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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대립, 양극화 정당..."국회 개혁 없는 대통령제 개편 소용없다"

입력
2025.01.03 04:30
수정
2025.01.03 06:2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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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제, 새로고침
<하> 승자독식 넘어 미래로
정략 대결에 국회 신뢰도는 바닥
대통령제 개편? 국회도 함께 변해야
공천제도, 선거제도 등 개선 시급
국민은 '국민소환제' 압도적 찬성

편집자주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내란 사태'라는 역대 최악의 헌정 위기로 한국 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인물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두 문제가 만난 비극인가. 한국일보는 2025년 신년을 맞아 전문가들과 현행 대통령제 운영 방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이를 담은 '대통령제, 새로고침' 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헌재기가 휘날리고 있다. 뉴스1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헌재기가 휘날리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불법 계엄 사태를 계기로 현행 대통령제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독재 권력을 막겠다며 1987년 헌법에 도입된 '5년 단임제'가 마침내 소명을 다한 만큼, 대통령 1인 권력 집중 체제에 메스를 가하고 새로운 통치 체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학자들은 여기에 '국회 개혁'을 더한다. 타협과 협치가 실종된 정치 양극화 문제에 대통령만큼이나 국회 역시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뜯어고쳐도 권력의 또 다른 축인 국회를 그대로 둔다면 결국은 '미완의 개혁'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유권자들의 관심과는 동떨어진, 정쟁을 불러 일으키는 내용의 정치 현수막. 고영권 기자

유권자들의 관심과는 동떨어진, 정쟁을 불러 일으키는 내용의 정치 현수막. 고영권 기자


좌파 척결·적폐 청산…여야 그들만의 싸움

국회 개혁의 필요성은 국민 신뢰도만 봐도 충분하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수행하는 기관신뢰도 조사를 보면, 2023년 국회는 24.7%로 전체 기관 평균(51.1%)을 한참 밑도는 꼴찌였다. 2013년 조사 이후 10년이 되도록 꼴찌를 벗어난 해가 한번도 없었다. '동물국회' '국민을 등진 섬' '특권 클럽' '민생 브레이크' 등 비아냥에 가까운 부정적 표현만 늘어날 뿐이었다.

이유는 수없이 많다. 거대 양당제인 우리 국회는 정책과 이념 경쟁보다 정당간 이권 싸움, 선거 승리를 위한 당리당략적 행태에 몰두하는 경향이 짙다. 여당은 대통령에게 종속돼 정권 유지와 재창출에만 공력을 집중하고, 야당은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흠집내고 끌어내리려 어깃장만 부린다. 항상 '민생·경제'를 부르짖지만, 관련 법안은 뒤로 밀리기 일쑤다.

당연히 국회는 '비효율의 극치'라는 평가가 내려진다. 2016년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테러방지법을 발의하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8명의 의원들이 192시간 동안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사생결단에 나설 만큼 중요한 의제라고 아우성을 쳤는데, 정작 집권당이 된 20대 국회에서는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현 정부에선 야당의 입법 강행과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무한 루프처럼 이어졌다. '좌파 척결' '적폐 청산' '검찰 개혁'처럼 비실체적이고 상징적인 권력 투쟁 이슈가 중심부에 자리하면서, 여야 대립은 일반 시민과 무관한 싸움으로 이어졌다. 김용복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이지만 정작 의원들은 당론에 따라 움직이고, 그 결과 양당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정치 양극화만 더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극한 권력 투쟁 내몰리는 여야

헌법과 정치 전문가들은 이를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5년 단임제'의 폐단으로 해석한다. 여당은 대통령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고, 야당은 절대 권력을 위한 다음 대선 승리에 모든 걸 쏟아부을 수밖에 없도록 '판'이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엇갈리는 대통령(5년)과 국회의원(4년) 선거 주기도 정치 양극화를 극단으로 끌어올리는 요인 중 하나다. 대략 2년 간격으로 선거가 교차되는데, 대선 사이에 낀 국회의원 선거가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지지하는 당 후보의 당선보다, 대통령이 속한 당의 후보를 떨어뜨려야 하는지 여부가 투표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는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 대부분 야당이 다수파인 분점정부(여소야대)였고, 이에 따른 국회 교착은 여지없이 반복됐다.

물론 분점정부 상황을 타개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의원 영입(의원 꿔주기), 대통령의 여당 장악 등 인위적인 정계개편에 손을 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장의 자구책에 여야는 결과적으로 극한 권력 투쟁에 더욱 내몰렸야 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그래픽=강준구 기자


공천·선거제 개편..."후진 정치 문화 뜯어고쳐야"

이에 따라 공천제도 개혁, 선거제도 개편, 진성 당원 양성을 통한 정당 정치 시스템 개선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현진 성신여대 교수는 "(이번 윤석열의) 비상계엄이라는 비정상 상황에서 여당 의원이 지도부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건 결국 (대통령 눈치를 보는) 당 지도부의 공천권 때문"이라며 "중앙에서 결정하는 공천권을 상향식(당원·국민이 후보자 결정)으로만 바꿔도 의원들이 소신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에게, 당 지도부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는 정당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선거구제 개편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선거법에서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의원만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현 제도에선 필연적으로 지배적인 양당 체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용복 교수는 "가령 경남은 40%가 야당 지지자인데도 현 제도에선 1등에 밀려 민의 반영이 전혀 되지 않는다"며 "결국 거대 정당 중심의 양당제를 고착화시키고 정치적 다양성이 감소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안으로 꼽힌다.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결합한 형태로 각 정당 의석 비율을 정당 지지율과 최대한 일치하도록 설계한 게 특징이다.

그래픽=강준구 기자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그래픽=강준구 기자


"의사결정 왜곡, 당내 계파 정치도 손봐야"

2020년 총선 때 도입한 준연동형 방식도 다시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이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수가 전국 정당 득표율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차이만큼 일부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해 총 의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양당 정치가 고착화된 국내 특성상 대부분 지역구 의석이 거대 정당의 몫으로 돌아가는 걸 보완하겠다며 도입했는데, 오히려 꼼수 위성정당 등장으로 제도 도입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례 의석을 기존 47석에서 120석까지 대폭 늘리는 등 방법으로 정치 다양성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이 꾸준히 제기된다.

계파 정치가 득세하는 정당 구조 개편도 지적 대상이다.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의원 개인의 책임 정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특정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반대자엔 일방적 혐오와 공격을 가하는 '팬덤 정치'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치 다양성이 더욱 소멸되고 있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종빈 명지대 미래정치연구소장은 "1987년 민주화 이후 38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소수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계파들이 정당과 국회 운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이는 당내 의사결정 구조의 왜곡을 초래한다"고 꼬집었다.

본보가 실시한 신년여론조사에선 국민이 임기 도중이라도 국민 신뢰를 잃은 국회의원을 소환해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소환제' 도입 찬성 의견이 92%에 달했다. '방탄 국회' 등 구태 이미지가 적잖은 국회에 대한 쇄신 여론이 그만큼 높은 셈이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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