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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산불 속 한인 천사

입력
2025.01.12 16:00
수정
2025.01.12 17: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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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여인이 산불에 탄 교회 관계자를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LA=AFP 연합뉴스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여인이 산불에 탄 교회 관계자를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LA=AFP 연합뉴스

지난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시작된 산불의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 LA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한인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30만 명도 넘는다. 아직 한국인 인명 피해는 확인된 게 없다지만 전소된 주택과 가게 등 한인들의 재산 피해는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더 큰 슬픔을 당한 산불 이재민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한인 사회의 행보는 잔잔한 울림을 준다.

□ 화재가 발생하자 곧바로 구호 물품 모집에 나선 곳은 LA한인회다. 메케한 연기를 막을 마스크와 이재민에게 필요한 담요 등이 속속 답지했다. LA뿐 아니라 다른 지역 거주 한인들도 돕겠다고 찾아올 정도다. 개인 자원봉사자도 한둘이 아니다. 한 30대 직장인은 아예 사흘 휴가를 내고 대피소와 구호 물품 창고에서 일하기로 한 내용이 언론에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따뜻한 음식을 해 손수 나누는 이들,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는 학생들 모습도 보인다. 산불 피해를 당한 동포에게 아예 자신의 집을 내준 사연도 들린다.

□ LA 한인 커뮤니티의 선행은 산불 이후 생필품 가격과 호텔 숙박비, 주택 임대료가 급등하고 심지어 절도와 약탈까지 일어나는 세태와도 대조된다. 이런 범죄 혐의로 체포된 이들만 이미 20명을 넘는다. 일부 지역에선 오후 6시부터 오전 6시까지 통금령이 내려지고 주 방위군도 동원됐다. 더구나 1992년 LA 폭동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보았던 이들이 코리아타운의 한인들이었음을 떠올리면 지역사회를 위한 이들의 조건 없는 구호 활동은 미국인들에게도 감동을 주기 충분하다.

□ 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될 이번 재앙도 기후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오랜 가뭄과 거세진 바람이 피해를 더 키웠다. 그러나 이런 산불도 인류애까지 잿더미로 만들진 못했다. 자원봉사와 구호 물품 전달에 이어 테일러 스위프트와 오프라 윈프리,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스타들의 기부와 연대도 잇따르고 있다. 인간의 오만과 이기심에서 비롯된 기후 위기를 극복할 방법도 결국 이타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LA 산불이 주는 경고와 교훈이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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