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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대선을 포기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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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불법계엄 이후 국민의힘의 대응을 두고 정치권 한편에서 '대선을 포기한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도 여전히 윤 대통령 탄핵을 바라는 다수 여론에 역행하며 오기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대법원도 문제가 없다고 하는 국회 몫 헌법 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끝까지 반대하고, 계엄 해제와 탄핵 소추에 앞장선 한동훈 전 대표를 모욕 줘서 쫓아냈다. 이를 주도하는 새로운 당 지도부는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들로 채워졌다. 대통령의 일탈로 정리하고 넘어갈 일을 국민의힘이 나서서 진영 갈등으로 키우는 모습이다.
한 비윤석열계 의원은 기자와 만나 "친윤석열계와 영남권 의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대선을 포기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원래 현역 의원들은 양자택일 상황이라면 대선 승리보다 자신의 재선이 더 절실하기 마련이다. 특히 이번 대선에 진지하게 임할 생각이 있다면 계엄 사태에 책임이 큰 국민의힘은 경쟁 정당보다 훨씬 가혹한 쇄신을 해야 한다. 주류인 친윤계, 영남권 의원들이 쇄신 1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재선이 불투명해진다는 뜻이다. 반대로 대선 승리를 포기하고 적당한 후보를 패전 처리 투수로 내세운 경우다. 대선에선 당연히 참패할 것이다. 하지만 쇄신은 건너뛸 수 있다. 이후 친윤계, 영남권 의원들은 똘똘 뭉쳐 당권을 장악해서 2026년 지방선거에서 자기 사람의 공천을 챙겨 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차기 정권 중반에 치러지는 2028년 총선에서는 지금처럼 텃밭에서 무난히 공천받아 재선을 기대할 수 있다.
대선 포기라니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엄연히 족보가 있는 전략이다. 120여 년 전 미국 민주당 얘기다. 미국 민주당은 지금은 진보를 대변하지만 그때는 흑인 노예제의 향수가 짙게 남은 보수적인 남부 지역의 맹주였다. 남부의 민주당 정치인들은 진화를 포기하고 북부에 대한 반감이란 익숙한 지역주의를 앞세워 꾸준히 당선이 됐다. 하지만 알량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대가로 민주당은 수가 훨씬 많은 북부 유권자를 포기했다. 이는 1897년부터 1933년까지 한 세대가 넘는 기간 동안 두 번의 대선(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재선)을 제외하고 전부 공화당에 대통령직을 갖다 바친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다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지역주의와 단절하고 뉴딜 정책을 앞세워 민주당의 전국 정당화를 지향하면서 대선 포기 전략은 막을 내렸다.
국민의힘은 항변할지 모른다. 탄핵 반대 세력을 달래서 충성 지지층의 이탈을 막은 다음, 선거 연대 등의 방식으로 중도와 무당층까지 껴안아 반이재명 전선을 긋는 대선 전략을 가동 중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말장난처럼 들린다. 탄핵 찬반은 성장과 분배처럼 절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친위 쿠데타는 어떤 경우에도 양립할 수 없다. 불법 계엄을 옹호하는 충성 지지층과 손잡은 채로 윤 대통령의 망동에 몸서리를 치는 합리적 보수와 중도를 품겠다는 것은 망상이다. 과거 미국 민주당은 시대착오적 노예제를 옹호하는 남부의 '충성 지지층'과 선을 긋고 다시 태어났다. 국민의힘도 친위 쿠데타 옹호 세력과 단절해야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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