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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분권형 대통령제? "독주 견제하되 효율적 국정운영" 균형점 찾는 게 관건

입력
2025.01.02 11:00
수정
2025.01.03 06:1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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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제, 새로고침
<중> 유불리 말고 민주주의
“대통령 권한 줄여야” vs “내각제가 더 위험”
미국식 '4년 중임' 책임성 보장에 도움 될까
‘국무총리 누가 선임? 권한은 얼마나?’

편집자주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내란 사태'라는 역대 최악의 헌정 위기로 한국 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인물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두 문제가 만난 비극인가. 한국일보는 2025년 신년을 맞아 전문가들과 현행 대통령제 운영 방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이를 담은 '대통령제, 새로고침' 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한.

각 국가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정부제 등 크게 셋으로 나눠진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각 국가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정부제 등 크게 셋으로 나눠진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국정을 역동적으로 운영하면서도, 독주는 하지 않는 정부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그간 '대한민국 대통령제를 손보자'는 논의가 붙들어 온 화두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본보의 이번 신년여론조사를 포함, 각종 조사에서 국민들은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정치권의 권력구조 개선 논의가 주로 대통령제의 토대 위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다만 디테일까지 같은 건 아니었다. 누가 주도권을 쥐든, 적극적인 국정 운영을 하면서 삼부(입법부 · 사법부 · 행정부)가 제대로 견제할 수 있는 적정선을 두고는 이견이 갈렸다. 현행 '5년 단임제'를 유지하자니 힘센 대통령의 독주가 문제고, 빈번한 여소야대 국면에 대통령과 야당은 강대강으로 맞붙으며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렇다고 내각제 요소를 더해 국회 권한을 키우자니 신뢰하기 어려운 국회나 그 신임을 받은 총리에게 국정 운영권(행정권)을 내줘도 과연 괜찮겠냐는 고민이 남는다.

그래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에 대한 세세한 쟁점은 난맥투성이다. 개편 필요성이 도마에 오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의지의 문제일 뿐, 선택지는 다 준비돼 있다'는 말이 쉽게 와닿지 않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제를 어떻게 손보느냐'를 논하다 보면 선거개혁 및 권력기관 개혁 방안 등의 세부 과제도 따라 나온다. 이를테면 '국회 권한을 키우는 내각제적 요소를 더하겠다고? 거대 양당이 장악한 현 국회를 그냥 두고?', '경찰과 검찰 등 권력기관이 대통령의 눈치 대신 총리 눈치를 볼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 논의가 맞물린다. 각 제도의 특징과 그간 논의 과정에서 살폈던 세부 쟁점 등을 더욱 꼼꼼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 식당에서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 주최로 열린 전 국회의장·국무총리·정당 대표 초청 긴급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 식당에서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 주최로 열린 전 국회의장·국무총리·정당 대표 초청 긴급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대통령제 특징 '임기 안정성'인데

국가 통치 방식, 즉 권력구조는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정부제 등 크게 셋으로 나눠진다.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으로 실질적 국가 통치의 핵심 지위를 차지하는 제도다. '한국의 롤모델'인 미국이 대표적인 대통령제 국가다.

같은 대통령제라고 해도 운영 방식엔 약간에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4년 중임제(대통령) 및 상하원제(국회)가 비교적 유기적으로 작동한다는 평가다. 각 정당 규율보다 상원의 영향력이 강한 데다, 연방제에 기인한 지역 중심 정치가 제대로 자리 잡은 덕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 정치도 극심한 양극화로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멕시코, 칠레, 콜롬비아, 터키 등은 대통령제가 맥을 못 춘 대표적 국가다. 극단 대결 정치, 정쟁, 쿠데타, 무장대립 등이 이어졌다. 독일 헌법학자 카를 뢰벤슈타인은 이런 현상을 두고 "대통령제는 미국 국경을 넘는 순간 민주주의에 대한 '죽음의 키스'로 변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대통령제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대통령의 '임기 고정성(안정성)'이다. 탄핵 같은 극단적 예외 상황을 빼면 대통령이 사임을 강요받지 않아 안정적인 정책 추진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1987년 이후 '5년 단임'을 위해 선출된 대통령 8명 중 3명이 재임 중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절반 만에 탄핵 정국을 자초, 대통령제가 제대로 작동 중이냐는 의구심을 잔뜩 키워 둔 상황이다.

의원내각제는 의회가 선출한 총리에게 내각을 맡기는 제도다. 유권자는 의회 선거만 치르고 행정 수반은 의회가 뽑는다. 의회가 신임하는 총리가 행정부를 통해 내치를 이끌지만, 의회가 불신임 하면 내각은 물러나야 한다. 이 경우 총리는 의회를 해산시키고, 총선으로 유권자에게 '재신임'을 물을 수 있다. 영국, 독일, 일본 등이 내각제 국가다. 탄핵이 예외적으로 여겨지는 대통령제보다는 유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의회 구성과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 지난한 민주화 투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어렵게 성취한 만큼, 내각제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높은 편이다.

이원정부제는 외형상 대통령제와 비슷해 보이지만, 내각제적 속성을 많이 포함하는 체제다. 직선 대통령이 실질 권력을 갖지만 동시에 의회 신임을 받는 총리 또한 헌법에 규정된 고유 권한을 갖는다. 대통령과 '총리가 이끄는 행정부'가 힘의 균형을 이루는 형태다. 양측 권한이 명확하지 않으면 정치체제 불안정, 책임소재 분산, 갈등 격화가 이어진다는 우려도 있다. 통상 프랑스, 폴란드를 이원정부제 국가로 본다. 이 틀을 어떻게 변주하느냐에 따라, 또 대통령제나 내각제 중 어느 쪽에 더 가깝냐에 따라 준(準)대통령제, 총리형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 책임총리제, 준(準)내각제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한국일보와 한국리서치의 신년 여론조사. 응답자들은 가장 선호하는 정부 형태로 '권한을 대폭 축소 혹은 분산한 대통령제'를 꼽았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 이번 여론조사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는 지난해 12월 22, 23일 전화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한국일보와 한국리서치의 신년 여론조사. 응답자들은 가장 선호하는 정부 형태로 '권한을 대폭 축소 혹은 분산한 대통령제'를 꼽았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 이번 여론조사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는 지난해 12월 22, 23일 전화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준대통령제냐 준내각제냐

정치권에서는 미국식 '4년 중임안'을 도입하되 이원정부제와 유사하게 총리 역할을 키우는 형태의 한국형 대통령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자주 나왔다. 우선 4년 중임은 정권의 중간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무능하면 조기 퇴진을 시키고, 유능하면 연속성을 부여하자는 취지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문재인 당시 후보가 공히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헌안,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개헌안에도 모두 4년 중임안이 포함됐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중임제 도입이 권력을 분산하는 결정적 변수로써 크게 기능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4년 중임을 하자는 건 문제의 대통령에게 8년의 기회를 주자는 것으로 중임제 도입만으로는 승자 독식, 양극화 등을 고칠 수 없다(강원택 서울대 교수)'거나 '중임제에 책임성을 안내하는 기능이 일부 있지만, 그것도 권력이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의 얘기(박명림 연세대 교수)'라는 지적 등이다. 다른 권력 분산 조치와 제대로 맞물릴 때 비로소 효과가 있다는 취지다.

권력 분산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분권형 대통령제, 준대통령제, 책임총리제 등은 그 정도와 방법을 어떻게 달리 하느냐가 관건이다. '분권형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뜯어보면 추구하는 변화의 정도가 다르다. 예를 들면, 2014년 강창희 당시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6년 단임의 분권형 대통령제와 국회 양원제, 국민주권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내놓으면서 '대통령은 통일·외교·안보 등 외치에 전념하고, 국회가 선출한 국무총리에게 행정부 수반 지위를 줘 내치를 전담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안에는 국회 양원제 도입도 포함됐다.

2015년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도 같은 취지의 '오스트리아식 이원정부제'를 내놨다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공개적인 반대에 직면하기도 했다. 2017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가 가동되던 당시에는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3당 간사들이 개헌 특위 밖에서 이와 같은 골자의 안에 합의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위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문제는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과 권한 간 경계가 애매할 수 있는 데다 해당 안이 '대통령제로 포장된 내각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한미 FTA나 개성공단 문제를 국방, 외교, 경제 중 어떤 문제로 볼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총리의 뜻이 다를 경우 누가 주도권을 쥐고 해결할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국민이 아닌 의회가 선출한 총리가 내치를 이끄는데도 여전히 이를 ‘한국형 대통령제’라고 불러 여전히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온당한지 등도 고민이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개헌을 주장하는 한편, 개헌 없이도 가능한 '책임총리제'를 함께 제언했다. 이미 헌법상 보장돼 있지만 실제 사용되지 않는 국무총리의 장관 임명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보다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현행 헌법상 국무총리는 정부를 구성할 수 있지만 이는 역대로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불손한 개입'쯤으로 인식되며 실제 행사된 적은 거의 없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국회의장 직속 '국민 미래 개헌 자문위원회' 위원인 김종민 무소속 의원은 20대 국회 개헌특위 당시 "대통령이 이끄는 국정 지휘권의 일원성은 유지하되 총리 추천에 국회가 참여하고, 총리가 국무위원을 제청하는 방식으로 내각 구성에 참여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진지하게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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