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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방송으로 부자 될래"... 취업난 돌파 대신 '왕훙' 꿈꾸는 중국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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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송을 통해 제품을 팔거나 광고로 수익을 창출하는 '라이브 스트리머'가 중국 MZ세대 사이에서 가장 선망하는 직종 중 하나로 떠올랐다. 중국에서 '왕훙(網紅·온라인 인플루언서)'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1,000조 원에 달하는 중국 라이브 커머스 시장을 무대로 일반 직장인 연봉의 수백~수천 배 수익을 올린다. 가난한 직장인이 되기 위해 최악의 취업난을 감내할 바에야, 온라인 방송으로 부자의 꿈을 이루겠다는 청년들의 인생 도박이 '라이브 스트리머 열풍'을 불렀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마저 "라이브 스트리머가 돼라"고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실제 고수익을 벌어들이는 라이브 스트리머는 극소수에 그친다는 게 함정이다. 중국 내수 시장 자체가 정체된 상황에서 라이브 스트리머 인원수가 늘어나면, 오히려 그들 간 경쟁만 가열시킬 뿐이라는 비판론도 적지 않다.
중국 라이브 스트리밍 판매 시장은 수년째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독일 시장 조사업체 ECDB에 따르면 2019년 610억 달러(약 88조 원)였던 해당 시장 규모는 △2020년 1,800억 달러(약 261조 원) △2021년 4,250억 달러(약 617조 원) △2022년 5,400억 달러(약 785조 원) △2023년 6,950억 달러(약 1,010조 원)로 커졌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4년 만에 10배 이상 몸집을 불린 것이다.
중국 최대 동영상 플랫폼 '도우인'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도우인에서 이뤄진 제품 주문 154억 건 가운데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통한 주문 비중은 63%에 달했다. 작년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광군제(11월 11일) 당시 온라인에서의 제품 판매액은 1조4,400억 위안(약 285조6,700억 원)이었다. 이 중 라이브 스트리밍 판매액은 4분의 1 수준인 3,300억 위안(약 65조4,5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54% 증가했다. 중국 기업정보사이트 치차차에 따르면 라이브 스트리밍 관련 기업 수는 2022년 기준 53만여 곳인데, 2021년 한 해 동안에만 18만5,000여 개의 신규 기업이 라이브 스트리밍 시장에 뛰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사태 기간 유행한 비대면 쇼핑이 중국인의 일상적인 구매 패턴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급격한 성장세는 자연스럽게 '스타 왕훙'을 배출했다. '립스틱 오빠'로 불리는 리자치가 대표적이다. 화장품 매장 직원으로 일하던 리자치는 라이브 스트리밍 시장 성장세를 일찌감치 눈여겨봤고, 2017년 뷰티 전문 왕훙으로 변신했다. 특유의 호들갑스러운 말투로 인기를 얻은 그는 2018년 광군제 당시 립스틱 판매 대결 방송에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누르고 방송 시작 5분 만에 립스틱 1만5,000개를 팔아 치우며 중국 뷰티 업계를 쥐락펴락하는 인플루언서가 됐다.
지난해 광군제에서 리자치가 참여한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은 한 시간 만에 1억 위안(약 19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통상 중국에서 라이브 스트리밍 판매 수익 분배는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기업과 스트리머가 절반씩 나눠 갖는 '5대 5' 구조다. 이를 단순 적용하면 고작 60분 동안 무려 5,000만 위안(약 99억 원)의 개인 수익을 챙겼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옷가게 사장 출신 왕훙인 웨이야의 연평균 수입은 50억 위안(약 9,92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포천'은 그를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사업가'로 선정했다. 장쑤성의 작은 어촌 주민 황둥예는 자신이 살던 마을을 배경으로 수산물을 팔아 3억 위안(약 595억 원)의 수익을 올려 '장쑤성 스타'로 떠올랐다.
스마트폰 하나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스트리머 시장 팽창'으로 이어졌다. 중국 인터넷방송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중국 라이브 스트리머는 총 1,508만 명으로 조사됐다. 같은 시기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업체는 660만 곳에 달했다.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 '시나웨이보'가 작년 7월 대학 졸업예정자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1%가 "일반 직장인이 아닌, 라이브 스트리머를 포함한 왕훙의 길을 걷겠다는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왕훙 속성 학원까지 판을 친다. 중국 동북부 선양의 라이브 스트리머 교육 학원은 초급 과정, 고급 과정, 현직 라이브 스트리머와의 일대일 수업 등 학과를 개설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일대일 수업 수강료는 6,999위안(약 140만 원)이다. 중국 매체 식스톤은 이 나라 전역에 라이브 스트리머 양성 학원 수백 곳이 문을 열었고 관련 학과를 개설한 대학도 60곳 안팎이라고 보도하면서 "(그러나) 이런 교육 과정을 통해 인기 라이브 스트리머로 거듭났다는 이야기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물론 유튜버 같은 온라인 인플루언서가 젊은 층에게 선망의 대상이라는 점은 전 세계적 추세다. 하지만 대학생 절반 이상이 자신의 첫 직업으로 왕훙을 고려하고 있는 현상은 분명 일반적이진 않다는 진단이 많다. 해소될 기미가 안 보이는 중국의 청년 실업 문제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11월 기준 중국 청년(16~24세) 실업률은 16.1%였다. 재학생, 시간제 아르바이트 종사자가 통계에서 제외되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실업률은 40%를 웃돌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작년 공무원시험에는 사상 최다인 341만6,000명이 몰려 '8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석사 학위 취득자가 고등학교 관리인으로 채용되고, 명문 칭화대 출신이 음식 배달부로 일한다는 소식은 중국에서 더 이상 화젯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고단한 취업난을 견디느니, '라이브 스트리머로 한 방에 터뜨리겠다'는 게 스트리머 시장 팽창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당초 라이브 스트리머에 대한 중국 당국 태도는 부정적이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022년 11월 라이브 스트리머들의 사기성 판매 전략·판매가 부풀리기 등을 전하며 "엄격한 감독과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 시기 '왕훙 계정 실명제' 도입, 라이브 스트리밍 채널 무더기 폐쇄 등 조치가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왕훙 기 살리기' 기조로 돌아선 기색이 역력하다.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지난해 10월 "왕훙 경제 모델이 '고품질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첨단 기술산업 주도 경제 성장을 뜻하는 고품질 성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시한 새로운 경제 발전 전략이다. 같은 해 8월 중국 당국은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전문가, 문화 상품 기획자, 스마트카 시운전자 등과 함께 라이브 스트리머를 신규 직업에 포함시켰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청년 일자리 창출이 막히자, 규제 대상이었던 라이브 스트리머를 내수 회복의 건실한 일꾼으로 격상시킨 셈이다.
하지만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왕훙에 도전하는 중국 청년 모두가 리자치 같은 성공을 누릴 수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국인터넷네트워크정보센터(CINIC)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라이브 스트리밍 시청자는 7억6,500만 명으로 추산됐다. 같은 해 파악된 라이브 스트리머 인원수는 약 1500만 명이다. 스트리머 1명이 고작 50명을 상대로 라이브 방송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꼴이다. 고수익 라이브 스트리머는 극소수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현지 매체 펑파이는 "스트리머의 80%는 월평균 수입 8,000위안(약 158만 원)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더욱이 작년 12월 중국 내수 시장 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0.1%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해 3월(0.1%포인트 상승)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부동산 하락이 소비 심리를 압박하고, 저조한 소비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흐름이다. 라이브 스트리밍 경제 규모가 아무리 커져 봐야 내수 위축 국면에서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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