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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코리아 피크'가 시작된 걸까?

입력
2024.12.31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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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의 충격에서 막 벗어나는 즈음에 '일상을 되찾자'는 당위적 격려 문구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해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일상'은 쉽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분석적 시각에서 볼 때, 작금의 한국 상황은 후대의 역사가 '코리아 피크'의 본격적 시작점으로 볼 개연성이 높은 시기다. 국내적으로는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100년 만에 한 번 오는 국제 지정학적 격변의 시기다. 대한민국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잘 대처하고 있다는 증거는 부재하다.

계엄 사태는 한국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누군가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달리 생각하면, 한국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개화기 때도 그랬다. 지정학적 대변환의 시대에 조선의 사대부들은 당파 싸움에만 몰두했다. 그러다 나라를 잃었다.

설마 그럴 리가?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 미묘하지만 뚜렷한 국력 하강의 징조가 벌써 보인다. 흔히 듣는 대한민국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란 표현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세계은행은 2023년 기준, 한국을 세계 14위로 명시했다. '10위'와는 솔직히 거리가 있다. 게다가 향후 5년 한국이 15위 바깥으로 몇 번 표류할 경우 영구적으로 회복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

한국 사회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민주화에 기여한 세대가 기득권이 된 후, 한국 사회 발전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십 년째 권력을 꽉 잡고 있는 그들은, 권력을 한 번 빼앗기면 피비린내 나는 보복을 당한 터라, 뱀이 또아리를 튼 듯 권력을 껴안고 필사적으로 버틴다. 차기 주요 대선 주자도 역시 같은 세대다. 피해는 누가 보는가?

국민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이다. 생물체는 극도로 가혹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번식을 중단한다. 자식을 낳아도 생존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해외 토픽감인 한국의 초저출산율은 '대한민국이란 시스템'에 대한 한국 젊은이들의 생물학적 불신임 표출이다. 국가라는 공동체에 대한 소극적이지만 본질적인 반항이다. 번식은커녕 심지어 자살로 본인의 생애주기를 스스로 단축하기도 하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국가는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불행히도 한국은 이번 대통령을 포함해 세 번 연속 잘못된 지도자를 뽑았다. 그들은 무능, 내로남불, 독선이라는 놀라운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이 행한 기관장 낙하산 인사가 낳은 한국 주요 공조직 내부의 갑질 사례는 가끔씩 들어도 비극적 수준이다.

분열된 국내 정치, 어려운 경제, 100년에 한 번 오는 지정학적 대외 환경 등 내리막길 표지판이 보이는 시점에서는 국가가 특히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한 번 미끄러지면 한 번에 나락으로 갈 수 있다.

민주주의는 5,000년 역사가 우리에게 준 황금 같은 선물이다. 그러나 이를 올바로 운영하지 못하는 나라는 필연적으로 쇠퇴한다. 블룸버그가 연일 한국의 계엄 사례를 들며 경고하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번에도 시민 사회가 막아냈다'고 안위하기에는 사태가 너무나 엄중하다. 한국이 후진국도 아닌데 왜 계속 후진적 정치인들이 무대에 등장하는지 근본적 진단과 처방을 내려야 한다.


이성현 하버드대 아시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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