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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로 떠오른 K클래식 연주자들… '국대급' 기획자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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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2024년 한국 클래식 음악 시장에 좋은 공연이 많았다. 많은 관객이 극장에 유입됐고 프로그램은 물론 공연 형태도 다양해졌다. 뛰어난 한국 연주자들의 무대도 근사했지만 세계적 연주자·단체의 내한 공연도 풍성했다. 2025년 공연 일정을 보니 음악 애호가들은 내년에도 바쁠 듯하다.
유명 연주자들의 내한 무대를 쉽게,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큰 비용을 들여 초청한 세계적 연주자와 오케스트라, 여기에 스타 연주자가 협연자로 나선 무대는 지방 극장까지 안정적 관객 동원이 가능하다. 극장 대관 승인을 받을 때도 해외 단체는 경쟁력이 있고, 지방 관객들도 그때만큼은 극장을 찾는다. 이런 이유로 유명 연주자나 이름이 증명된 연주단체 수입에 의존하는 시장의 쏠림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심지어 조금 기형적으로 보인다 싶을 만큼 공연이 과다 공급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여럿이다. 업무 능력이 미숙한 상태로 이 뜨거운 시장에 뛰어든 몇몇 기획자들은 최근까지 연주자 개런티 미지급 건이 문제가 되었다. 한 주 내에도 좋은 공연이 여기저기에서 열리다 보니 관객이 분산돼 공연마다 빈 좌석이 많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어게인 2024 투란도트'는 제작자의 준비 부족이 영국 유명 클래식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의 뉴스 사이트 '슬립드 디스크' 등을 통해 해외까지 알려졌다. 공연 기획은 유명 연출자, 예술가, 연주단체를 섭외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데, 2003년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보여준 장이머우 연출의 '투란도트' 성공이 독이 된 것일까. 2024년 관객을 대상으로 한 극장 운영이나 서비스 업무 간과는 물론이고 유명 연출가를 섭외해 장이머우 연출을 카피하라고 했다니, 시대착오적 제작자의 마인드는 놀랍다.
뛰어난 연주자가 많아지는 데 비례해 기획력 좋은 제작자가 함께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제도적 지원이 부족한 탓이 크다. 한국은 연주자가 아닌 무대를 만드는 기획, 제작, 경영, 연출가의 성장을 돕는 교육 기관이나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다. 연주자는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성장을 가속화하지만 극장에 속한 예술단체, 창작자, 기획자는 국내 시장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영·행정 시스템에 갇혀 있다. 오페라하우스라는 이름의 건물은 있고, 또 짓고 있지만 극장 소속 오페라 가수, 오케스트라, 연출자, 지휘자가 없는 점도 한국만의 특이점이다.
음악 시장 규모, 청중의 절대수가 적다는 것이 큰 제약을 만든다. 좋은 공연을 만들어도 수용할 수 있는 곳이 서울, 대구 정도다. 대구 오페라축제는 해외 진출도 시도하나 큰 예산을 들여 제작한 오페라를 일본이나 중국처럼 각 도시를 찾아다니며 장기 투어 공연을 할 여건은 못 된다. 공연이 무대에 오를 수 있어야 극본부터 연출, 출연진은 물론 기획자의 역량도 함께 커 간다. 하지만 시장이 열악하다보니 극장 주도하에 오페라를 제작해도 연출만큼은 해외 유명 프로덕션의 것, 다시 말해 시장에서 검증된 완성품을 가져온다. 좋은 성악가들이 있지만 공연이 꾸준히 오르지 못하는 데 이유가 있고, 민간 제작자들도 체계를 갖춰 운영하기 어렵다.
현재 극장 주도하에 자체 제작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많은 곳은 가장 오래된 극장인 세종문화회관이다. 극장 산하 예술단체가 많지만 부족한 예산, 크고 오래된 국공립단체의 고착화된 문화는 창작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2021년 안호상 사장이 부임하면서 제작극장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역량과 대중성까지 검증된 예술감독들을 영입했다. 창작 예산을 늘리고 정기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자체 레퍼토리를 개발하면서 한국 예술단체와 작품에 대한 관심도를 높였다. 정체됐던 극장의 이미지 개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몇 년 새 만족스럽게 관람했던 '투란도트'도 손진책 연출가의 반전 해석과 테너 이용훈의 출연이 돋보였던 서울시오페라단(2023) 프로덕션이었다.
공연 시장도 건강을 돌볼 필요가 있다. 균형은 공공 극장에서 민간기획사와의 상생을 고민하고, 경영과 운영 효율성을 조율하려는 좋은 기획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정책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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