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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판 살인의 추억… '포악한 포식자' 먹잇감 된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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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1993년 3월 26일 금요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남부에서 미국인 유학생 애니 매캐릭(당시 27세)이 증발했다. 오전 11시쯤 더블린 샌디마운틴로드의 한 은행 폐쇄회로(CC)TV에 모습이 찍힌 매캐릭은 위클로 국립공원으로 가는 44번 버스를 타는 게 목격됐다. 친구들에게 “트레킹을 하며 하룻밤을 보내겠다”고 했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다.
1995년 11월 9일 목요일. 부모를 일찍 여의고 웨이트리스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준비를 하던 조세핀 ‘조조’ 덜라드(당시 21세)가 실종됐다. 사회복지수당을 받으러 더블린에 갔다가 킬케니의 집으로 돌아가려 했던 덜라드는 막차를 놓치자, 킬케니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문으로 가는 다른 버스를 탔다. 히치하이킹을 할 작정이었다. 밤 11시 37분쯤 공중전화로 친구에게 “차를 얻어 타기로 했다”고 말한 게 마지막이었다.
1998년 7월 28일 화요일. 디어드레 제이컵(당시 18세)은 더블린 외곽 뉴브리지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할머니 가게를 들른 뒤, 도보 25분 거리인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교생실습 중이던 제이컵은 오후 3시쯤 자신의 집 건너편 풀밭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노란색 ‘CAT’ 로고가 적힌 가방을 맨 제이컵을 본 목격자가 지인 6명을 포함해 총 8명이나 됐으나,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소멸의 삼각지대(Vanishing Triangle)’ 연쇄 실종·살인 사건은 아일랜드 사회와 가르다이(경찰)의 치욕으로 여겨진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후반 아일랜드 위클로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반경 80마일(약 130㎞) 일대에서 10~30대 여성 10명이 잇따라 실종됐고, 다른 3명은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을 단죄하지 못해서만은 아니다. 예단과 편견, 초동 수사 부실이 뒤엉키면서 경찰 스스로 ‘골든 타임’을 놓쳤다. 퇴직 경찰관들은 아일랜드 언론에 “수사 초기 실종된 여성의 행실에 대한 선입견이 없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사람들은 피해자를 외면했다. 범죄 전문 작가 클레어 맥고완은 “1990년대 아일랜드에선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를 쉬쉬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문화가 만연했다”고 지적했다.
‘조조’ 덜라드 실종은 특히 뼈아픈 사건이다. 실종 당일 자정, 덜라드가 친구에게 마지막 전화를 건 곳에서 “한 여성이 벌거벗은 채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고 있다”는 트럭 운전기사의 신고가 있었지만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경찰은 이를 사건 발생 26년 후인 2021년에야 공개했다. 영국식 억양을 쓰는 두 남자가 덜라드를 차에 태우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를 찾은 것도 사건이 있은 지 2년이나 흐른 뒤였다.
에바 브레넌(당시 39세) 실종 사건도 오점이다. 브레넌은 1993년 7월 25일 성요셉성당 미사에 참석한 뒤, 더블린 남부 고급 주택가 라스가의 부모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선 이후 감쪽같이 증발했다. 경찰은 그가 우울증을 알았다는 이유로 단순 가출로 처리했다. 성공한 사업가인 브레넌의 부친이 알버트 레이놀즈 당시 총리에게 직접 호소한 끝에 실종 한 달이 지나서야 경찰 수사가 시작됐으나, 브레넌을 봤다는 사람은 끝내 찾지 못했다. 실종 장소는 고급 상업 건물이 밀집한 번화가로, 유동인구도 많아 CCTV 증거나 목격자 확보가 어렵지 않았음에도 기회를 날렸다.
특히 피오나 시놋(19) 사건은 여성 대상 범죄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아일랜드 사회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시놋은 1998년 2월 8일 일요일 밤 아일랜드 남부 웩스퍼드 카운티의 한 펍을 나선 뒤 종적을 감췄다. 생후 11개월 딸을 가진 미혼모로 공공주택에서 살던 시놋을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서 주는 사람은 없었다. 경찰이 수소문 끝에 시놋 실종 사건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목격자 4명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이들은 침묵했다. ‘시놋의 시신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주장하는 남성도 있었다. 이 남성은 경찰에 제보하라는 지인 권유에도 “살인범을 포함해 단 두 명만 시놋이 어디에 묻혔는지 안다. 내 사형 영장에 서명할 수는 없다”며 거부했다. 이들의 대화는 2001년 해당 남성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의문사한 뒤, 경찰에 전해졌다.
경찰이 허탕만 친 것은 아니다. 오랜 추적 끝에 위클로 발팅글래스에서 목수로 일하던 래리 머피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었다. 머피가 2000년 위클로 국립공원에서 한 젊은 여성 사업가를 살해하려다 덜미가 잡히면서 수사의 물꼬가 트였다. 위클로 국립공원이 사건의 고리였다.
머피는 스토킹하던 여성을 칼로(carlow) 카운티 아파트 앞에서 납치한 뒤 차에 싣고 다니며 수차례 강간했다. 납치 3시간 뒤 위클로 국립공원에서 여성의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워 살해하려 했다. 때마침 인근을 지나던 사냥꾼들의 도움으로 여성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머피는 태연히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위스키 한 병을 마시고 잠들었다.
머피는 연쇄 실종 사건 기록을 검토한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프로파일링한 30대·백인·기혼·남성이라는 특징에도 맞아떨어졌다. 범행 장소와 수법 또한 유사한 패턴이었다. 1987년 7월 12일 실종된 앙투아네트 그린 스미스(27)는 이듬해 4월 위클로 국립공원 초입 글렌두 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강간당한 뒤 목이 졸려 죽었고, 머리에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었다. 1991년 12월 23일 실종 후 교살된 채 발견된 패트리샤 모리아티 도허티(29)의 시신도 위클로에 있었다.
경찰에 체포된 머피는 “그녀는 운이 좋았다”며 후회나 죄책감을 갖지 않는 등 ‘포악한 포식자’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칼로 사건만으로도 종신형 선고가 예상됐으나, 징역 15년형이 선고됐고 그마저도 이후 5년이 감형됐다. 법원은 범죄를 시인했다는 점을 감형 사유로 인정했다. 솜방망이 처벌에 공분이 일었다. 머피의 수감 이후 소멸의 삼각지대에서 의문의 실종 사건이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일랜드 사회는 공포에 휩싸였다. ‘공공의 적 1호’ 머피의 출소 이후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범죄자법 제정(2001년) 이전에 선고를 받아, 그는 보호관찰 처분 대상도 아니었다.
경찰은 머피의 출소 이전에 여죄를 밝히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매캐릭 등 최소 3개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판단했다. 하지만 머피가 완강히 저항했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여죄 입증에 실패한 경찰은 2010년 출소한 머피를 고위험 범죄자로 간주해 감시했다.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머피 입에서 나왔다. 교도소 수감 시절 밀주를 마시고 취한 머피가 동료 재소자에게 제이컵 살해 사실을 자랑하며 “나는 그녀에게 잘해 줬다”고 말한 것이다. 머피는 “길을 묻는 척하며 잡아채 차량 조수석 창문으로 태웠다”며 세세한 납치 상황도 떠벌렸다. 경찰은 제이컵이 실종 당일 들른 할머니 가게에서 머피의 수표 다발을 발견했다. 당시 제이컵 집 인근에서 머피가 일을 하고 있었던 사실도 확인했다. 2016년 사망한 다른 재소자로부터 머피가 "산 위에 (주검이) 더 있다" "누군가 납치하고 싶다면 위클로 인근 숲을 살펴봐라. 좋은 은신처가 있다"고 말했다는 진술서도 받았다.
경찰은 2022년 제이컵 살해 혐의로 머피를 일단 기소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가 범인이라고 볼 정황은 차고 넘쳤다. 그러나 시신 없는 살인 범죄를 입증할 결정적 물증이 부족하다는 게 흠이었다. 검찰은 결국 불기소를 결정했다.
머피는 출소 이후 아일랜드 경찰의 감시를 피해 스페인, 네덜란드를 오가며 거듭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현지 경찰 감시망까지 벗어나진 못했다. 2014년부터 런던 남부에서 '도일' 등 여러 가명을 쓰며 목수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간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일을 마친 뒤 펍에 들러 술을 마시고, 여성들과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으며 일상을 보내는 모습들이었다.
정반대로 피해자 가족들의 일상은 과거의 '그날'에 멈췄다. 늙고 병들어, 또는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슬픔에 세상을 등진 이도 적지 않다. 잃어버린 자식, 자매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사립탐정을 고용하고, 목격자를 찾아 나서며, 실종 전단지를 돌리면서 발버둥 치듯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경찰도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사건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수사는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 됐다. 사건을 기억할 목격자의 기억도, 어딘가에는 있을 증거도 모두 소멸해 가고 있는 탓이다.
피해자 가족과 경찰 모두 희생자의 주검을 찾는 데 필사적이다. 경찰은 이달 초 고고학자를 참여시켜 위클로 산맥 주변 개활지에 대한 대대적 발굴 조사에 착수했다. 머피 외에 각 사건마다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에 대한 추적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조조' 덜라드 살해 혐의로 50대 남성을 체포하기도 했으나, 얼마 안 돼 풀어줬다. 소멸의 삼각지대 실종·사망 사건과 관련, 기소된 사람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다. 경찰은 "주변 사람들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며 용기를 내 증언해 줄 것을 거듭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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