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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받았다"면서 누군지는 밝히지 못한 기업인들…트럼프 취임식, 오해와 진실

입력
2025.01.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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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관 초청인지 제대로 밝힌 곳 없어
"외국 기업인 민간 외교에 부적당한 자리"
"눈도장, 사진만 찍고 온대도 의미는 있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017년 1월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의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4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들고 있는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017년 1월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의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4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들고 있는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국내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취임식 참석 계획을 내놓자 재계 안팎에서 설왕설래하고 있다. 트럼프 2기는 관세 인상과 조 바이든 정부가 약속한 다양한 보조금을 없던 일로 돌릴 전망이다. 이 같은 타격을 줄이기 위해 민간 외교에 나선다는 기대도 있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회 의사당에서 열리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 취임식에 초청 받았다고 밝혔거나 알려진 재계 인사는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풍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김범석 쿠팡Inc 의장, 허영인 SPC그룹 회장, 우오현 SM그룹 회장, 최준호 패션그룹형지 부회장 등이다.

현대차그룹은 이 취임식에 100만 달러(약 14억7,000만 원)를 기부했으며 현대차의 호세 무뇨스 사장, 장재훈 부회장 등이 참석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미 대통령 취임식 비용은 대부분 기부금으로 마련하는데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2억 달러 넘게 모일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자 측은 취임식 비용으로 100만 달러 넘게 기부하거나 200만 달러 이상 모금한 개인·기업에 취임식 특별석과 부대 행사 입장권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경영진의 참석 계획을 밝힌 기업·단체 중 미국 측 어느 기관이 초청한 것인지 밝힌 곳은 없다. '류 회장이 미 대통령 당선자 취임식에 초청받았다'고 보도자료를 낸 한경협 측은 "류 회장의 전언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지 초청자, 초청 방식 등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SPC 측도 보도자료를 통해 "한미동맹친선협회가 추천해 취임식에 초청받았다"고만 밝혔다. 우 회장도 한미동맹친선협회의 추천, 정 회장은 몇 년 동안 알고 지내 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측으로부터 초청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쿠팡 측은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취임식에 참석해달라는 공식 초청을 받았다'는 보도를 놓고 "내용이 맞다는 정도만 본사(쿠팡Inc)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초청 기관을 밝힐 수 있나'란 질문에는 "모른다"고 답했다. 보도자료를 내고 "최 부회장이 취임식 초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밝힌 패션그룹형지 측도 "초청 기관은 밝히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한미동맹친선협회는 한미연합사령부 등에 일하러 온 미군 장성들에게 한글 이름을 지어주는 등 활동을 해 왔다. 우 회장의 여동생인 우현의씨가 회장을 맡고 있다. 협회 측도 우오현·허영인 회장을 추천한 기관을 밝히지 않고 있다. 우현의 협회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시국이 이래서 조용히 갔다 오려고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 인사 초청 절차 자체가 없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월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45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월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45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하지만 주미한국대사관 정무공사, 외교부 북미국장 출신으로 현지에서 미 대통령 취임식을 두 차례 겪은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 대통령 취임식은 외국 인사를 취임식에 초청하는 절차 자체가 없다"고 밝혔다. 수만 명이 모이는 미 의회의사당 대통령 취임식미 의회 의원들이 지역구민에게 야외 간이의자에 앉을 수 있는 티켓을 나눠주는데 국내 인사가 이를 얻고는 취임식에 초청받았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취임식은 북극 한파로 의회의사당 실내에서 열릴 예정이고 참석 인원은 크게 줄어든다. 많은 참석자는 의회의사당 인근 실내경기장에서 생중계로 취임식을 지켜볼 예정이다. 위 의원은 "취임식 날 저녁에는 워싱턴DC에서 대형 주는 혼자서, 작은 주는 공동으로 10여 개 '볼'(Ball·무도회)도 연다"며 "이 행사 티켓을 대기업이나 로펌(법률사무소)이 테이블별로 사서 고객에게 나눠주는 것을 받고는 취임식에 초청받았다고 하는 일도 많다"고 귀띔했다.

취임식 전후의 행사들은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을 도와준 지지 그룹에 감사 인사하는 국내용으로 외국 기업인이 참석해 민간 외교를 하기에는 적절한 환경이 아니란 설명이다. 위 의원은 "취임식은 50개 주에서 DC에 구경 온 장삼이사가 모이는 것으로 민간 외교를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는 "각 볼에도 대통령 당선자는 10~30분 정도 머물고 자신의 고향 주에서 하는 볼에는 한 시간가량 있기도 한다"며 "당선자는 선거를 도와준 미국 내 인사들을 만나느라 바쁘다"고 전했다.

하지만 경사에 가서 축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관계 형성에 해 될 일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주미한국대사관 서기관, 외교부 북미국 심의관 출신인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각 기업이 필요에 따라 볼에 가서 트럼프 측에 눈도장을 찍고 사진만 찍고 온다 해도 개별 기업의 필요에 따라 조율해 따로 만나면 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얼굴을 트고 네트워킹하는 게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의회의사당 취임식도 역사적 현장에서 연설을 듣고 행사를 보는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회사 이익 불분명" VS "민간 외교의 장"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월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45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볼'(Ball·무도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월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45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볼'(Ball·무도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허 회장의 참석 계획도 논란이다. 그는 제빵기사들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한 혐의(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로 구속기소 됐다가 주거 제한 등을 조건으로 보석 허가를 받아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재판부의 해외출장 허가까지 받아야 한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취임식 참석이 회사 이익에 도움이 될지는 확실치 않고 피고인 불출석으로 형사재판 심리는 늦어진다"며 "도주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보석 허가를 해줬으면 자숙하며 재판을 받으라는 뜻인데 그에 걸맞은 행동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유승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한동대 연구교수)도 "혐의는 중하고 해당 활동의 이익은 추상적"이라며 "기업 이익 때문에 형사재판에서 자꾸 예외를 주장하는 것은 공익에 맞지 않다"고 했다.

반면 주미한국대사관 참사관 이력이 있는 엄태윤 한양대 국제대학원 대우교수는 "SPC는 미국에서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취임식을 계기로 현지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쌓거나 홍보하는 차원이지 않을까"라며 "그 외 기업도 현지 사업을 하는 등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취임식을 계기로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사업과 국익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미한국대사를 지낸 안호영 경남대 석좌교수도 "기업인에게는 이런저런 복잡한 인적 네트워크의 세계가 있다"며 "미 대통령 취임식은 일종의 (외교의) 장이 펼쳐지는 것이고 민간 외교도 중요하므로 기업의 판단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노하우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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