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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이 왜 그 자리에 있었나'... 한 달 지났는데 정부는 답이 없다

입력
2025.01.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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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라이저 구조 17년 넘게 유지
당국도 건설사도 경위 안 밝혀
조사위원회와 협의해 정보 공개해야

임원들 안 계세요. 사무실 공사 중이라 지금 아무도 안 계세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일주일 후인 지난 7일 A업체 사무실 직원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을 나오다 뒤를 돌아보니 한 임원이 직원과 대화를 하고 있더군요. 임원에게 "로컬라이저 안전성을 검토했냐"고 묻자 "참사가 발생해 안타깝고 죄송하다. 직원들이 규정대로 했기 때문에 지금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 업체는 사고기가 충돌한 무안국제공항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개량 공사에 참여한 곳입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로컬라이저의 부적절한 구조가 충돌의 원인이 됐고 대형참사로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14일 국회 현안 질의에서 "비상 대비 지역에 위험한 시설을 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일"이라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굉장히 잘못된' 그 부적절한 구조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었냐는 점입니다. 사고 후 한 달이 지났지만 아무도 그 원인을 모릅니다. 정부나 한국공항공사, 건설사 등 관계자들이 아직까지도 원인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국은 로컬라이저를 처음 건설할 당시 상황만 공개했습니다. 금호건설 컨소시엄(연합체)이 무안공항을 건설할 때 활주로와 로컬라이저의 수평을 맞추려 콘크리트 둔덕을 만든 겁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 추모식이 열린 18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에 파손된 로컬라이저 둔덕이 방치되어 있다. 무안=왕태석 선임기자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 추모식이 열린 18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에 파손된 로컬라이저 둔덕이 방치되어 있다. 무안=왕태석 선임기자


안전성 검토하라 했는데... 꼬리를 무는 의문

개량 공사 과업 지시서에는 로컬라이저의 위치와 재질 등 안전성을 검토하라는 내용이 담겼는데 당국이나 업체들이 실제로 검토했는지는 공표되지 않았습니다. 무안공항 개항으로부터 17년이 넘게 지났고 그사이 국제 안전 규정도 개정됐습니다. 규정뿐만 아니라 항공기가 과거보다 커졌고 활주로 이탈(과주) 방지 기술도 발전했습니다. 당국과 건설사들은 개량 공사 때 이 사실을 고려했을까요? 검토했다면 구조를 유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14일 국회 현안 질의에서 그 이유를 파악해보겠다고 답했습니다. 이날 각종 자료를 요구하는 의원들에게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조사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자료를 공개하겠다’는 취지로 답했지만 국토부는 아직 새로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당국이 정보 공개를 꺼리는 이유에도 공감이 가는 부분은 있습니다. 공식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정보를 공개하면 조사가 여론의 압력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대중이 정보를 판단해 ‘이래서 이랬던 것 아냐?’라고 먼저 결론을 내리면 조사를 독립적으로 진행하기가 힘듭니다. 금호건설 컨소시엄이나 개량 공사 업체들도 규정 위반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입장을 밝히기가 어렵습니다. 한국공항공사는 실시설계 보고서 같은 기초 자료도 사조위에 제출했다는 이유로 국회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국민 알 권리도 중요... 자료 공개 약속 지켜야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도 사조위 조사만큼 중요합니다. 국민에게 조사 결과만 기다리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사조위 조사는 기본적으로 사고를 일으킨 기술적 문제를 파악하는 데 집중합니다. 사조위도 직접적 사고 원인 이외의 다양한 요소를 조사해 관계 기관에 ‘안전 권고’를 전달합니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둔덕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이 합당한지는 국민도 함께 판단해야 합니다. 국민이 다양한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공항공사, 지방항공청은 물론이고 항공업계 관계자 중 누구도 십수년 동안 둔덕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특정인을 찍어내 책임을 묻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정을 다각도로 파악해야 사각지대를 만들어낸 제도의 허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국이 사조위와 협의해 조사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료를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지체하지 말고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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