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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 "대통령 왜 안 지켜"... 문자폭탄에 몸살 앓는 국민의힘

입력
2025.01.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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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 與 의원에 문자 세례
하루 수만 통…휴대폰 먹통 일쑤
탄핵 찬성파엔 "배신자" 비판
"관저 왜 안 나가" 압박 공세도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된 지난달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제안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된 지난달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제안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의 12·3 불법 계엄 선포 이후 두 달이 다 돼 갑니다. 불법 비상계엄과 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여당 국회의원들에게 쉴 새 없이 '문자 폭탄'이 쏟아졌습니다.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는 시민들과 탄핵에 반대하는 강성 지지층의 문자가 빗발쳤습니다.

하루에 많게는 수만 통의 문자를 받는 의원들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났지만, 여당 의원들은 여전히 수십, 수백 통의 문자와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림에 보조배터리는 필수품이 된 지 오랩니다.

탄핵 찬성파에 '배신자' 욕설… "관저 안 가냐" 문자도

탄핵에 공개 찬성한 의원들은 '배신자'라는 문구부터 각종 욕설이 난무한 문자를 받고 있습니다. 반대로 친윤계나 대구·경북(TK) 지역구 의원들은 "왜 대통령 관저에 가지 않느냐",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 등의 문자를 다수 받았는데, 강성 지지층의 문자 폭탄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관저 시위에 많이 나가게 된 배경 중 하나로도 지목됩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TK 지역의 한 초선의원은 "탄핵소추안 표결 직전에는 많게는 하루에 문자가 10만 통씩 와서 내용을 보지도 못했는데, 탄핵이 된 이후로는 윤 대통령 관저에 왜 안 가냐는 문자가 많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TK 재선의원은 요즘 유독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문자를 많이 받고 있는데, 윤 대통령을 지켜달라는 내용과 국회의원들도 현장에 나와 싸워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미저장 번호 차단 앱 사용… 카카오톡 삭제도

문자 폭탄이 쏟아지면서 의원들 사이에선 저장돼 있지 않은 번호를 자동으로 차단해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이 공유되기도 했습니다. 차단 앱을 이용 중인 부·울·경(PK) 지역의 한 초선의원은 "차단 앱을 안 쓰면 문자 알림이 계속 울려서 휴대전화 작동이 어렵다"며 "문자가 새벽에 쏟아지다 보면 잠도 못 자는 상황이다 보니 앱을 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해당 의원이 기자와 통화를 하던 순간에도 차단 앱에는 각종 욕설이 담긴 문자가 쌓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의원들 사이에서 차단 앱이 유행한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텔레그램이나 카카오톡 등 문자가 차단되지 않는 메신저로 우회해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도 늘어났습니다. 당직을 맡고 있는 A의원은 탄핵 국면에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쏟아지고, 모르는 단체채팅방에 초대되는 경우가 빈번해지자 아예 카카오톡 앱을 삭제했습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메시지가 쏟아지자 앱 자체를 차단해버린 것입니다. 카톡 삭제에 따른 불편함이 크지만, 문자 폭탄의 위력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습니다.

아이폰은 차단 앱 사용 불가… 문자 기능 마비

휴대전화에서 '윤석열 탄핵 촉구 문자행동' 사이트(왼쪽 사진)에 접속해 국민의힘 의원의 이름을 누르면 자동으로 문자메시지 보내기 창으로 연결되고, 해당 의원의 전화번호와 "의원님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는 문자메시지가 자동 입력된다. 해당 사이트 캡처

휴대전화에서 '윤석열 탄핵 촉구 문자행동' 사이트(왼쪽 사진)에 접속해 국민의힘 의원의 이름을 누르면 자동으로 문자메시지 보내기 창으로 연결되고, 해당 의원의 전화번호와 "의원님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는 문자메시지가 자동 입력된다. 해당 사이트 캡처

번호 차단 앱이 '그림의 떡'인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아이폰을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번호 차단 앱은 안드로이드 기종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아이폰을 쓰는 의원들은 고스란히 문자·전화 폭탄을 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아이폰을 사용 중인 한 수도권 의원은 "1분에도 몇십 통씩 문자가 와 휴대전화가 버벅거리는 증상이 발생한다"며 "24만 통까지 세봤는데, 문자가 너무 많이 와서 이제는 집계조차 안 된다"고 토로했습니다. 문자앱에 들어갈 때마다 휴대전화가 멈추면서 읽지도, 삭제하지도 못한 채 쌓여가는 문자를 방치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문자 폭탄을 보내오는 건 비단 지지층뿐만은 아닙니다. 탄핵 국면을 거치며 온라인상에서 국회의원 휴대전화 번호가 널리 공유되면서 최근엔 상임위원회 안건, 지역 현안 등에 대해서도 문자가 수십, 수백 통씩 날아온다고 합니다.

사실 문자 폭탄은 야당에서 먼저 더 회자가 됐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당권에 도전할 때나 2023년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이탈표가 무더기로 나왔을 때 등 주요 국면마다 이른바 '개딸'(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을 일컫는 말)들이 비이재명계에 문자 폭탄을 보내 국민의힘에서 비판이 나왔었죠. 그러나 어느덧 상황은 역전됐습니다. 이제는 국민의힘 의원들도 하나둘씩 체념한 듯 보입니다. 윤 대통령 탄핵이 마무리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문자 폭탄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강성 지지층의 기세를 감안하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윤 대통령의 불법 계엄 사태가 초래한 또 다른 업보인 셈이죠.

한 TK 초선 의원은 초탈한 듯 이렇게 심경을 전했습니다. "마음을 비우니까 견딜 만해요."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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