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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관저 200m 남겨놓고 마주한 '3차 저지선'… 긴박했던 '5시간 30분 체포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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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특수단) 등으로 꾸려진 공조수사본부(공조본)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시도는 3일 이른 아침 시작됐다. 하지만 며칠 내로 집행이 예상됐던 터라 대통령경호처의 대비는 철저했고 기습 효과는 없었다. 경호처는 1~3차에 걸친 '저지선'을 세워놓고 육탄 방어에 나섰다. 수시간 동안 크고 작은 몸싸움을 벌이며 대치한 끝에, 공조본은 윤 대통령이 머물고 있던 관저를 수백m 앞둔 지점에서 끝내 빈손으로 철수했다.
공수처 비상계엄 태스크포스(TF) 팀장인 이대환 수사3부 부장검사와 수사관 20명은 이날 동이 트기 전인 오전 6시 15분쯤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차량 5대에 나눠 타고 경기 과천의 공수처 청사를 나섰다. 이들은 오전 7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도착했다. 이후 경찰 체포조 인력 80명과 합류해 관저로 진입할 채비를 마쳤다.
공조본 체포조는 차량에서 내려 40분간 대기하다가 8시 5분쯤 도보로 경내 진입에 성공했다. 공수처가 언론에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시작했다"고 공지한 시간이다.
관저 정문 안쪽에는 공조본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대형 버스가 가로로 주차된 상태였다. 1차 저지선이었다. 버스 주변에는 경호처 직원 50여 명과 군 부대 인력 30∼40명이 배치된 상태였다. 이 자리에 있던 김성훈 경호처 차장이 "우리는 경호법에 따라 경호만 할 뿐이고, 영장은 우리가 판단하기 어렵다"며 집행을 막아섰다. 40분가량 대치하던 공조본은 일단 힘으로 밀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1차 저지선을 돌파한 공조본이 언덕길을 따라 100∼150m 올라가자 또다시 경호처가 세워 둔 '차벽'이 등장했다. 2차 저지선이었다.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어 공조본은 우회로를 찾아야 했다. 수사팀은 결국 옆 산길을 따라 80∼150m 정도를 더 올라갔다.
관저 건물을 불과 200m 남겨둔 지점에서 마주한 3차 저지선은 만만치 않았다. 버스와 승용차 10여 대가 얽힌 좁은 길을 막고 있었고, 경호처 직원 200여 명이 팔짱을 낀 채 '인간 장벽'을 만들어둔 상태였다. 공조본 체포 인력의 두 배가 넘는 숫자였다. 일부 직원들은 개인 화기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2차 저지선에서 돌파당했던 경호처 인력들도 그새 언덕을 뛰어올라와 3차 저지선에 합류한 상태였다.
양측은 3차 저지선에서 한참을 대치했다. 크고 작은 몸싸움도 이어졌다. 좁은 공간에 수백 명이 몰린 탓에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경호처는 공조본과 협의 끝에 공수처 검사 3명만 통과시켜 체포영장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공수처 검사 3명이 마침내 관저 앞에 도달했지만, 이들이 만난 건 윤 대통령이 아닌 변호인단 소속 김홍일·윤갑근 변호사였다. 이들은 정오를 전후해 관저 경내로 들어온 상태였다. 검사들은 체포·수색영장을 제시하고 집행을 시도했다. 변호인들은 그러자 "수사권이 없는 기관이 청구한 영장"이라며 막아섰다. 그러면서 "조속한 시일 내에 변호인 선임계를 낼 테니, 이후 절차를 협의하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했다고 한다.
양측은 수시간 대치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영장 집행을 막는 박종준 경호처장 등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려고 했지만, 공수처 검사가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불허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공조본은 더 이상 강제 진입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오후 1시 30분 철수를 결정했다. 집행을 시작한 지 5시간 30분 만이었다. 공수처 관계자는 "관저까지 가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집행 인원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집결해 안전 우려가 커서 집행을 중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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