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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국가적 자부심에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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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자부심에 빠진 적이 있었다. 유튜브에서 외국인이 한국 음식을 맛있다고 칭찬하는 영상, 외국인들이 K-POP 댄스를 추는 영상, 한국 가수들의 가창력에 열띤 반응을 보이는 외국인들의 영상을 보며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웠다. 마치 홀린 것처럼 국가에 대한 자부심에 도취된 상태를 일컫는 '국뽕'에 취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음악, 드라마, 영화, 방역, 뷰티 등 여러 곳에 K를 붙이고 자랑스러워하는 K의 시대를 누렸었다. '누렸었다'라고 과거로 표현한 이유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로도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는 우리나라를 "평시에도 계엄령이 발동될 수 있는 불안정한 나라"로 본다. 유력 외신들은 더 이상 한국을 'BTS와 오징어 게임을 창조해 낸 문화강국'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무역과 기술 흐름의 중심이 된 국가' '아시아에서 드문 민주주의 성공 사례'로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 미얀마, 태국, 필리핀 등 계엄령을 선포할 가능성이 큰 아시아 국가 명단에 불명예스럽게 합류한 국가"(블룸버그) "의회 난동 사태를 겪은 미국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평판에 더 심각한 타격을 입은 나라"(BBC)로 비친다.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이 겨울에 두 사람이 위안을 줬다. 한강과 김주혜 작가다. 한강 작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드높게 해줬다. 그런데,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며 한강 작가가 품었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인용했다. 한 작가가 품은 이 고귀한 질문이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과정에서 사용되다니, 아이러니하다. 44년 전 광주는 국가로부터 가해지는 잔혹한 폭력으로부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킬 수 있게 도와줬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의 사람들이 더 나은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현재의 불확실한 계엄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과거의 우리처럼 미래세대가 '국뽕'에 취할 수 있게,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게 말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된 바로 그날, 러시아에서는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수상자는 재미교포이자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김주혜 작가로, 수상작은 '작은 땅의 야수들'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상처를 극복하고 일어서는 한국인들의 삶을 그린 이 책에서 일본인 장교는 "어떻게 이렇게 작은 땅에서 이토록 용맹한 야수들이 번성할 수 있었는지" 감탄한다. 이 대목에서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제목이 지어졌는데, 야수들은 시련을 극복해가는 회복력을 가진 한국인들을 상징한다. 작가는 얼마 전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짧은 시간 안에 계엄을 해제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강인한 민족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한국인은 진취적이고 깊은 영혼을 가졌다"고 얘기했다.
그렇다. 이 작은 땅에서 식민, 전쟁, 분단, 그리고 독재라는 격동의 역사를 이겨낸 우리는 저력을 가진 민족이다. 그러므로 계엄으로 초래된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 다시 국뽕에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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