지 쓸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진심이 느껴져 감동받았다는 댓글도 보입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리 울분을 토하겠나’ ‘오죽하면 대통령이 직을 걸고 최후의 수단을 동원했겠느냐’며 공감하는 분도 없진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 대다수 국민은 경악을 금치 못한 게 사실입니다. 그 내용과 논리가 너무 황당하고, 상식을 가진 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습니다. 대통령님은 직무 정지가 되니 비로소 ‘내가 대통령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지만 국민은 편지를 읽고 나니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었구나’라는 걸 확인해 더 절망했습니다.
우선 대통령님은 투표함 검표에서 엄청난 가짜 투표지가 발견됐다며 다시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야당이 외부 주권 침탈 세력의 도움을 받아 부정 선거로 국회를 장악하고 국정을 마비시켜 국민에게 위급함을 알리기 위해 계엄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선거 자체를 부정하는 건 이를 통해 대통령이 된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럼 대통령님의 대선 승리도 무효 아닌가요. 언급하신 전체주의 국가는 사실 그리 대단한 나라도 아니고 내부 문제만으로도 휘청이는 상황입니다. 부정 선거가 아니란 게 법원 판결은 물론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의 공통된 결론입니다. ‘증거나 너무나 많다’고 하셨는데 그럼 제시해야 했습니다. 정말 문제였다면 진작 국민에게 설명하고 진실을 규명했어야 할 분이 이제서야 계엄 명분으로 내세우니 설득력이 약합니다.
대통령님이 ‘계엄은 범죄가 아니다’고 한 부분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계엄 자체는 대통령이 선포할 수 있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헌법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그 조건을 제한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닙니다. 불가피한 경우에도 법을 따라야 하는데 국무총리조차 국무회의의 절차적 실체적 흠결이 많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무장 군인을 동원해 국회를 장악하고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려 한 건 명백한 범죄입니다. 그 현장을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봤는데 이를 부인하는 건 뻔뻔한 거짓말입니다.
아직도 대통령님이 도대체 왜 계엄을 선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대통령님 부부가 대선 당시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로부터 비공표 여론조사 보고서를 받고 공천에도 불법 개입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직후 계엄 준비가 본격화한 정황에 눈길이 갑니다. 궁지에 몰리자 승부수를 던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극우 유튜버 방송만 보다 망상에 빠진 대통령님의 한마디에 그렇지 않아도 허덕이던 민생과 경제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지난달 일자리는 5만 개 넘게 날아갔습니다. 외국인 증권투자자금도 6조 원 가까이 순유출됐습니다. 환율은 외환위기 수준입니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눈물의 폐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님의 긴 편지 어디에도 ‘죄송하다’는 사과 한 마디 찾을 수 없었던 건 유감입니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책임,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모두 안 보입니다.
대통령님, 현직 대통령으론 첫 체포된 심정이 얼마나 쓰리실지 짐작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또다시 불행한 대통령의 말로를 보게 된 국민, 국격과 대외 신인도를 한순간에 추락시켜 놓고 여전히 남탓만 하면서 반성하지 않는 대통령을 둔 국민 심정은 더 참담합니다. 대통령님, 이제 유튜브 그만 보고 상식을 되찾길 바랍니다. 그래야 ‘망국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국민은 일상으로 돌아가 '경제의 시간'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 잘 하시길 바랍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