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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글로벌 민주주의'의 등대일까?

입력
2024.12.30 00:01
26면

편집자주

재미학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사회,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에 관한 주요 이슈를 다루고자 한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의 모습과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글로벌 시각에서 제시하려 한다.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윤석열 탄핵 심리
조기 대선, 이 대표 최종 판결 후 치러야
내각제 개헌에 대한 국민 관심 높아져야


4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마트 신문 가판대에 이날 자 1면 머리기사와 사진으로 한국 계엄 사태를 다룬 월스트리트저널(WSJ·왼쪽부터),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등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마트 신문 가판대에 이날 자 1면 머리기사와 사진으로 한국 계엄 사태를 다룬 월스트리트저널(WSJ·왼쪽부터),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등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사태는 해외에서도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한반도 이슈는 북한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해외 언론의 관심이 적은 편인데,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나한테 온 인터뷰 요청만 해도 주요 TV, 신문, 라디오, 잡지 등을 포함해 50건이 넘었고, 미국은 물론 유럽, 아시아 심지어 이집트에서도 연락이 왔다.

그 이유는, 첫째 아시아 민주주의의 보루라고 여겼던 한국에서 계엄령 사태와 같은 일이 있어났다면, 민주주의 후퇴를 겪고 있는 국가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염려에서다. 민주주의 전문가인 동료교수는 트럼프가 배울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둘째는 시민들의 적극 참여에 힘입어 국회가 신속히 계엄령을 해제하는 걸 보고 글로벌 민주주의 회복의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 지인들은 "창피하다", "수치스럽다"고 탄식했지만 학교 동료들이나 해외 언론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나 역시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을 다 소화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응했고, 가급적 긍정적 메시지를 내려고 노력했다(외신 인터뷰). 한국인들은 피땀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비 온 후 땅이 굳어지듯이 일시적 혼란 후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해외 언론 인터뷰에 적극 응한 것은 지난 수년간에 거쳐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신동아' 글에서는 '소나기에 흠뻑 젖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문화일보' 칼럼 등에선 좌파 포퓰리즘은 극우정권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주의의 모험'이란 책에선 민주주의 위기를 넘어 리더십 위기를 논했고, 'Journal of Democracy'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쇠퇴"(Democratic Decay)를, 연세대 김호기 교수와 편집한 책에선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시 거론했다.

물론 계엄령과 같은 극단적 사태를 예상할 순 없었지만, 민주주의 후퇴의 징후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어느 순간 이들이 합해져 한국 민주주의를 통째로 침체의 늪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컸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이젠 한국이 글로벌 민주주의 회복의 등대가 되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우선 헌재의 윤석열 탄핵심리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은 이미 헌법적 절차에 따라 한 번씩 기각과 인용이 된 경험을 갖고 있다. 계엄사태의 진상을 상세히 밝히고 책임자를 엄정하게 처벌해 재발을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탄핵이나 수사가 제2의 적폐청산으로 이어진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또 다른 위기를 맞을 것이다.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할 경우 선두주자인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에 하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각제로의 개헌이다. 본지 5월 13일 자 칼럼에서 내각제 개헌을 주장한 바 있는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그 필요성은 더 분명해졌다. 내각제였다면 현 정권은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통해 재신임을 받거나 퇴진하면 된다. 또한 이번에 나타난 시민들의 민주주의 수호 의지는 내각제를 할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본지 칼럼을 시작하면서 2024년이 민주주의 회복의 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 바램과는 달리 한국의 민주주의가 예측불허의 돌풍을 맞았지만, 잘 극복하면 글로벌 민주주의 후퇴라는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등대가 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사례가 중요한 연구대상이 될 것이며 다른 나라에도 교훈을 줄 것이다. 해외 언론의 큰 관심은 이러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으며 향후 전개과정을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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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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