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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한 명이 국가 흔들고 분열… 양극화 해소 위해 권한 나눠야" [인터뷰]

입력
2025.01.01 04:30
수정
2025.01.03 06:1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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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제, 새로고침
<상> STOP 권력 쏠림
<1> 강원택 서울대 교수
"전두환도 6월 항쟁 때 안 부른 군 불러낸 윤석열"
"지도자 아닌 싸움꾼을 대통령으로 뽑은 결과"

편집자주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내란 사태'라는 역대 최악의 헌정 위기로 한국 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인물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두 문제가 만난 비극인가. 한국일보는 2025년 신년을 맞아 전문가들과 현행 대통령제 운영 방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이를 담은 '대통령제, 새로고침' 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은 그간 민주주의에 대한 상당한 회복력을 보여 왔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군을 불러내면서 국가 전체를 말도 안 되는 위기에 몰아 넣었다"고 지적했다. 홍인기 기자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은 그간 민주주의에 대한 상당한 회복력을 보여 왔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군을 불러내면서 국가 전체를 말도 안 되는 위기에 몰아 넣었다"고 지적했다. 홍인기 기자

"다시 반복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 권한을 나눠야 한다. 대통령 한 명의 문제로 국가 전체가 이렇게 흔들리는 건, 심각하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정치 체제와 정당 문제를 연구해 온 대표 학자다. 그는 19대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20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지난달 19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강 교수를 만나 현 사태 진단과 해법을 물었다. 그는 "당장 대통령제부터 손봐야 한다"며 "대통령 권한을 분배해야 정치 양극화,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이번과 같은 내란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 '불법 계엄' 어떻게 보셨나.

"계엄 가능성 얘기가 앞서 나올 때 '말이 안 된다'는 칼럼을 썼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5공화국'이라는 책에 썼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조차도 6월 항쟁(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을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전개됐던 대규모 시민 항쟁) 때 군은 못 불렀다. 안 부른 게 아니었다. 여러 증언을 종합하면, 군은 그때 전두환을 칠 수 있었다. 광주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국민의 군이 정치적 이유로 동원돼 민간인을 학살한 역사가 군에게도 컸기에 실제 움직일 수 있는 인원들이 반대한 것이다. '그때도 그랬는데, 2024년 대한민국에서 말이 되냐' 생각했다. 그 일이 진짜 일어나버렸다."

- 상식의 선을 넘어선 일이긴 하다.

"다행히 국회가 해제 결의안을 빨리 통과시켜 희생자 없이 끝났다. 그날 계엄이 유효하게 갔다면 100만 이상 되는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왔을 테고, 만일 계엄군이 총으로 통제를 시도했다면 희생자도 나왔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 왜 여기까지 왔다고 보시나.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가 주요 키워드이긴 했지만 한국은 비교적 건실하게 민주주의를 성장시키고 지켜온 나라였다. 사실 남미, 동유럽, 아시아 등 많은 다른 나라가 30여 년 전 민주화를 이뤘다. 그들 중엔 민주주의가 그 뒤로 후퇴한 경우가 많다. 러시아, 터키, 헝가리 등이 다 그렇다. 이번 일은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시대 착오적 판단과 독단적인 스타일 및 캐릭터가 큰 영향을 준 상황 아닌가 생각한다. 동조한 고위 군인, 장성들 문제도 크다."

- 한국의 후퇴가 덜했던 사례는.

"한국은 그간 민주주의에 대한 회복력(resilience)을 보여왔다. 외환 위기 극복,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의 국면에 국민 뜻이 반영되는 과정만 봐도 그렇다. 외환위기 때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국민의 뜻으로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때는 2004년 총선 과정을 거치며 정치적으로 해결이 됐다. '대통령 탄핵'은 우리 시스템 중에서 최고 위기 때 발동이 되는 것인데 당시 탄핵 시도가 정당하지 않았다는 국민의 뜻이 총선에서 확인됐고 헌법재판소가 이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국민들이 거리에 나가 시위를 통해 뜻을 표현했고 그 뜻을 이번에는 국회가 받아서 잘 처리했다. (이후)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으로 매듭을 지었다. 말하자면 각종 정치경제적 위기가 우리가 만들어 놓은 헌정 장치, 헌법적 질서에 의해서 해소될 수 있었다."

- 인물이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다시 반복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중요하다. 특정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시스템은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다. 평가는 각자 다를 수 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고 누구라도 '대통령감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반면) 윤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훈련된 바가 없다. 정치 경험도 없다. 성격은 독단적이다. 예측할 수 없는 캐릭터다. 그런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줬다. 남미에서나 확인했던 대통령제의 가장 극단적 위험성이 이제 우리에게 나타났다."

- 대통령제 자체의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지난 과정에서 점점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왔다. 1948년에 당초 계획했던 것은 내각제에 가까운 형태였다. 견제 장치들이 있었다. 유신,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강화됐고 그 강화된 대통령제가 민주화 이후에도 별로 바뀌지 않은 채 지금까지 쭉 왔다. 예로, 1948년 제1공화국 때 국무회의는 의결 기관이다. 제3공화국 헌법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때부터 심의 기관으로 바뀐다. 지금도 국무회의가 의결기관이었으면 이번 불법 계엄 선포 자체가 처음부터 무효였다. 대통령이 헌법 규정상 국가 원수라는 것도 유신헌법 때 들어왔다. 민주화 과정에서 '직선으로 선출한다'는 것을 얻어냈지만 내용적으로는 많은 걸 바꾸지 못했다."

- 직선제 확보가 급해서 그랬을까.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 (87년 개헌 추진) 당시에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킬 생각은 없었다고 본다. 이분들만 해도 경험이 많으니까 감당할 수도 있었고, 권력 사용을 절제하는 정치력 발휘도 했으니 그게 한동안 작동을 했다. 반면 점점 그 무거운 자리를 감당하기 힘든, 역량이 부족하고,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대통령에 오르면서 한계가 드러난 거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각 진영이 서로 잘 싸우는 '싸움꾼'을 대통령 후보로 내다 보니 권력을 절제해서 사용할 수 있는 지도자가 탄생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홍인기 기자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각 진영이 서로 잘 싸우는 '싸움꾼'을 대통령 후보로 내다 보니 권력을 절제해서 사용할 수 있는 지도자가 탄생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홍인기 기자

- 윤 대통령이 보인 한계는.

"계속적인 거부권 행사가 사례다. 물론 필요한 조치로 보장해놓았지만 대통령과 의회가 강대강으로 부딪힐 때 그 강한 두 힘의 충돌을 해소할 장치가 (현재는) 없다. 극단적인 예로 남미에서는 이럴 때 대통령이 군을 부르거나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의회가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식의 대립이 일어났는데, 어처구니없이 2024년 대한민국에서 그 일이 벌어진 것이다."

-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은 왜 나왔나.

"정치 양극화와도 관련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부터 특히 나빠진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중요한 과제로 '적폐 청산'을 앞세우지 않았나.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악을 다 잡아 넣겠다는 것이고, 반대로 그 작업을 하는 우리는 굉장히 선하다는 인식이 있다. 옳고 그름, 선악 문제로 정치를 바라보면서 양극화가 심화했다. (더불어) 대선을 앞두고는 양 진영 다 서로 잘 싸울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사실 보수 입장에서는 윤석열이라는 인물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데, 어느 순간 문 전 대통령과 싸우는 윤석열이 보이니 '저 사람 잘 싸우겠다'며 파이터로 당겨 온다. 싸움꾼이 기대대로 열심히 싸워서 여기까지 왔다."

- 싸움꾼을 후보로 낸 결과인가.

"'누구를 좀 혼내주고 싶다'가 앞서니 포용적이거나 유연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후보는 오히려 진영 내부에서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 각자 동네에서 서로 잘 싸우는 사람을 데리고 오는 식이다. 사실은 그렇게 이겼더라도 정치적 경륜이 있는 사람이면 운영을 잘했을 것이다. 정말 싸움꾼인데다가 자질 부족까지 있었던 것이다. 0.73%포인트 차이 승리를 하고도 100%를 이겼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표 차이가 이렇게 적냐며 부정선거라고 믿는다."

- 이참에 대통령제를 바꾸자고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대통령 권한부터 나눠야 한다. 대통령 한 명의 문제로 국가 전체가 이렇게 흔들리는 건 심각하다. 현재는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이고 동시에 국가 원수인데, 행정부의 수반과 관련된 여러 역할을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에게 많이 주면 어떻겠냐는 거다.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로서 내각과 총리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면 된다. 예를 들면 총리를 국회가 선출하지만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다든지,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은 그대로 갖고 있다든지. 물론 이번에 문제가 되긴 했지만 어쨌건 군과 관련된 통수권도 갖는다. 즉 대외적으로는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고 그러나 실무적 정책 관련 내각은 국회가 선출한 총리가 이끄는 형태로 갈 수 있다. 총리는 내각 인사권을 갖고 내각을 이끌 수 있다."

-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준대통령제'인가.

"그렇다. 이미 논의가 많았다. 다만 정치권에서 별로 받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통령에게 그럼 어떤 권한을 남기느냐, 주느냐에 대한 각론에서 차이가 있다. 더 논의되고 정리돼야 한다. 이를 테면 '통일이나 외교만 대통령에게 맡기자'는 주장만 놓고 봐도 총리와 영역이 겹칠 수 있다. 한미 FTA를 대통령이 할 외교라고 볼 건지, 총리가 할 정치 경제라고 볼지. 이걸 권력의 세계에서 냉혹하게 나눠야 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그간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는 논의 과정에서는 (주요 논의 주체들이)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홍인기 기자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그간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는 논의 과정에서는 (주요 논의 주체들이)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홍인기 기자

- 권한을 배분하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총리나 내각은 중간에 못하면 내보낼 수 있지 않나. 대통령은 국가 지속의 상징, 국민 통합의 상징이 될 수 있다. 한 걸음 떨어져 있으니까. 대통령이 당 출신의 정파적 속성을 가지고, 어떤 국민에겐 '우리 편이 아닌 사람'일 필요가 없다. 대통령이 해외에 가서 원전을 판다면 국가적으로 좋은 일 아닌가. 그런데도 구별 없이 누가 하는 건 다 싫다는 식의 공세가 많다. 대통령이 여기서 벗어나 있으면 그럴 필요가 없지 않나."

- 승자독식도 해소가 되나.

"국회 구성에 영향은 좀 받을 수 있지만 많이 해소는 된다. 양당제도 변한다. 현 양당제는 대통령제와 맞물려 있다. 대통령직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작은 정당이 있으면 안 된다. 대통령을 만들어야 승자독식의 권한을 갖고 올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국민들도 큰 정당 말고는 선택을 안 한다. 변화를 주면, 굳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대 양당을 찍을 이유가 없다. 여러 정당이 역할을 할 가능성은 커지고 특정 당의 단독 과반이 어려워진다. 서로 정책적 협의를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단기적으로야 다음 총선까지 지금 구도로 가겠지만 만약에 분권형으로 가게 된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

- 연임제는 어떻게 보시나.

"4년 중임을 하자는 건 문제의 대통령에게 8년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지금 5년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4년 중임을 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국회와 대통령 간의 갈등 문제, 승자 독식의 문제, 양극화된 정치 등이 달라질 수는 없다. 게다가 지금같이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하에서 4년 중임을 하면 첫 임기 후 현직 대통령이 출마할 때 선거 관리가 공정하겠나. 지금도 선거 부정 이야기하고 난리인데 현직 대통령이 나와서 0.73%포인트 차이로 이기면 어떻게 되겠나. 우리가 지불해야 할 리스크가 훨씬 더 클 수 있다."

- 권력을 나누면 대통령 힘이 너무 빠지진 않을까.

"행정과 관련된 것을 다 내각에 맡기면, 대통령은 장기적인 국가 정책에 힘을 쓸 수 있다. 통일 준비, 저출산 대책, 기후위기 대응 등 10년 이상 쭉 가야 되는 일을 할 수 있다. 또 국가 갈등이 심하거나 정치적 논란이 심하면 정무적으로 판단하고 거부권 행사, 국회 해산권 발휘 등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을 수 있다. 국민들은 여전히 대통령제를 원하는데 이조차 없이 대통령이 너무 형식적 존재가 되면 안 된다. 어떤 특정 정파에 의해 일이 잘못돼서 여론이 들끓고 사회가 쪼개지면 대통령이 한 걸음 떨어져서 개입하고, 역할을 할 수 있다."

- 검찰이나 감사원 등 권력 기관과 언론 등도 장악하려 한다

"지금 대통령 인사권이 너무 많다. 각 기관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 캠프 중심 인사를 하니 자질이나 마음가짐이 안 된 사람들이 한자리 차지하려 하고 (실제) 들어가 있다. 대통령이 형식적으로 임명을 하더라도 실질적인 선출은 그 기구에서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본인이 직접 개입해 인사하는 건 안 된다."

- 추가적인 방법은.

"지방분권도 중요하다. 만약 지방자치라도 안 돼 있으면 지금처럼 중앙정부가 흔들리거나 마비될 때 지방까지 다 영향을 미친다. 국가의 전반적 통치 기반이 취약해진다. 그나마 지자체는 따로 있으니 일상이 돌아는 간다. 이 분권을 보다 구조화, 체계화하고 조례 제정 등 실질적 정책 차별화가 될 수 있는 독자적 권한을 줘야 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 눈 앞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내려 놓고, 탄핵 이후 대선 국면에서 각 후보들이 권력 분산을 위한 최소한의 합의라도 내놓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홍인기 기자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 눈 앞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내려 놓고, 탄핵 이후 대선 국면에서 각 후보들이 권력 분산을 위한 최소한의 합의라도 내놓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홍인기 기자

- 그간 대통령제를 바꾸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순탄치 않았다.

"항상 유력 (대선) 주자들이 원치 않았다. '다음에 내가 꼭 될 것 같은데 왜 그러냐. 내가 이제 해야 하는데 힘 빼기 싫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 대충 작동을 하면 국민들이 잊어 버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는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들을 많이 했는데, 그 시기를 놓쳤다. 쉽지는 않다."

- 정략적으로 개헌론 꺼내는 경우도 있었다.

"긴 안목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 눈앞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개헌을 활용하면 안 된다. 다만 확실히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87년 체제가 끝이 났다는 생각을 하는 분은 많아진 것 같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굉장히 사회를 분열적, 소모적으로 만들고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등장하고 온 세상이 난리인데, 현재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 변화의 시간표를 어떻게 보시나.

"총선과 선거 시기를 맞춰서 다음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를 좀 줄이면 가능하겠지만 굉장히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탄핵 국면 이후 대선 과정에서 명확히 서로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에 합의를 하고 차후 일정을 조정하는 방법이 있다. (지금) 굉장히 위험하고 불안정한 시스템 아닌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두 개로 쪼개진 사회, 서로 적대시하는 분열의 사회, 무능이 그 분열의 정점에 서 있는 대통령의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되겠나. 사회 전체적으로 정체가 돼 있다. 거의 12, 13년 정도의 시간 동안 우리 사회가 바뀐 게 없다. 이렇게 정체되면 사람들은 지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못 보고 포퓰리스트만 등장한다. (그에 앞선 시기엔) 정치적 갈등은 계속 있었지만 그래도 뭐 여야 대표가 자주 만나기도 하고, 필요하면 야당이 넘어가는 것도 있고, 많은 돌파도 이뤄졌다. 시대적 변화를 뚫고 나가는 힘들이 있었다."

- 탄핵 후 대선 국면이 특히 중요하겠다.

"모든 후보가 개헌하자고는 할 것이다. 다만 '안 지키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논의가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최소한 형태로 약속을 받아 내도록 압박해야 할 것이다. 핵심은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 개헌절차법을 협의하는 방안도 가능한가.

"그것도 괜찮다. 가장 확실한 약속이 될 것이다. 그런 구속력 있는 방안을 가지고 실현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바꾼다는 것만 확실하면 시기는 기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바꾸자는 데만 합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많은 논의가 사회적으로 뒤따른다. 오히려 걱정하는 것은 이것도 저것도 다 바꾸자는 식의 논의다."

- 그 외 필요한 변화들은.

"정치 양극화 해소, 다당적 구도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지방분권 속에 지방의 다당제도 이뤄져야 한다. 지방에서도 정치적 다원성이 보장돼야 한다. 양당적 형태가 깨지고 제3의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정당법이나 선거법이 같이 바뀌면 물론 더 좋다. 다만 전선을 너무 넓히면 논의가 어려워진다. 당장 시급한 대통령제부터 손봐야 한다. 단 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우리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해친다. 한 사람만 그릇된 생각을 해도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상황은 굉장히 위험하고 불안정하다.

<대통령제, 새로고침> 전문가 진단

‘대통령제 개선’은 학계에서도 바람직한 수단, 변화 폭, 속도를 두고 이견이 분분한 이슈다. 정치 개혁을 두고 이미 큰 공감대를 이룬 학자들조차 ▲대통령 권한을 얼마나 줄일지 ▲개헌으로 풀지 입법으로 풀지 ▲내각제 등 정부 형태와 성격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숙의 속도나 방법은 무엇이 적절할 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평소 의견이 90% 일치하는 학자조차 서로 다른 10%가 여기서 갈린다”는 평도 나온다. 한국일보는 ‘대통령제, 새로고침’을 위한 난상의 시작을 위해, 역대 정부 및 국회 논의에 깊이 참여한 전문가의 진단을 차례로 싣는다.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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