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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투쟁 탓에 무능한 지도자 배출... 대통령제 손봐야 미래 열린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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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내란 사태'라는 역대 최악의 헌정 위기로 한국 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인물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두 문제가 만난 비극인가. 한국일보는 2025년 신년을 맞아 전문가들과 현행 대통령제 운영 방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이를 담은 '대통령제, 새로고침' 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
"우리 사회가 권력 투쟁에 들이는 관심, 열정, 비용을 더 낮은 곳으로 돌려야 한다. 서로 과도한 권력을 뺏기지 않으려고 낮은 데 눈을 돌릴 틈이 없다. 권력을 나눠야 고르게 발전하고 덜 싸운다. 수천 년의 진리다."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정치학) 교수는 20여 년 전부터 "대통령의 초과 권한들을 내려놓는 개헌이 필수"라고 제안해 온 정치학자다. "승자독식의 구조, 권력독점을 막으면서 국정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정교한 균형적 대통령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그가 내놓는 권력 구조 개편의 핵심. 그는 '개헌'보다 '헌법 개혁'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하나의 헌법에서 또 다른 헌법으로 바꾸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의 신중한 용어 선택이다.
박 교수는 2017~18년 문재인 정부가 개헌안을 마련할 당시 청와대와 국회가 만든 국민헌법자문특위 및 헌법개정특위 위원을 모두 지냈다. 지난달 23일 서울 연세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에게 △헌법 개혁 방안 △정치 개혁 과제 △적절한 개헌 논의 방법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내란 사태를 어떻게 보셨나.
"세계의 민주주의 연구자들,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는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인간 사회의 발전 단계에 따른 보편적인 합의가 있었다. 한국 정도로 문명, 민주주의, 경제가 발전한 국가이자 자유, 문화, 과학, 기술, 예술 역량이 국제적인 국가에서 과연 이런 사태를 상상할 수 있나. 최고 지도자가 국민 자존감에 이렇게 치명타를 가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너무 초현실적 돌발이라고 생각했다가 현실이라는 걸 깨닫고는 단테가 벙어리가 되는 '신곡'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선악, 흑백, 과거와 현재가 충격적으로 다를 때 우린 말을 잃는다."
- 특히 정치학자로서는.
"고통스러웠다. 깊은 자괴감과 자탄, 반성 같은 게 밀려왔다. 저는 오랫동안 비판을 받으면서도 우리 헌법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계속 이야기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헌법을 고치지 못하면 그보다 더한 사태도 올 거라는 생각이 절규에 가까웠다. 그걸 인지하고도 우리 사회가 과도한 낙관주의와 준비 부족에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뜬눈으로 지새웠다. 경각심을 갖고 수습해야 하지 않을까."
- 군 동원의 충격이 컸다.
"이번 사태는 분명 내란이다. 전시 혹은 준전시가 아닌데도 병력을 동원했고, 절차적으로도 국무회의 심의나 부서(副署)를 거치지 않았다. 또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라는 헌법기관은 계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국회 통보도 없었다. 더구나 우리의 민주화 과정을 역민주화시켰다는 게 가장 위험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뛰어난 업적 중에 하나가 군을 탈정치화하고 병영으로 복귀시켰다는 것이다. 지금껏 군의 정치적 중립성은 확고했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군과 경찰의 최상층, 즉 안보와 치안의 최고 지휘부를 내란에 동원하여 전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런 국가 지도자는 없었다. 스스로 보수의 가치를 철저하게 파괴했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 가장 추운 곳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중심 국가기구를 이렇게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대통령이 어디 있나. 본인은 지금 국가에 얼마나 치명적 위해를 끼쳤는지 모를 것이다. 상처가 회복되는 데 상당히 오래 걸릴 것이다."
- 인물이 워낙 문제였을까.
"정치는 오랫동안 '악마와의 계약'이라고 불렸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대와의 계약(contract)이다. 생각이 달라도 함께(con)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과 한 트랙(track)에 오르도록 합의하는 게 법률, 제도, 헌법이다. 좋은 제도에선 나쁜 사람들이 활개를 칠 수 없다. 반대로 나쁜 제도에선 유능한 사람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능력 없고 나쁜 사람들이 자꾸 자리를 차지하면, 그 제도를 바꿔야 유능한 사람들이 능력과 애국심을 발현할 수 있다. '헌법의 문제냐, 운영의 문제냐'고 물으면 저는 '그 둘은 하나'라고 답한다."
- 윤석열 대통령은.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민주주의를 훈련할 기회가 없었다. 유일한 직업이 검사였다. 상대가 항상 범죄자, 범법자, 혐의자였다. 타협보다는 수사, 추궁, 기소, 처벌을 했다. 합법과 불법, 정의와 불의라는 양단의 흑백 논리에 익숙하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생각이 공동 궤도에 올라 대화, 타협, 조정, 양보하는 일이다. 거기다 아무런 선출직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국가 최고직에 선출돼 두 불행이 겹쳐졌던 것 같다."
- 왜 준비 없이도 가능했을까.
"윤 대통령은 전적으로 진영 논리에 의해 초청, 선택됐다. 상대 진영을 타도, 제압할 수 있다면 그 누구든 좋다는 관점에서 후보로 영입됐다. 검찰총장 시절 진보 정부의 제1 과제인 '적폐 청산'의 칼을 휘두른 최고 책임자, 실행자였다. 보수 대통령과 주요 관리들을 처벌했다. 보수에 대한 운동권의 원한(ressentiment)과 보수 정부에서 좌천된 윤석열 사단 검찰의 분노가 만나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그는 시민사회나 국민들 사이 어디에서도 보편적 의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켜 본 적이 없다."
- 임기 동안 본 모습은.
"충격을 많이 받았다. 공사 구별의 허약성이 심각했다. 윤석열 사단 위주 인사, 특정 고교 중심의 내란 준비와 음모, 공적 통제가 되지 않는 영부인 관련 행동과 발언 등이 예다. 직위가 높아질 수록 민주주의, 시민의식, 준법을 무겁게 여겨야 하는데 오히려 법을 준수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권한과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 권한 남용이 심각했던 대목들은.
"우선 대통령 집무실과 거처 이전은 헌법과 법률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백악관을 마음대로 옮길 수는 없다. 국가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이고 적법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국무회의 심의도 거치지 않았고, 현재 존재하는 국방부나 합참의 권능도 행사하지 못하게 했다.
두 번째는 '전두환의 하나회'처럼 너무 많은 사적 인연을 국가기구에 등용시켰다. 정치학 이론에서는 이를 '국가 안의 국가'라고 한다. 윤석열 사단, 김건희 여사 사적 인맥, 특정 고교, 주술이나 무속 관련인, 퇴역 민간인 장교들 등이 너무 많이 거론된다. 공적 영역을 엄정하게 법과 제도 안에서 운영해야 한다는 경계에 대한 인식이 너무 허약한 것이다.
세 번째 △5세 입학 취소 △연구 개발비 대폭 삭감 △의대 정원의 준비 없는 확대 △광복회와의 불필요한 논란 △숱한 거부권 행사 등 준비되지 않은 즉흥적, 돌발적 정책 제안이나 국가 방향 전환이 이어졌다. 야당 대표와 국회의장과의 대화 횟수보다 개인적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일본 총리와 훨씬 많이 대화했다.
네 번째는 법치에 대한 회피와 거부다. 법치의 출발은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기 자녀들을 구속까지 시켰다. 법치에 승복했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 채 상병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도 법치 아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공사 구분 붕괴 △즉흥적 정책 폭주 △법치에 대한 회피와 거부의 총합이 (이번) 내란 사태다. 결국 헌법과 국가와 국민에게 도전하는 최악 상태까지 갔다. 의회가 헌법에 입각해서 계엄 해제를 결의하고, 국민들이 광장에 나오고, 결국엔 탄핵소추를 통해 헌법재판까지 가는 3단계를 거쳐 간신히 제지할 수 있을 만큼 대통령 1인의 독임, 독주, 폭주를 제어하지 못했다."
- 대통령 리스크가 너무 크다.
"지금 한국에선 대통령제 리스크와 대통령 개인 리스크가 국가 발전의 최대 저해 요소가 돼 버렸다. 반면 그걸 민주적 제도를 통해 견제, 극복할 만큼 시민의식, 습속, 문화가 성장하고 성숙했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 정도의 내란은 용납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시민의식, 연대의식, 토양, 문화가 갖춰졌다. 과거처럼 4.19가 5.16으로 뒤집히고, 부마항쟁이 12.12로 뒤집히는 단계는 확실히 지났다. 자유를 호흡, 향유, 구가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런 계엄, 내란에 굴종, 굴복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로서 국가와 국민 수준을 너무 낮게 본 것이다. 국민을 모멸적으로 대우한 것이다. 대통령의 폭거에 탄식하면서도, 단단한 알곡 같은 빛나는 시민 의식의 발전에 미래가 있다고 느꼈다."
- '대통령제'의 태생적 한계인가.
"민주주의, 복지, 평등을 구가하는 선진국이 대부분 의회책임제인 데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 선진국이라 의회제를 하는 게 아니라, 의회제를 했기 때문에 선진국이 됐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몇 배 차이가 날 정도로 모든 지표에서 대통령제 국가를 앞선다. 대통령제는 승자 독식을 통해 독점, 독식, 독임, 독주를 가능하게 하는 탓에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한 갈등이 심하다. 권력 투쟁이 국가를 생사투쟁적 대결상태로 몰아간다.
한국, 미국, 브라질, 필리핀 등 대통령제 국가가 다 공통적이다. 타협과 협치가 부족하다. 정당이나 사회가 대통령을 배출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정당을 지배하고 사회를 갈라 놓는다. 사회적 다양성이 파괴되고 이른바 국민과 정치를 '족군(族群)주의'로 다룬다. 아래에서는 포퓰리즘과 과잉 민주주의가, 위에서는 소수의 극단적 개인 지도자의 과소 민주주의가, 열광적인 팬덤 현상에 올라타 나머지는 배제한다. 연립, 연정이 불가능해진다."
- 갈등의 부작용은.
"점점 더 작고 무능한 지도자가 배출된다. 상대 진영을 제압하기 위해 우리 편이 '차악'일지라도 선택한다.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교체하는 순간 상대에 권력을 내어주고 패배하게 되니까 비록 '악'이더라도 계속 지지하고 끌려간다. 시민, 국민이 아니라 진영의 사람(진민)이거나 정치부족이 된다. 정치가 사법화, 흑백화되고 5년 내내 전쟁처럼 싸우니 국정이 준(準)내전 상태로 간다. 권력 다툼이 심화하니 후보 중에 법률가가 늘어난다. 의회주의 실패와 법률주의의 과대 대표다. 의회나 국가의 각 요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법률가들이 초(超)과대 대표되고 있다. 곧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등장할 것이다."
- 승자독식도 심각한데.
"윤 대통령은 대선에서 겨우 0.73%포이트 차로 승리했다. 총선에서는 역대 여당 최악의 참패를 했다. 게다가 임기 절반 이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지지도가 낮았다. 협치를 했어야 하는데 무도할 정도로 승자 독식, 독임, 독주, 독선을 했다. 제도와 정치를 바꾸지 않는 한 시민들도 점점 피로에 빠지고 좌절한다."
- 내란을 의회가 막아냈다.
"주목할 세 가지가 있다. 우선 국민들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게 의회이고 정당이라는 걸 인식하게 됐다. 그간 대통령, 언론, 관료, 검찰, 시민단체 등이 일관되게 왜곡한 게 반정치주의, 반의회주의다. 실제로 민주주의 역사를 돌아봐도, 국정농단 등을 주도한 것은 대통령이지 의회가 아니다.
둘째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나서 의회가 해제를 의결했으면, 그 즉시 해제가 돼야 한다. 지금은 의회의 결의를 수용해 대통령이 해제하게 돼 있는데, 이걸 고쳐야 한다. 2차 계엄을 하는 건 아닌지 얼마나 불안했나. 의회 결의와 동시에 계엄은 실효(失效)되는 방식으로 (헌법을) 바꿔야 한다.
셋째로 더 중요한 문제는 (헌법상) 대통령 승계 조항이 전면 개정돼야 된다. 내란의 우두머리인 탄핵소추를 당한 대통령이 임명한 관료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방식은 국민주권 원리에도 맞지 않고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위반이다. 대통령 권한 승계는 국민의 주권을 통해서 선출된 자가 승계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
- 대통령제가 보다 안정적인 체제라는 평가도 있다.
"흔한 오해다. 대통령제가 훨씬 불안정할 수 있다. 우리가 4.19, 5.16, 10.26, 5.18, 6월 항쟁,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등을 다 겪지 않았나. 내각제 국가에서는 이런 위험 사태가 적다. 또 다른 오해가 국가 안보 때문에 대통령제가 필요하다는 건데 내각제인 독일은 통일을 외려 이뤘다. 대통령제가 오히려 더 자주 군 통수권이 불안하고 작동 불능상태에 빠진 순간을 맞는다. 이번처럼 쿠데타나 내란 상황 때 군은 정치화되고 내정에 동원된다. 휴전선을 지키는 게 아니라 국가기관을 접수하거나 서울로 출동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한미 동맹도 위기에 빠지지 않았나. 만약에 이 위기의 순간에 북한이 심각한 군사 행동을 도발했다면 안보, 민생, 국민 심리, 경제는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권력의 1인 집중이 국가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 대통령 권한 집중이 얼마나 심각하다 보시나.
"우리가 1987년에 직선제를 얻어낸 점을 제외하면, 현 헌법에는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에서 만든 기본 권력구조가 그대로 살아 있다. 현재 민주주의와 맞지 않다. 대통령 권력은 초집중시키고, 의회권력은 약화했다. 그 구도 그대로 '대통령 직선'만 바꾼 것이다. 대통령은 인사권, 예산권, 정책결정권을 독점하는데, 법률안제출권과 감사권도 갖는다. 인사, 예산, 정책, 감사권을 독점한다. 견제가 불가능하다."
- 개선 방안은.
"권한을 나누어 균형적 대통령제, 준대통령제를 모색해야 한다. 저는 상호 견제를 통한 '균형' 상태를 선호한다. 물론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키더라도 대통령과 의회, 대통령과 총리, 정당과 헌법 기관 등이 상시 갈등 상태에 들어가면 안 된다. 즉 승자독식, 권력독점을 막으면서도 국정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정교한 균형' 상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합쳐서, 선출 과정은 내각제지만 권력 구조나 운용은 대통령제에 가깝게 하는 방안이다. '정교한 균형'은 초기 미국과 독일(서독), 한국의 건국 교부(敎父)들이 꿈꿨던 헌법체제와 국가구조를 말한다."
- '균형적 대통령제’의 특징은.
"최소한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복수로 추천해야 한다. 장관에 대해선 국회 임명동의제를 도입해야 한다. 또 국무회의는 반드시 의결기구가 돼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의회의 견제도 가능하고, 대통령 개인과 대통령실보다 장관과 내각에 힘이 실린다. 대통령은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과반 대통령을 만들어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한다. 동시에 국회의 대표성도 크게 강화해야 한다. 각 국회의원 개인의 특권(특히 비서 숫자와 세비)은 대폭 줄이면서 전체 의회의 규모와 권한을 키우는 방식으로 바꿔야 국민의 동의를 얻고, 그들의 목소리가 반영된다. 양원제를 도입해 '공화원'과 '민주원'으로 나누어 공화원에서는 진영을 넘어선 장기 국가공통의제 즉, 저출산과 인구, 교육, 기후·생태, 평화 등을 다뤄야 항구적 대책이 나오고 합의가 된다. 민주원에서는 정부 정책, 유권자와 정당 요구, 단기 현안과 대책을 다룬다."
- 기대 효과는.
"대통령 리스크가 현저히 완화된다. 특정 기구나 특정 개인 때문에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할 위험도가 현저히 준다. 이게 선진국으로 갈수록 의회책임제로 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두 번째는 기득 세력의 타파다. 기득 세력이 권력, 자원을 독점하면 국민에게 내려가야 될 많은 가치와 자원이 상층부에만 머무른다. 권력 분산이 자원 분산의 지름길이다.
세 번째는 현저한 갈등 완화다. 균형이 잡히면 국정 연속성이 보장된다. 타협과 연정이 자리 잡으면 예측 가능한 미래가 된다. 지금은 다음 대통령, 다음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지 아무도 모른다.
네 번째는 자율성과 창의성이 꽃핀다. 대통령 바뀌는 것에 따라 눈치 보지 않고 밑으로부터 창의성이 꽃피고 민간이 결정할 수 있다. 내가 찍은 대통령이 지면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 식의 사회적 승패 관념이 사라진다. 영국이 과학혁명, 산업혁명, 기술혁명 덕분에 민주혁명이 된 게 아니다. 반대다. 민주혁명이 됐기 때문에 시민참여와 자율을 통해 놀라운 과학혁명, 산업혁명, 해양혁명, 군사혁명이 폭발적으로 따라왔다. '권력에 반대해도 죽지 않는구나', '애국심을 인정받는구나'라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 분권이 돼야 자율성, 창의성이 활발해진다.
또 우리 사회가 권력 투쟁에 과도하게 들이는 관심, 열정, 비용이 낮은 곳으로 돌려질 수 있다. 지금은 과도하게 권력의 최고 정점에 우리의 관심이 많이 가 있다. 특히 높은 자들은 서로 그걸 뺏기지 않으려고 낮은 데 눈을 돌릴 틈이 없다. 권력을 반드시 나눠야 사회와 국민생활이 안온해지고, 품격 있고, 따뜻하게 발전할 수 있다. 고르게 발전해야 덜 싸운다."
- 4년 중임제 논의는 어떻게 보시나.
"권력분산을 전제로 시도할 만한 제도다. 그러나 임기 문제는 대통령 권력 분산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중임제가 책임성을 제도적으로 안내하는 건 맞다. 다만 그것은 권력이 견제와 균형이 될 때의 얘기다. 만약 견제와 균형 없이 4년 중임을 하면, 첫 임기 4년은 막강한 권력으로 인해 '8년 단임'을 하기 위해 권력을 전횡하고 정책을 시행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 검찰 등 권력기관 문제는 어떻게 풀까.
"많은 분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검찰개혁'으로 주장할 때 저는 그 문제는 헌법 개혁 사안이라고 강조해왔다. 헌법의 검찰총장을 검찰청장으로 바꿔야 한다. 기소독점주의도 마찬가지다. 둘 다 헌법개혁 사안이다. 먼저 검찰총장이 외청 중엔 유일하게 장관급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 검찰의 규모가 2,300명 정도인데 그 안에 차관급만 40~50명이다. 우리나가 전체 국가직 공무원이 75만 명이고, 그중 정무직 차관급은 100~150 명 규모다. 검찰 직급이 과도하게 높다. 게다가 준사법기관 수준의 신분보장을 받는다. 이걸 고쳐야 한다. 기소 독점주의도 5.16 군사 쿠데타를 거치며 헌법에 들어간 조항이다. 이런 핵심 문제 몇 가지만 고쳐도 현재의 검찰 국가는 완화될 수 있고 검찰이 과대대표되는 문제를 풀 수 있다."
- 개헌 말고 입법으로 풀자는 고민도 있다.
"부분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주장이나 전체 구조는 그렇지 않다. '대통령제가 왜 저발전국, 개발도상국, 독재국가에 많은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제에서는 반드시 권력 집중이 발생한다. 분명한 선택적 친화력이 있다. 권력의 일반성 때문이다. 권력은 제도, 법률, 헌법을 통해 강제로 나누지 않는 한 집중되는 속성을 갖는다. 제도적으로 집중된 권력을 주고 '운영의 문제'로 보면 전제조건 충족의 오류가 된다. 인간은 늘 권력, 자원, 욕망을 최대로 추구한다.
또 한국의 사례나 역사와 맞지 않다. 87년 이후에 중요한 국가의 격변, 헌정 위기는 전부 헌법 사안이었고 헌법 정치였다.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 김대중·김종필의 DJP 연합이라는 정치적 합의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도 내각제 합의라는 헌법 사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와 개헌 제안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개헌제안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 및 발의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 등 헌법 사안이 대두되지 않은 대통령이 한 명도 없다.
이것을 운영의 문제나 일상 정치로만 풀 수 있다고 하면 서로 모순적인 과도한 헌법주의나 과도한 인물주의에 동시에 빠질 수 있다. 각각 헌법을 지엄하고 고결한 정전주의나 신화주의로 접근하여 불변의 대상으로 집착하거나, 반대로 헌법은 그냥 하나의 추상적 원리이고 장전일 뿐이라고 여기고 얼마든 헌법 밖에서 정치와 정책을 펴나갈 수 있다는 식이 될 수 있다. 서로 지극히 모순적인 주장이지만 둘은 사실상 같은 것이다. 저는 헌법은 신주 단지도 아니고 죽은 정전도 아니라고 본다. 미국은 헌법을 자주 고쳤다. 대통령제, 삼권분립, 연방제를 제외하면 미국의 헌법은 사실상 개헌을 통해서 완성된 것이다."
- 역대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왜 그렇게 많았다고 보시나.
"그게 실제 국가를 운영해 본 분들의 공통적 토로다. 김영삼 · 김대중 전 대통령은 큰 지도자였는데도 국가를 운영해 보니 문제가 많다고 느꼈다. 김영삼 · 김대중 · 노무현 대통령 모두 제가 면담할 때 토로하였다. 초기에 대통령 권력이 정점일 때에는 못할 게 없을 것 같으면서도 국민 모두가 대통령만 바라본다는 중압감이 크다. 또 너무 많은 사안이 집중되니 국가의 중장기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현안 해결에 급급하다. 국회의원, 장관, 정부 각 기관 전부 청와대 눈치만 보고 기다리고, 청와대 직원들은 대통령만 바라보는 이런 수직적 구조를 이분들이 다 느꼈다.
그러다가 임기 후반으로 가면 야당은 물론 여당도 도와주지 않아서 청와대가 고립된다. 대통령에서 차기 대권 후보로 권력이 넘어갈 때는 관료들까지도 눈치를 보면서 작동이 어렵다. 이 세 분 중 한 분은 '이건 5년 단임이 아니라 4년 단임제'라는 표현을 쓰셨다. 마지막 1년은 여당도 존중해주지 않고, 모두 대선 준비에 넘어가서 상당히 힘들다는 것이다. 너무 갈등이 높고 이 권력을 나누지 않고, 지방 분권을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위험하다고 정말 힘줘 강조했다."
- 모두 제안했는데 왜 개헌은 안 됐을까.
"책임감과 절실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헌을 계속 언급했지만 누구도 이걸 자기 집권, 권력유지, 자기 진영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핵심이었다. '비록 이번에 우리 진영이나 내가 집권을 못해도, 어떤 지도자가 오더라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반석에 올려놓고 싶다. 좋은 헌정 체제에서 우리 후손들을 살게 하고 싶다'라는 애국심과 충정이 있었으면 지도자들이 타협 못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모두가 '이번에 내가 집권을 하고 그다음에 개헌을 하면 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일반 본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3당 합당과 DJP 연합이라는 초기 연립정부 시기를 지나, 자신의 임기를 줄여서라도 개헌하려는 의지를 가졌던 지도자는 노무현 대통령밖에 없었다."
- 아쉬운 국면이 많으셨나.
"개인적으로 참 안타까웠던 계기가 많았다. 보수건 진보건 승자독식의 추구는 다르지 않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당시 야당, 진보 진영을 보자. '지금은 탄핵에 집중해야 될 때'라며 다른 얘기를 봉쇄했다. 당시 저는 '탄핵은 헌재에 맡기고. 처벌은 검경에 맡겨라. 의회가 할 일은 미래에 있다'고 제안했다. '의회(parliamentary) 자체가 미래를 놓고 대화하라(parler)'는 의미다. 법치는 잘못을 처벌하고, 정치는 미래를 논한다'고 했더니, 그때 많은 분들이 거꾸로 저를 설득했다. '지금 탄핵에 집중해야 된다. 보수를 도와주는 개헌 논의로 관심을 분산시키지 말자. 개헌은 집권하고 나서 하면 된다'고.
제가 당시에도 그런 방식과 수순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지금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당시와 현재 같은, 최고 권력 부재 기간(interregnum)이나 국민 주권이 작동하는 상황, 이른바 '헌법의 순간'이야말로 헌법개혁의 적기인데, 거꾸로 우리가 승자독식을 통해 집권하고 나서 권력이 안정되면 그 때 우리 주도로 개헌을 추구한다? 타협을 통한 좋은 헌법 만들기 차원에서 보면 그건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 집권 후 개헌은 왜 어려울까.
"선(先)대선 후(後)개헌을 지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헌법 정치의 순간을 계속 놓쳐 왔다. 권력 장악과 상실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분권, 민주주의, 헌법 개혁 같은 불확실성보다는 집권이라는 '눈앞에 있는 떡'이 훨씬 커 보인 것이다. 집권이라는 정치적 현찰이 바로 내 눈앞에 있는데, 아무리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미래의 어음을 절대 사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 겉으로 말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개헌에 소극적이다. 그렇다 보니, 헌법 개혁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거나 너무 무겁게 생각한다. 우선 너무 가볍게 막 개헌을 제안한다. 그리고는 막상 하려고 보면 권력을 나누는게 너무 무겁다는 걸 깨닫는다."
- 이번에도 비슷하게 흘러가면.
"저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상당히 어렵다고 본다. 탄핵에 더해 내란 상태까지 겪고 나서도 이 헌법을 고치지 않고 '집권을 하면 얼마든지 우리 쪽은 유능하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독선이거나 환상, 둘 중의 하나다. 지금은 선출직 국가지도자들이 계속 작아지고 있다. 정치 경험도 아주 적다. 앞의 큰 지도자들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을 '나는 넘어설 수 있다'고 믿으면 오만이고 위험한 생각이다."
- 지금 어떤 논의가 필요하다 보시나.
"대화를 통한 헌법 정치의 복원이다. 절대적으로 화급하다. 이런 헌정 위기가 다시는 오지 않도록 의회가 서둘러 나서야 한다. 국민의 대표들이 여기서 유불리를 따지면 안 된다. 헌법 위기가 반복되는 것은 그간 권력 장악과 권력 상실의 관점에서만 이 문제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헌법 개혁을 통해서 불확실성을 제도화하고 누가 집권하든지 똑같은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권력은 나누라고 있는 것이다. 0.73%포인트 이기고도 73%포인트 이긴 것처럼 승자독식하는 상황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
- 국민의힘이 개헌론 띄운 데는 의도가 있다고 보는 시선도 많다.
"그것조차 활용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그간 윤석열 정부의 일방주의, 승자독식에 맞서 지금껏 협치와 대화를 주장해오지 않았나. 헌법 개혁에 고작 8석만 부족한 지금의 거대 야당만큼 좋은 조건이 어디 있나. 여당은 현재 대통령이 탄핵 당했고 내란당으로 몰려 있다. 함께 미래를 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거대 야당으로서 협치와 타협의 능력을 보여주는 게 집권 이후에 국정의 방향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물론 개헌을 안 해도 집권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부에서 야당과 대화하고 통합적으로 국정을 운영할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탄핵과 개헌 논의는 서로 다른 트랙이자 경로다. 나란히 갈 수 있다. 그게 의회 정치의 본령이다."
- 국민 공감대는 어떻게 얻어야 할까.
"헌법 개혁 과정은 국민의견을 수렴해, 국가를 개혁하고, 미래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느냐를 정하는 토론과 합의의 과정이다. 국민투표보다는 훨씬 넓은 차원의 국민 참여 과정이 병행돼야 한다. 국회에 헌법개혁특별위원회나 기구가 구성돼 △정당의 전국적 토론과 의견 수렴 △언론의 상세하고 적극적인 보도 △시민사회 학계의 의견 제시와 참여 △숙의와 공론 조사 등을 담아내야 한다. 우리 국민의 민주의식과 애국심이 높기 때문에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갈 것이다. 다만 전문성이 결여돼 있는 언사나, 정제되지 않은 선동 및 포퓰리즘 등은 헌법 문제에 있어서는 지극히 자제돼야 한다. 헌법은 미래의 공동체의 운명과 직결된 사안이다. 가장 아름다운 미래 건설 과정이 돼야 한다. 우리 세대에 그것을 꼭 이루어, 후대들은 좀 더 안정되고 평온한 나라에서 살게 하였으면 좋겠다. 새해의 가장 절실한 개인적 소망이다. "
‘대통령제 개선’은 학계에서도 바람직한 수단, 변화 폭, 속도를 두고 이견이 분분한 이슈다. 정치 개혁을 두고 이미 큰 공감대를 이룬 학자들조차 ▲대통령 권한을 얼마나 줄일지 ▲개헌으로 풀지 입법으로 풀지 ▲내각제 등 정부 형태와 성격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숙의 속도나 방법은 무엇이 적절할 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평소 의견이 90% 일치하는 학자조차 서로 다른 10%가 여기서 갈린다”는 평도 나온다. 한국일보는 ‘대통령제, 새로고침’을 위한 난상의 시작을 위해, 역대 정부 및 국회 논의에 깊이 참여한 전문가의 진단을 차례로 싣는다
<상> STOP 권력 쏠림
<중> 유불리 말고 민주주의
<하> 승자독식 넘어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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