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개헌의 방향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12·3 불법계엄 사태 이후 난국 타개를 위해 국민적 지혜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치우치지 않는 여론 형성에 기여해 온 한국일보는 각계 전문가들이 보내온 다양한 의견과 수습 방안을 온라인에 전문 게재키로 했습니다. 다양한 견해와 의견이 소개되는 만큼 기고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결코, 어디에서도 완벽한 정치체제는 아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와 다른 제도에 대한 우월성은 내전과 집단적 폭력을 예측 가능한 일련의 규칙으로 대체했다는 데 있다. 영국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가 썼듯이, 민주주의는 최고 지도자를 뽑는 것보다는 선출된 지도자가 유혈 사태 없이 약속된 시간에 퇴임하는 게 보장됐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에 대해 너무 많은 이익을 기대한 탓일까. 한국에서는 이런 간단한 정의와 의미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다. 4명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보내졌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전직 대통령들이 수감된 동기가 무엇이든, 그건 민주주의 국가가 작동할 방식은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는 한국 역사와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전쟁, 종교 및 지역갈등의 역사와 함께 최근에는 젠더 논쟁마저 심화하고 있다. 다양하고 오랜 대립구도로, 타협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한국에서는 안정적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선거는 정치 진영 사이의 대치를 넘어선 일종의 전쟁으로 격화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대통령은 ‘잠시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라는 걸 망각하고 독재자처럼 행동했고, 야당은 다음 선거에서 집권당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은 채 독재자와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행동했다.
따라서 새로운 위기가 닥친 지금, 한국에서 법치주의를 강화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필자는 그 유일한 방법이 개헌이라고 믿는다. 과거에도 개헌 필요성을 여러 차례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제안한 바 있는데, 당장의 권력을 중시하는 정치인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정치적 안정이 권력추구보다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헌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선 한국 특유의 거친 정치문화를 감안하면서도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국제사회의 경쟁에서 국가를 이끌면서도 타협의 의무를 잊지 않는 합법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통령 임기를 미국처럼 4년으로 줄이고, 권한도 제한해야 한다. 대통령이 정치 활동가여서는 안 된다. 전쟁 상황에서는 예외지만, 대통령 권한은 '법의 존중'이 보장되는 선으로 제한돼야 한다. 이와 관련, 독일은 신뢰할 수 있는 모델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이전의 미국도 그런 모델이다. 일상적 국정운영, 경제 및 사회정책, 소수자 보호, 공공 안전은 4년 임기의 의회에서 선출된 총리와 그가 주도하는 내각이 맡아야 한다.
이 같은 의회민주주의에서 야당은 영국의 소위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과 같은 수준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국내, 국외의 중요한 국정현안에 대해 적절한 정보를 받을 권리와 총리에게 공개적으로 질문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야당도 국정에 책임을 지게 되고 정부는 야당을 존중하게 될 것이다. 갈등을 대화가 대신할 것이다.
의회는 미국, 독일, 프랑스처럼 양원제로 구성하는 게 적당하다. 제2의회 또는 상원은 지역을 대표하며, 제1의회보다는 권한이 적지만 법의 남용을 막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의원과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 이하로 제한하면, 정치의 효율성과 참신성이 높아질 것이다. 정치는 전업(專業)이 아니라 다양한 직업 경력의 한 단계에 머물러야 한다.
헌법 개정은 누가 주도해야 할까. 여러 유럽국가의 사례를 돌이켜보면, 현재 혹은 차기 국회보다는 헌법 개정을 위한 특별 의회를 구성하는 게 방법이다. 해당 의회는 개헌이 유일한 목적이며, 그 구성원은 개헌이 이뤄진 뒤 4년 동안 어떤 선거에도 출마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헌법은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로 승인돼야 한다.
필자는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진행 중인 정치적 갈등에 대해 누구 입장도 지지하지 않는다. 다만 국외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경제와 문화 부문에서 이룬 빛나는 성취와 비교하면 한국의 정치적 혼란은 놀랄 정도로 초라하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세계 수준에 도달한 경제·문화와 낡고 진부한 다른 쪽의 격차를 해소할 때이다. 현재의 위기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여기고 활용한다면, 이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이 기고는 필자가 코리아타임스에 보내온 영문 기고를 번역한 것입니다. 코리아타임스 기고 바로 가기.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