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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묻는 사회의 한계

입력
2024.12.05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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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우리나라에선 처음 만났을 때 바로 나이를 묻는다. 나이가 나보다 어리면 말을 놓기도 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형, 누나, 오빠, 언니 등의 정다운 호칭을 사용한다. 마치 나이를 알아야 그 사람과의 관계 형성을 시작할 수 있다는 듯이, 우리 사회는 나이를 중시한다.

나이가 중요한 만큼 연령대마다 고정화된 편견과 이로 인한 차별이 존재한다. 가장 심각한 연령차별(ageism) 중의 하나는 노년층에 대한 차별이다. 온라인에서는 노년층을 '연금충' '할매미' '틀딱충'이란 멸칭으로 조롱하는 차별이 발생한다. '노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 의미를 갖게 된 세태 속에서, '선배 시민', '어르신', '시니어' 등의 대체 표현이 논의되기도 한다. "잇단 70대 운전자 사고, 가게 돌진 6명 사상" "다 부서지는 소리 또 돌진, 이번에도 70대 운전자였다" 등의 제목을 단 보도는 사고의 직접 원인이 고령인지 아닌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잇단'이나 '또'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우리 사회에 내재한 고령층에 대한 연령차별적 편견을 보여준다.

청년 세대에 대한 편견도 만만치 않다. '요즘 것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젖비린내 난다' 등 차별적 표현이 흔히 사용된다. 논란이 되었던 민주당의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현수막은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라는 문구를 담아, 젊은이들을 공적 가치에는 관심 없고 욕구에 충실한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였다. 국민의힘이 개최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도 "젊은이들이 밝은 얼굴로 와, 실업급여를 받아 명품 선글라스 끼고 해외여행 다녀온다"는 발언이 나와, 청년 차별적 인식을 보여줬다. 71세 홍준표 대구시장은 51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어린애'라고 부르며, "어린애가 설치는 게 맞냐"고 한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면 아무리 오십 넘은 성인이라도 '애'가 된다. 거기다가, 어린아이는 좀 설치면 안 되는 걸까?

조회수가 200만을 넘기는 SNL 코리아 시즌3의 ‘MZ 오피스’ 콘텐츠들도 그렇다. 이 콘텐츠들에서 청년들은 "궂은일을 하기 싫어하고, 툭하면 퇴사하겠다고 하는 세대" "업무시간 직전 출근해 이어폰 꽂고 일하고, 점심때는 수저 세팅도 안 하는 애들"로 묘사된다. 대학에서 20대 청년들을 가르치는 나로서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스러운 내 제자들이 이렇게 묘사되는 것이 불편하다.

나이에는 '역연령(chronological age)'과 '기능적 연령(functional age)'이 있다. 역연령은 출생 후 시간 흐름에 따른 연령이고, 기능적 연령은 특정 직무를 수행하는 개인 능력에 따른 연령이다. 60세인 사람도 기능적 연령은 팔팔한 35세가 될 수도, 반대로 30세인 사람도 70세의 기능적 연령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역연령에만 지나치게 큰 가치를 둔다. 당장 내년이면 고령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는 이때, 역연령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스무 살 차이라도 마음만 맞는다면 친구가 될 수 있는 연령 다양성을 가져보면 어떨까. 나이가 뭐길래, 우리 존재와 삶을 이토록 규정하는가.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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