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착륙 1시간 내 이륙하려 '28분 정비'… 제주항공기, 참사 전날만 4개국 돌았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제주항공 2216편 추락 참사 항공기가 다음 이륙을 준비할 때 정비 시간을 '최소 요구 수준(28분)'만 빠듯하게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28분'은 정부가 사고가 발생한 'B737 기종'에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최소 정비 시간이다. 제주항공 같은 저비용 항공사(LCC)들 사이에서는 한 번이라도 승객을 더 태우기 위해 출발하기 전 정비(이륙 정비)에 정부가 요구하는 최소 정비 시간만 사용하는 게 '공식'이다. 사고 항공기가 이런 식으로 하루 전날 무안을 중심으로 쉴 새 없이 오간 곳은 코타키나발루, 나가사키, 타이베이, 방콕으로 4개 국가 도시였다.
제주항공은 "무리한 운항은 없었고 계획된 정비를 꼼꼼하게 진행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 원인으로 랜딩 기어 고장 등 기체 결함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어 무리한 운항 계획 아래 정비가 소홀했던 건 아닌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나아가 정부가 항공사에 요구하는 '기종별 최소 정비 시간'을 현행 기준보다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3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기번 'HL8088'을 가진 사고 항공기는 27일 오후 10시 33분 제주에서 무안국제공항으로 들어왔다. 다음 행선지는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였다. 항공기가 코타키나발루로 떠난 건 같은 날 오후 11시 35분. 항공기가 제주에서 무안으로 들어온 뒤 다시 코타키나발루로 떠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2분(62분)'.
보통 공항에 내린 비행기는 다음 목적지로 떠나기 위해서 이륙 정비, 세척, 주유 등을 거친다. 승객이 내리고 타는 시간이 짧게는 대략 30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다음 이륙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는 건 이륙 정비 등에 30분 정도만 썼다는 뜻이다.
실제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모든 항공사에 항공기 기종별 '이륙 정비 최소 시간'을 고시 형태로 내려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사들은 보유한 기종에 따라 국토부가 요구하는 이륙 정비 시간을 지켜야 한다. 사고가 발생한 기종인 B737은 국토부에서 이륙 정비 최소 시간을 28분으로 정해뒀다. 이륙 정비 최소 시간은 정비에 이 정도 시간은 꼭 쓰라는 뜻인데 그 이상 정비하는 건 항공사의 선택이다. 실제 대형 항공사의 경우에는 같은 기종으로도 28분을 넘겨 정비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항공의 사고 항공기는 28분에 맞춰 정비를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사고 전날인 28일 하루 동안 총 4개 국가의 도시를 오가면서 총 여덟 번의 이륙 준비를 했는데 이 중 여섯 번은 이륙 준비 시간이 한 시간 안팎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LCC에서 사고 항공기와 같은 기종(B737)을 10년 넘게 담당하는 한 정비사는 "B737 기종에서 이륙 준비 시간을 한 시간대로 끊었다는 건 정비에 국토부가 요구하는 이륙 정비 시간을 최소치인 28분에 맞췄다는 뜻"이라며 "실제 LCC들이 정비사에게 28분을 규칙처럼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이 정비사는 이어서 "28분은 착륙 후 승객들이 모두 내리면 정비사가 바로 조종칸으로 들어가 경고등이 들어온 건 없는지 확인하고 기체 안팎에 손상은 없는지 맨눈으로 보면 지나가는 시간"이라고도 말했다.
이륙 정리 28분으로 LCC들이 얻는 건 수익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비행 스케줄'이다. LCC들은 통상 이륙 준비 시간을 한 시간으로 설정하고 출발 기준 △새벽 동남아 △낮 일본 △저녁 동남아 △밤 동남아 스케줄을 짠다. 이게 전형적인 LCC 수익 창출 시간표라고 한다. 사고 비행기의 전날 여정도 이 시간표를 따랐다. 코타키나발루로 떠난 시점부터 그대로 옮기면 '무안→코타키나발루→무안→나가사키→무안→타이베이→무안→방콕→무안'이다.
또 다른 LCC에 종사 중인 정비사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이륙 준비에 한 시간이 넘어가도 그건 대부분 승객이 늦게 도착했다거나 주유가 늦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정비하는 데 (30분 이상) 사용한 경우는 드물다"며 "정비 시간을 30분을 넘기지 않고 이륙 준비에 대략 한 시간만 써야 하루에 동남아 국가 도시 세 곳에 일본까지 다녀오는 비행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비지니스 방문 수요도 있기 때문에 낮 시간대 노선이 필요하다"며 "반면 동남아 노선은 대부분 관광 수요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또는 저녁, 밤 시간대에 주로 배치한다"고 설명했다.
제주항공은 "계획된 일정에 맞춰 정비에 만전을 기했다"고 맞섰다. 전날 진행된 2차 브리핑에서 송경훈 제주항공 경영지원본부장은 "무리한 운항이라고 할 수 없다"며 "일정에 따라 항공기 정비를 제때 하고 있고 출발 전후에 이뤄지는 모든 정비 등을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꼼꼼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항공기는 유럽의 대표적 LCC인 라이언에어에서 2009년 9월~2016년 11월 리스로 쓰다 제주항공에서 2017년 2월부터 사용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라이언에어가 이륙 정비에 30분 넘게 쓰지 않고 노선을 매우 빡빡하게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며 "사고기를 라이언에어에서 사용하는 동안 혹사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탓에 정비사들 사이에서는 "28분 정비가 충분한지 의문이 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대형 항공사 정비부장 출신 정비사는 "28분 정비는 정말 큰 문제가 없는지 정도만 파악하는 것이지 혹시 모를 고장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하는 게 아니다"라며 "LCC가 수익을 내기 위한 스케줄을 먼저 짜고 거기에 최소한의 정비 시간을 끼워 넣는 것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정비사는 "이번 사고도 랜딩 기어가 미작동 등 기체 결함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에 정비가 충분히 이뤄졌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참사 하루 만에 제주항공의 같은 기종이 이륙하자마자 '랜딩 기어 이상'이 발견돼 회항하는 일이 벌어진 점도 이런 지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정말 꼼꼼한 정비로 이륙 준비를 한다면 도시 한 개 노선은 빼고 정비 시간에 분배하거나, 아예 국토부의 기종별 이륙 정비 최소 시간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