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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판알' 튕기는 대선 주자들... 野 "탄핵 집중" 與 "대통령제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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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내란 사태'라는 역대 최악의 헌정 위기로 한국 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인물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두 문제가 만난 비극인가. 한국일보는 2025년 신년을 맞아 전문가들과 현행 대통령제 운영 방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이를 담은 '대통령제, 새로고침' 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
대통령제 등 권력 구조 개편은 미래 권력에도 중요한 숙제다. “87헌법 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오세훈)는 주장부터 “정치 양극화 해소를 위해 개헌과 선거제 개편을 해야 한다”(안철수)는 의견까지, 큰 틀에서 현행 대통령제에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은 비슷하나 세부적 방식이나 시기에 대한 생각은 제각각이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대표처럼 "지금은 탄핵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시큰둥한 이들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불법 계엄 사태'로 물꼬가 트인 개헌의 시계추가 여당과 야당의 정치적 셈범에 따라 좌우로 요동을 치고 있다.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한 호응도는 아무래도 여권 쪽이 강하다. 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정권 교체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 개헌에 따른 차기 대통령의 권한 약화가 '잠재 야당'에 분명 유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18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이후 이재명 대표를 만나 “대통령 중심제 국가가 과연 우리 현실과 잘 맞는지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개헌 카드를 꺼냈다. 국민의힘 새 비대위원장으로 지명된 권영세 의원 역시 개헌을 취임 후 추진할 주요 과제로 언급하며 개헌론 띄우기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개헌 논의를 위한 당 태스크포스(TF) 발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의 주요 잠룡들도 나서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오 시장은 지난달 23, 24일 범여권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 결과에서 여권 내 가장 높은 지지율(19%)을 기록하는 등 차기 대선 잠룡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 그는 지난달 4일 비상계엄 선포 관련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국가 운영 구조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며 가장 먼저 개헌 논의에 운을 뗐다. 이어 23일엔 페이스북에서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정치권 전체가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개헌 필요성을 재차 언급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개헌에 적극적이다. 2022 대선 출마 당시에도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안 의원은 이번 계엄 사태 이후에도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 의사 반영 안 되는 현행 소선거구제 개편하고 대통령 권력 줄이는 방향으로 개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역시 지난달 22일 MBN 뉴스에 출연해 “1987년 체제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대통령) 4년 중임으로 개헌해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시정하되 (대통령이) 폭정으로 가지 못하도록 감시·견제하는 장치를 헌법안에 많이 도입하자”고 말했다. 유 전 의원 역시 현행 소선거구제 대신 중대선거구제로 선거제를 바꾸자는 입장이다.
반면 야권의 속내는 복잡하다. 큰 흐름에서 현행 대통령제에 손질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당장 개헌을 추진하자는 여당 제안은 달갑지가 않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아무래도 야권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단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개헌 논의를 탄핵 정국 속 국면 전환을 위한 ‘물타기 전략’으로 비판하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탄핵에 협조하기 싫으니 보이콧하는 차원에서 개헌을 꺼낸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탄핵하고 나면 별도로 논의할 수 있다”면서 현재로서 개헌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지원 의원 역시 26일 한 방송에서 “현재는 개헌의 ‘개’ 자나 대선의 ‘대’ 자를 꺼내는 것은 일종의 내란 동조세력이라고밖에 저는 볼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물론 민주당에서도 물밑으로 다른 흐름이 있다. 김경수 전 지사나 김동연 경기지사, 김두관 전 의원 등은 사실상 개헌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표와 당권 경쟁을 벌였던 김두관 전 의원은 지난달 20일 부산에서 열린 ‘21세기 K-민주주의는 개헌으로!’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에서 “지금은 개헌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제왕적 5년 단임제를 분권형 4년 중임제로 바꾸고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 역시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차기 대선은 여야 후보 모두 대통령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하는 장치를 두자고 약속할 것”이라며 “그중 하나가 개헌”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김 전 총리는 앞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이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사회적 합의로서의 헌법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탄핵 국면에서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으로 떠오른 우원식 국회의장도 스스로 "개헌론자"라고 밝힌 만큼, 권력 구조 개편에 호의적이다. 지난달 19일 외신기자회견에서 “대통령 권력을 분산해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라며 기존의 소신을 재확인했다. 다만 탄핵 이후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는 민주당 주류 입장을 조금은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눈길을 끄는 건 아무래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차기 대선 잠룡 중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앞선 2022 대선에서 ‘4년 중임제’를 포함한 단계적 개헌 추진을 10대 공약 중 하나로 공식화했다. 여야 합의로 개헌이 이뤄지면 대통령 임기는 1년 단축하고 국무총리 역시 국회에서 추천하도록 하며 국무총리에게 국무위원 추천권 등 헌법상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는 내용을 덧붙였다.
그간의 발언 등을 보면, 이 대표는 분명 '개헌 찬성론자'에 가깝다. 2023년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 책임 정치의 실현과 국정 연속성을 높여야 한다"며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이에 더해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와 감사원 국회 이관 등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관건은 이 대표가 현재 가장 유력한 '미래 권력' 중 한 명이란 점이다. 역대 '미래 권력'들은 대체로 개헌에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조기 대선이 치뤄질 경우 당선이 가장 유력한 이 대표 입장에서도, 대통령의 임기나 권한을 줄이는 개헌이 매력적인 카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개헌 제안에 "헌정 질서의 신속한 복귀가 가장 중요하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대통령제 개편은 앞선 역사에서 정치인들의 정치적 셈법에 따라 입맛대로 사용됐다. 어떤 대통령도 대선 후보에서 당선 이후까지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지 못했다. 대표적 사례가 DJP연합이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는 “집권 후 2년 안에 내각제 개헌을 하겠다”며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DJP연합을 결성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정작 당선 이후엔 IMF 외환위기로 촉발된 경제 회복이 시급하다는 이유를 들어 내각제 개헌 논의를 유보했다.
박근혜 후보도 2012년 대선 당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대통령 4년중임제’와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 강화’를 포함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당선 이후에는 “개헌이라는 것은 워낙 큰 이슈여서 블랙홀처럼 모두 빠져든다”(2014년 1월 새해 기자회견), “개헌으로 모든 날을 지새우면서 경제활력을 찾지 못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2015년 1월 새해 기자회견), “우리 상황이 (개헌론이) 블랙홀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여도 상관없는, 그런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다”(2016년 1월 새해 기자회견)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헌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대선 국면 이전에 관련 논의를 못 박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후보 시절 대선 공약 안에 개헌과 관련한 구체적 시기를 정하거나 여야 후보 간 합의하에 발의를 해놓아야 집권 이후 쉽게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개헌절차법을 협의하는 등 구속력 있는 방안을 가지고 실제로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논의가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최소한 형태로 약속을 받아 내도록 압박”하자는 것이다. 서현진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교수 역시 "지금의 탄핵 국면이 미래 정치 체제를 고민할 시험대"라며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더 공고해지는 터닝포인트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상> STOP 권력 쏠림
<중> 유불리 말고 민주주의
<하> 승자독식 넘어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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