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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기를 누가 만들었나

입력
2025.01.20 18:30
수정
2025.01.21 12:3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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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층 결집하려 법치 부정한 尹, 여당
나라 파탄 나도 선거만 이기면 다인가
극우 세력화, 분열 키운 후과 두려워해야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 유리창을 깨고 난입하고 있다. 뉴스1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 유리창을 깨고 난입하고 있다. 뉴스1

법치가 짓밟혔다. 사법부가 능멸당했다. 1·19 서부지법 폭동은 12·3 내란보다 오히려 더한 위기다. 한 명의 돌출적 광인보다 더 두려운 집단적 광기다.

폭동을 부추긴 가장 큰 책임자가 윤석열 대통령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는 수사와 체포에 무력으로 맞서며 법에 불복했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뜨거운 애국심에 감사한다”고, 결집 메시지를 던졌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는 체포 직전 “시민들이 관저 앞이나 입구에서 (…) 막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고 유튜브에서 말했고, 윤갑근 변호사는 경호처에 경찰을 체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순교자 행세를 하려는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에게 힘 실은 선동가가 수두룩하다. ‘고도의 통치행위’ ‘사기 탄핵’ 운운하며 민주주의 가치를 전복시키고 법원의 권능에 맞서 ‘대통령 지키기’를 몸소 실천한 국민의힘 의원들이다. 김민전 의원이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백골단’이라는 체포 저지 자경단의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한 것, 윤상현 의원이 구속영장 발부 직전 법원 담을 넘은 이들에 대해 “곧 훈방조치될 것”이라며 뒤를 봐준 것은 숫제 난동의 판을 깔아준 셈이다. 그 판에서 전광훈 목사는 “서울구치소로 들어가서 강제로라도 (…) 대통령을 모셔 나와야 된다”고 행동지침을 내렸다. 유튜버들은 “이건 혁명이고 민주화운동”이라며 판을 키웠다.

국회의원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내란·폭동 동조는 부정선거 신념보다는 이해관계를 공유한 때문이리라. 윤 대통령이 체포되면서 남긴 마지막 말 ‘꼭 정권 재창출 해달라’는 당부가 그것이다. 어떻게든 보수층을 결집시켜야 사면이든, 총선이든, 다음 기회라도 노릴 수 있다는 계산 말이다.

계엄에 대해 내가 들은 반응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할 거면 제대로 하지”였다. 피 흘려 민주주의를 얻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진보·보수를 떠나 군사독재만은 허용하지 않으리라고 나는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강압적 질서에 대한 소망이 여전히, 다시금 고개를 드는 것에 나는 소스라쳤다. 지난 대선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치는 잘했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명태균씨가 “대구·경북에서는 보수 후보 이미지를 각인시켜”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게 헛소리가 아니었음을 비로소 알았다. 계엄 이후 매일 공포스럽게 우리 안의 극우 정서를 실감한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내 잇속 챙기기에만 충실한 내란 동조세력이 해낸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탄핵을 남발한 민주당은 잘했냐’며 계엄을 합리화하고 ‘이재명도 구속하고 시작하라’며 대통령 구속이 부당하다고 항변하면서 법치가 실종되고 나라가 극우에 잡아먹힐 위험을 함께 키웠다. ‘반 이재명 정서’를 자극해 정당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급급한 동안 내전을 방불케 할 분열을 만들었다. 탄핵심판이 나와도 승복하지 않거나, 집회가 과열돼도 약탈은 없다는 안도감마저 실종될 판이다. 이 사악한 사리사욕을 용서하기 어렵다.

대통령과 여당은 이제야 "폭력은 안 된다"지만 여전히 허울뿐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폭력의 책임을 시위대에 일방적으로 물을 수 없는 상황”이라 말할 게 아니라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혀야 한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똑같은 잣대가 야당 대표에게도 적용돼야 한다”고 말하기 앞서 대통령 구속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 ‘15자 사유로 현직 대통령 구속’했다고 비난한 보수 신문도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연구회 소속이면 무조건 좌파로 몰아가는 보도가 판사 공격을 자극하지 않았나 성찰해야 한다.

시끄럽고 번거로운 민주주의보다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독재에 대한 욕망을 곰팡이처럼 번지게 한 책임을 정치인들은 통감하라. 지금도 ‘아스팔트 십자군’ 운운하며 폭동을 두둔하는 말 한마디가 우리 공동체를 얼마나 손상하는지 자각하라. 저 광기에 어떤 변명도 주어선 안 된다.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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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뉴스스탠다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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