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시대와 비슷한 트럼프의 거친 언행
이시바, 젤렌스키의 다른 대응에 주목
한국, 트럼프 매력 느낄 많은 카드 충분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2월 14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제61차 뮌헨안보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마을에 새로운 보안관이 왔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달 파리 AI정상회의와 뮌헨 안보회의 연설에서 한 이야기다. 밴스의 발언을 듣는 순간 필자가 자주 보는 서부영화가 떠올랐다. 서부개척시대 힘이 질서인 미국 시골이 무대다. 악당들이 총 들고 설치는 마을에 새로 부임한 보안관 역을 맡은 인물은 명배우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가 아니라 무명배우다. 그는 우선 늙어서 총 다루는 솜씨가 악당을 당해내지 못한다. 무법천지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악행을 제지하기는커녕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보안관은 주민들에게 마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악당들과 협력한다고 주장한다. 가슴에 찬 셰리프(sheriff) 배지가 남사스럽다.
새로운 보안관의 힘도 예전 같지 않다. 1970년대 세계 무역거래에서 미국의 비중은 50% 선이었으나 2020년대 들어 25%로 축소됐다. 국내소비가 지나치게 높고 저축률이 낮으니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미국의 1인당 소득이 7만5,000달러에 육박하지만 하위 30% 계층은 조류인플루엔자 소식에 마트 계란을 사재기하는 수준이다. 빈부 격차가 심해져 중산층이 무너지고 자본주의 장점보다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인건비가 비싸고 거의 모든 소비재를 수입하니 기축통화 국가가 아니었다면 벌써 부도가 났을 상황이다.
상류층들은 중세시대 귀족들 못지않은 풍요를 누린다. 불법 이민자들이 저임금을 감내하며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니 상위 1%의 삶은 제정 러시아 시절의 황제들 생활 못지않다. 새 보안관은 마을 주민들의 소비를 축소하고 저축을 늘리기보다는 다른 마을의 창고에 가서 부족한 물건을 가져오고 안 되면 금고에서 돈을 탈취해오겠다고 한다. 힘없는 주변 마을은 비상이 걸렸지만 중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 마을은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다.
새 보안관은 동맹국가들이 미국을 속여 돈을 가져갔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그동안 미국에 70조 원을 투자했다는 한국의 주장은 그에게 호소력이 없다. 새로 얼마를 투자해서 백악관에 어떤 이득을 줄 것인지만 관심 사항이다. 불합리한 제안일지라도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더 나은 거래(a better deal)'를 제시하는 장사꾼 기질을 발휘해야 한다.
비즈니스 차원에서는 조선업 카드를 세밀하게 준비하자. 낡고 노후화되어 전투 준비가 안 된 미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관리(MRO)와 조선업 진출은 트럼프의 귀를 잡을 수 있다. 트럼프가 관심을 갖는 분야인 만큼 최대한 거래를 유리하게 다양한 안을 준비하자. 갈수록 벌어지는 미중 간 함정 격차로 미 해군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국은 매년 42조 원을 10년간 투자하여 해군력을 보강하겠다고 한다. 추후에 한국 대통령이 부딪쳐야 하는 빅딜 분야다.
외교·안보적 카드도 준비하자. 미국의 대중 전략관점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연간 3,000억 달러의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고 시진핑의 중국몽을 저지하는 데 있어 한국의 외교 안보적 역할을 내세우자. 물류 공급망의 중요성과 동북아에서 한미동맹의 지정학적 중요성도 세련된 포장지로 부각시키자.
일본의 대워싱턴 접근방식도 벤치마킹하자.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에 대한 정밀 분석은 필수적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정교한 준비과정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고 주장하는 트럼프에 대응하는 한국의 교과서다.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세계 6위지만, 트럼프 2기에서도 순항할 것이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와의 정상회담에서 '당신은 카드가 없다'고 면박을 주었다. 새 보안관은 역설적으로 카드가 많은 한국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국내 정치가 혼돈이지만 워싱턴 공략을 위한 전략 전술 카드를 민관에서 세부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