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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대통령 권한 절제 못해 尹 실패... 중간평가 4년 중임제가 해법"[신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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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내란 사태'라는 역대 최악의 헌정 위기로 한국 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인물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두 문제가 만난 비극인가. 한국일보는 2025년 신년을 맞아 전문가들과 현행 대통령제 운영 방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이를 담은 '대통령제, 새로고침' 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
12·3 불법계엄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헌정질서를 유린한 윤석열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돼도 반성이 없다. 급기야 대통령을 엄호한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당하면서 사상 초유의 '대행의 대행' 체제까지 등장했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가 양보와 대화, 타협이란 정치의 본령을 외면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비극을 맞이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가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8)를 인용하며 윤 대통령의 실패를 짚었다. 책에서 민주주의 지킴이로 강조한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 모두 윤 대통령은 무시했다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야당을 정치적 파트너가 아니라 적으로 규정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모두 다 끌어쓰는 위험천만한 대통령이 또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극단적 팬덤주의와 양극화 정치가 기승을 부릴수록 이 같은 리스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도자의 선의에 기대기 어렵다면, 그 선의가 잘 작동하도록 제도와 법을 손질해나가야 한다.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을 강조하고 나선 이유다.
김 전 의장이 구상하는 개헌의 골자는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책임총리제 도입이다. 대통령이 중임이 가능하면 재선을 의식해 국민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이고, 국회가 국무총리를 뽑는 책임총리제를 적용한다면, 대통령이 잘못된 권한을 행사하더라도 견제할 수 있어 지금보다 한결 더 민주적 국정운영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는 "책임총리제가 도입됐다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합의한 헌법재판관을 임명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의 호텔에서 대면 만남에 이어 추가 서면으로 진행됐다.
김 전 의장은 윤 대통령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너무 많이 행사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윤 대통령은 2년 7개월 재임기간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무려 25차례 행사했다.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한 차례도 쓰지 않은 거부권이다. 김 전 의장은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야당도 만나지 않고 국회에 오지 않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니 마땅한 수단이 없는 야당이 탄핵소추안(2일 기준 29차례)을 발의하며 갈등이 증폭됐던 것"이라며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극단으로 치닫게 된 근본 원인은 윤 대통령"이라고 짚었다.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의 횡포를 탓했지만, 과거 여소야대 정국에서 성공한 대통령의 사례는 적지 않다고 김 전 의장은 강조했다. 핵심은 야당을 비롯한 국회와의 대화와 타협이었다. "DJP 연대로 집권한 DJ 정부는 15·16대 국회 모두 여소야대였지만 장관들에게 의회와의 협의를 강조하며 재벌개혁, 금융개혁, 노동개혁 등의 성과를 냈습니다. 노태우 정부도 여야 타협의 정치를 통해 5∙18 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 제정을 이끌었고, 국회와의 협력 속에 남북 유엔(UN) 동시 가입, 남북 기본합의서 타결, 한반도 비핵화선언 등 굵직한 성과를 만들었죠."
그는 "윤 대통령은 상대를 정치적 파트너가 아니라 소멸시켜야 할 적으로 간주하면서 노태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보인 '큰 정치'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고 비판했다.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대통령제를 바꾸려는 개헌 구상은 다양하다. 하지만 김 전 의장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유독 강조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판단에서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인식이 누구보다 강해요. 대통령제를 떠나서 개헌 논의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가 국회의장 시절 수차례 집단심층면접(FGI)을 통해 확인한 가장 선호하는 권력구조는 4년 중임제였다. 개헌은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만큼 국민적 공감대가 필수다.
저출생 등 국가적 과제에 중장기적으로 대응하고, 책임정치가 가능하다는 점도 4년 중임제의 강점으로 꼽힌다. 김 전 의장은 "5년 단임제하에선 대통령의 시야가 5년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보니, 근시안적 정책에만 급급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4년 중임제로 가면 중간평가를 통해 정책의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단 점에서 미래지향적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전 의장은 다음 개헌의 핵심은 인구 절벽 문제를 해결할 '저출생 개헌' 논의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4년 중임제가 오히려 대통령제에 힘을 싣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책임총리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한다면, 지금처럼 대통령의 뜻을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독립된 2인자로 대통령의 권력을 효율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는 취지다. 김 전 의장은 DJ 정부 당시 기용됐던 야당 출신의 김종필, 박태준 총리가 ‘책임총리’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대 개헌 논의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김 전 의장도 재임 시절 국회 개헌특위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완수하지 못했다. 이에 "의장만 절실했던 개헌"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결국 개헌의 성패는 권력자들이 얼마나 진정성과 의지를 갖고 있느냐에 달렸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는 개헌을 부르짖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면 모든 국정 현안이 개헌 블랙홀로 빠져들까봐 주저한다. 여야의 이해관계가 상반돼 추동력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김 전 의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 책임을 다해 헌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국회의원들을 적극 만나 설득하려는 의지가 부족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헌 논의에 누구보다 절실했지만 당시 야당이 정략적이라며 반대했다”고 꼬집었다.
개헌의 골든타임으로 이르면 윤 대통령이 파면 이후 치러질 조기 대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내년 지방선거를 꼽았다. 김 전 의장은 "헌정질서가 안정(윤 대통령 탄핵 절차 마무리)되면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대선주자들이 본격적으로 개헌을 띄워야 한다"면서 "개헌을 차기 대통령이 아닌 이번 대선부터 적용하도록 진심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가 개헌을 정략적 돌파구로 활용하지 말고, 불법계엄으로 무너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재설계하는 대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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