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최우선에” “평화는 힘으로”… 더 독해진 트럼프

47대 美대통령 취임…이익 추구 노골화
영토 팽창주의… 파리 기후협약 또 탈퇴
말로만 통합… “분열 초래 극단적 당파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미 워싱턴 ‘캐피털원아레나’ 경기장에서 열린 실내 대통령 취임 퍼레이드 행사 중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2기에는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피력했다. 힘은 주로 세계 평화 유지에 사용하되, 필요시 자국 영토를 넓히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구상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추진 방식 등이 더 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는 이용당하지 않을 것”

2017년부터 4년간 제45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트럼프는 20일(현지시간) 미 수도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 로툰다(원형 중앙홀)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47대 미 대통령으로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사에서 앞세운 것은 집권 1기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였다. 트럼프는 “미국의 황금시대는 이제 시작된다”고 선언한 뒤 “더는 (다른 나라에) 이용당하는 일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 임기 중 하루도 빠짐없이 미국을 최우선순위에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사력을 키워 세계를 제압하는 식으로 평화를 이루겠다는 계획도 취임사를 통해 다시 알렸다. 트럼프는 “우리는 세계가 본 적 없는 가장 강력한 군대를 건설할 것이다. 우리는 승리한 전투뿐 아니라 우리가 끝낸 전쟁, 아마 가장 중요하게는 우리가 시작하지 않은 전쟁에 의해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자랑스러운 내 유산은 피스메이커(평화중재자)이자 통합자일 것”이라고 했다. 연설 말미에 다시 “우리 힘은 모든 전쟁을 끝낼 것이며 매우 분노하고 폭력적이고 완전히 예측 불가능해진 세계에 통합의 새 정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음에 새겨진 개척정신”

그러나 힘이 이타적인 곳에만 쓰일 리 없다. 트럼프는 “미국은 부를 늘리고 영토를 확장하고 도시를 건설할 것”이라며 “개척 정신은 우리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최근 기자회견에서 그는 덴마크령 그린란드 병합에 필요하다면 무력 동원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외 군사 개입 자제가 뼈대인 1기 당시 고립주의가 영토 팽창주의로 진화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날도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미국만)으로 개명하고 파나마운하 운영권을 되찾아 오겠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미 연방의회 의사당 로툰다(원형 중앙홀)에서 제47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마친 뒤 취임사를 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총 2,888개 단어로 구성된 이날 취임사에서 대명사를 빼고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21회 사용된 ‘미국인(American)’이라고 미국 온라인매체 액시오스가 보도했다. ‘미국(America)’과 ‘국가(nation)’가 20회로 뒤를 이었고, 그다음은 17회인 ‘위대한(great)’ 등이었다. 국정 목표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고스란히 반영된 셈이다.

취임사에는 통합 메시지가 주로 담기리라는 게 당초 트럼프의 예고였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대부분 대통령이 선호하는 통합적 표현을 거의 생략하고 분열을 야기하는 정책을 개략적으로 소개했다”고 짚었다. 영국 로이터통신도 “트럼프는 자신을 통합주의자로 묘사하려 했으나 그의 연설은 과거 대통령들의 연설과 달리 종종 극단적 당파성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1·6 폭동 가담자 무더기 사면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상식의 혁명을 시작하겠다”며 취임 첫날 서명할 행정명령들을 열거했다. 이후 서명된 행정명령은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 행정조치 78개 철회 △남부 국경 ‘국가 비상사태’ 선포 △불법 체류 외국인 자녀 시민권 제한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 폐기 △틱톡(중국계 동영상 플랫폼) 금지법 시행 75일간 유예 △1·6 의사당 폭동 사태 가담자 1,500여 명 사면 등이다.

다만 지난해 11월 대선 뒤 취임 첫날에 하겠다고 예고한 대(對)캐나다·멕시코 25% 관세 부과는 다음 달 1일 시행할 생각이며, 전체 수입품에 매겨지는 보편 관세 공약도 아직 이행 준비가 덜 됐다고 트럼프가 이날 취재진에 밝혔다. 대신 그는 무역협상을 담당하는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기존 무역협정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미국 연방 상원은 이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후보자 인준 동의안을 99명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트럼프 2기 각료 중 첫 의회 통과다. 상원 100석 중 1석은 JD 밴스 부통령 자리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