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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사상 첫 '감액' 예산안 통과...'尹 불법계엄'이 협상 발목 잡았다

입력
2024.12.10 19:00
수정
2024.12.10 20:1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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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예산 673.3조 편성...감액 4.1조·증액 0원
검·경 특활비 전액삭감·정부 예비비 절반 삭감
尹 불법 계엄 여파로 경제 휘청거리자 "일단 통과"
내년 초 추경 불가피 전망...가능할지는 미지수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5년도 예산안이 재석 278인, 찬성 183인, 반대 94인, 기권 1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뉴스1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5년도 예산안이 재석 278인, 찬성 183인, 반대 94인, 기권 1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뉴스1

헌정 사상 처음으로 야당 단독 감액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내년 나라살림은 당초 정부가 제출한 677조4,000억 원에서 4조1,000억 원이 감액된 673조3,000억 원이 편성됐다. 증액 한 푼 없이 감액 예산안이 통과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초래한 ‘12·3 불법계엄 사태’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자 야당은 예산안이라도 통과시켜야 한다고 밀어붙였고, 정부·여당은 일부 증액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감액 예산안 통과를 지켜봐야 했다.

2025년도 예산안은 1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278명의 의원이 투표한 가운데 찬성 183표, 반대 94표, 기권 1표로 가결됐다. 예산안 처리 법정 기한을 넘긴 지 8일 만으로, 당초 정부가 제출한 677조 원 규모의 예산안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에서 4조1,000억 원 깎은 예결위 안이 확정됐다. 초유의 감액 예산안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특활비) 등 사정기관 예산과 대통령실 예산 등이 사정없이 잘려나갔다. 정부 비상금인 예비비 2조4,000억 원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의 특수활동비 82억5,100만 원 △검찰 특정업무경비(특경비) 506억9,100만 원과 특활비 80억900만 원 △감사원 특경비 45억 원과 특활비 15억 원 △경찰 특활비 31억6,000만 원 등이 삭감된 채 국회 문턱을 넘었다. 윤 정부의 핵심 사업으로 꼽히는 동해 심해 가스전 시추 ‘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도 506억 원에서 497억 원이 도려내졌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윤 대통령이 3일 선포한 불법계엄으로 예산안 논의는 일제히 멈춰섰다. 정부·여당은 정기국회 종료 하루를 앞두고 뒤늦게 협상에 돌입, 이날 본회의 직전까지 야당을 설득했지만 힘을 쓰지 못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에서 일방 삭감한 4조1,000억 원에서 3조4,000억 원을 증액하자”고 제안했다. 증액 분야로는 민생·안전·농어민 등 사회적 약자와 인공지능(AI) 등 경제활성화 관련 예산 1조5,000억 원, 삭감된 예비비 중 1조5,000억 원, 민생침해 수사 관련 경비 500억 원,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 심해 가스전) 예산 500억 원 등이다. 여기에 당초 정부안에 편성되지 않은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예산으로 3,000억 원을 제시해, 야당의 중점 사업인 지역화폐 예산도 끼워 넣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지역화폐 예산 증액 규모를 키우면서 협상은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야당에서 지역화폐 1조 원을 요구했는데, 4,000억 원 정도가 마지노선이라고 판단했다”며 “계엄사태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 협상할 수 있는 시간과 제시할 수 있는 선택지 자체도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야당의 예산 폭거'를 비상계엄 선포 배경 중 하나로 꼽았는데,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 본인이 예산안 증액 협상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최근 무디스와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과 글로벌 투자자들은 불법계엄 사태로 촉발된 한국의 정치 리스크가 한국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고 내수 리스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초유의 준예산 우려까지 거론되던 상황에서 예산안 통과로 조금이나마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예산안 통과 직후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감액 예산안이 통과돼 안타까운 심정”이라면서도 “통과된 예산을 기반으로 민생안전과 대외불확실성 해소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은 정부 정책의 출발점인 만큼, 이를 통과시켜 우리 경제시스템이 정상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대외에 알리는 게 시급했다는 얘기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도 “지금은 대외신인도 등을 고려할 때 임시방편으로 감액 예산안이라도 통과시켜야 했던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감액된 예산안이 확정되면서 정부의 재정운용은 큰 제약을 받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내년 이른 시기에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예산안이 통과되자마자 “정부는 내년도 예산 집행이 시작되는 즉시 추경 편성에 착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정부가 책임 있게 추경안을 편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재부 관계자는 “증액 예산을 담기 위한 추경은 국가재정법상 추경 편성 요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부족한 재원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은 추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조소진 기자
박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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