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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하기 힘든 나라’의 투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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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금융투자소득세‘만’ 폐지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것처럼 주장했던 정치인은 사기꾼이거나 국내 증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예컨대 ‘금투세 있는 미국 증시’와 ‘금투세 없는 한국 증시’ 중 개인 투자자들은 어느 쪽을 더 선호할까? 당연히 전자다. 이미 많은 사람이 제도와 정보의 불리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이 소위 ‘국장’이라 불리는 국내 증시를 떠나는 건 세금 몇 푼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국장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 2월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기업이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주주가치를 높이는 활동을 진행하도록 유도하고 여기에 동참한 기업을 중심으로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발표 직후 일어난 일들은 황당하기만 하다. 지난 7월 두산그룹은 고평가된 두산로보틱스 주식과 저평가된 두산밥캣 주식을 강제로 맞바꿈으로써 알짜 회사인 두산밥캣의 지분을 비약적으로 늘리는 합병안을 발표했다. 한때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거는 듯했지만, 이들의 합병은 결국 승인됐다. 10월에는 한 코스닥 상장사가 ‘계산을 잘못했다’며 3년치 배당금 환수에 나서는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 정도 실수는 ‘국장’에선 애교다. 며칠 뒤 고려아연은 자신들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2조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같은 날, 한국거래소는 예상 실적을 실제보다 100배가량 부풀린 금양에 철퇴를 내렸다. ‘무려’ 벌점 10점에 제재금 2억 원. 또 일주일쯤 뒤에는 이수페타시스가 호재성 정보는 장 중에, 악재성 정보는 장 종료 후에 공시하는 ‘올빼미 공시’를 감행했다. 봉숭아학당도 이런 식으로 주식시장을 굴리지는 않을 것이다.
상법 개정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21일 한국경제인협회와 기업인들은 “기업 경쟁력이 크게 훼손되고 우리 증시의 가치하락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이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재계에선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까다로운 규제와 복잡한 절차로 인한 어려움은 일부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고 투덜대는 경영자들이 간과한 게 있다. 여기서 하던 방식으로 미국에서 경영했으면 시세조종이나 배임 등의 혐의로 수십 년, 수백 년 징역 사는 사람도 수두룩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걸 다 떠나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당위를 놓고 싸우는 나라는 선진국 중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기본적인 상식도 통용되지 않는 현실이 개미 투자자들의 ‘국장 탈출’을 이끈 셈이다.
솔직히 한국 증시가 망해도 투자자들은 아쉬울 게 없다. 선택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안방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미국 주식을 사는 시대.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수수료를 인하하고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며 해외 주식으로의 접근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투자자들은 더 이상 ‘잡은 물고기’가 아니다. 정부든 기업이든 진짜 망하고 싶지 않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제도적 기반과 신뢰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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