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굴욕적인 日 사도 광산 추도식... 尹 정부 '외교 참사' 책임져야[문지방]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결국 최악의 외교 굴욕을 맛봤습니다. "일본도 강제성을 부인하지 않는다"던 조태열 외교장관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24일 일본 추도식 실행위원회가 개최한 '사도광산 추도식'은 결국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노역을 당해준 모든 이들에게 축하하는 행사"로 전락했습니다. 정부는 '불참'이라는 강수를 뒀지만 축제의 장으로 전락한 반쪽짜리 추도식 자체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예견된 참사였습니다. 지난 7월 윤석열 정부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동의한 순간부터 일본의 '꼼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미 군함도 이슈도 당했던 반면교사도 있지만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다. 궁금해집니다. 정부는 왜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일까요. 정부 정책 결정자들의 왜곡된 역사인식과 공무원들의 영혼 없는 기계적 행정이 결합했을 때 어떤 참사가 발생하는지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올해 처음 일본 현지에서 열리는 ‘사도광산 추도식’을 하루 앞둔 23일 정부는 전격적으로 불참을 결정했습니다. 일본 중앙정부의 참석자가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이기 때문입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2022년 자민당 참의원 의원에 당선된 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인물입니다.
다른 곳도 아닌 일본의 식민 지배 정당화를 상징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정치인이 추도식에 참석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죠. 일본 외무성은 이쿠이나 정무관이 참의원 취임 이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2022년 8월 15일과 16일 일본 교도통신과 지역매체들은 이쿠이나 '참의원'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자민당 의원 20명 중 한 명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해온 인물이 추도사에서 "가혹한 환경 속에 끌려가 고생한 조선인 노동자들께 사죄의 마음을 전한다"고 한다면, 분명 진정성 있는 추도식이 됐을 겁니다. 그러나 본보 취재에 따르면, 그런 내용은 추도사에 없습니다. 한일이 합의한 추도사에는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과'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결국 외교부는 추도식을 하루 앞두고 불참을 결정했습니다.
이쿠이나의 사도광산 파견은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이시바 시게루 정권이 참의원이었던 이쿠이나의 인사를 발표한 건 11월 13일, 아시아·대양주 지역 업무를 맡는 정무관에 기용했습니다. 물론 '사도광산 추도식'은 아시아대양주 지역 산하 한국과 관련한 행사이기 때문에 행정적으로 따지면 이쿠이나 정무관이 참석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다, 강제동원을 비롯한 역사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더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사를 정부 대표로 추도식에 보내는 게 적절할까요. 그의 추도사에는 처음에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다"는 표현이 담겼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대일본제국의 제2 신민으로서 노역당해준 덕분에 세계문화유산이 탄생했다"고 조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초 일본 정부는 정무관급 인사를 파견하는 것에는 긍정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주일한국대사관과 외교부는 13일부터 이쿠이나 정무관 대신 야스쿠니 신사와 관련이 없고, 유엔에서 인권 관련 업무를 해온 에리 아르피야 정무관을 보내줄 수 없냐고 강력하게 요청했어야 합니다. 일본 외무성 정무관 3명 중 2명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거든요.
외교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정무관이 파견될 가능성이 큰지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20일 열린 비공개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질문이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외무성에서 정무관이 간다고 해도, 누가 가는지에 따라 역할이 다른데, 확인해주실 수 있나요? 우리가 요청하고 있는 정무관은 누구인가요?"
일본이 파견 정무관의 이름을 공개하기 이틀 전의 일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받고도 외교부는 이쿠이나 정무관과 마츠모토 히사시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주일한국대사관이 이쿠이나 정무관의 이력을 공공문화외교국에 전달은 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22일 이쿠이나 정무관 파견 소식에 기자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정무관이 추도식에 파견되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나"고 질문하자 외교부는 침묵하더니 돌연 이날 예정돼 있던 비공개 기자간담회를 5분 앞두고 취소했습니다.
외교부가 성과라고 내건 사도광산 추도식의 핵심은 △매년 가을 △일본 중앙정부 관계자가 참석해 △모든 노동자, 특히 한국인 노동자를 진심으로 추모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속 협상이 시작되자 △날짜 △정부 참석자의 급 △추모의 뜻이 담길 추도사 등 세 가지가 일본의 진정성을 엿볼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첫 협상부터 양보하기 바빴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를 포기하면서 일본 정국이 급격한 소용돌이에 휘말렸기 때문이죠. 총재 선거와 내각 개편까지 정부는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당초 올가을 중으로 개최하기로 한 추도식은 새해가 오기 직전인 11월에야 열 수 있게 됐습니다.
양보는 계속됐습니다. 처음부터 사도광산 추도식에 합의했을 때, 정부는 주최 기관을 구체적으로 따지지 않았습니다. 추모 대상도 '한국인 노동자'가 아닌 '모든 노동자'였습니다. 그 결과, 일본 당국은 추도식 개최를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시민모임 등으로 구성된 '실행위원회'에 맡깁니다. 경기 부흥을 위해 사도광산을 관광지로 띄우려는 지자체와 시민모임으로 구성된 실행위원회. 구성원만 보더라도 '추모'보단 '자축'을 위한 추도식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하지만 일본 현지에서 이런 움직임을 가장 기민하게 보고 태도 변화를 촉구해야 할 대사관은 조용했습니다. 박철희 주일대사가 니가타 현지사와 사도시장을 만나 진정성 있는 추도식을 당부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위원회 구성방식에 대한 외교본부와 공관 차원의 문제 제기는 없었습니다. 애초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주최 기관 선정은 한일이 합의한 사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다들 뒷짐만 졌고,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습니다.
일본의 후속 이행조치로서 추도식 개최 문제를 총괄해야 할 공공문화외교국은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처음부터 한일이 합의한 건 추도식에 일본 중앙정부 인사가 참석한다는 것"이라며 실행위원회 관련 현안은 챙기지 않았습니다. 실행위원회가 어떤 형태로 의사결정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모른다"고만 했습니다. "사도광산 추도식은 모든 노동자를 위한 추도식" "한국인들도 포함이 된 모든 노동자 추도식"이란 말도 반복했습니다.
사도광산 추도식이 외교적 성과라고 강조할 때는 언제고, '민간이 개최하는 행사에 모든 노동자를 위한 추도식이기 때문에 외교부는 일본 중앙정부 참석자의 급과 추도사 외에 챙길 수 있는 게 딱히 없다'고 말을 바꾼 것입니다.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공문화외교국은 외교부 내 일본담당 부서인 아시아태평양국으로부터 한일 과거사 문제를 연구하면서 한일협상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본 전문가들의 연락처를 받아놓고도 자문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민간단체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만 연락했습니다.
그 결과, '책임'의 뜻으로 일본 정부 또는 단체가 부담하도록 했던 유가족 여비 부담 관행이 깨졌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추도식 개최 자체를 안 하려는 일본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며 우리 정부나 단체가 여비를 내는 경우가 많아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비용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지에 대한 검토 자체가 없었습니다. 아예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사도광산 추도식에 한국인 유족을 초청하는 주체는 실행위원회인데도 우리 정부 예산으로 이들의 숙박비와 항공비를 지원하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한일 협상 경험이 전무한 공공문화외교국에 후속 협상을 맡긴 외교부의 정책 결정권자들에 있습니다.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후속 협의를 맡은 공공문화외교국에는 인사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런데, 한일 과거사 문제를 다뤄본 경험이 없는 인사가 총괄업무를 맡았습니다. 한국 업무를 맡아본 인사를 유네스코 관련 부서로 이동시킨 일본 외무성과는 대조적입니다.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실무를 맡게 됐다면, 상급자인 외교2차관이나 외교장관, 그리고 부처를 넘어 대통령실에서 사안을 챙겼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책결정자들은 △추도식 날짜 △일본 정부대표 직급 △추도사 표현 외에 별다른 피드백을 공공문화외교국에 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사안의 본질인 강제동원의 강제성과 불법성을 일본이 우회적으로나마 책임지도록 하는 데에 소홀한 것입니다. 대통령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당국자는 이번 사안에 대해 "대통령실에 보고를 해도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윗선에서 문제를 방치하고 있을 때, 일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국도 인정한 식민 지배 정당화 축제'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사도광산 사태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국민을 조롱한 가해자는 일본이 아닙니다. 우리 정부입니다.
피할 수 있는 순간이, 기회가 분명 있었습니다. △이시바 정권이 아시아·대양주 담당 정무관으로 누구를 임명하고 그 인사의 이력이 어떻게 되는지 △추도식을 준비하는 실행위원회의 구성원이 어떻게 되고 이들이 어떤 발언과 행사를 해왔는지 △추도식에서 어떤 발언만은 나오지 말야야 하는지 등을 고민했다면 추도식 전날 허둥지둥 불참을 통보하는 극약처방은 꺼내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정책 결정권자들의 인사 실패와 무관심, 당국자의 무능, 그리고 공관의 끝없는 양해로 우리는 일본을 상대로 굴욕을 맛보게 됐습니다. 이제 매년마다 한국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의 노역으로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추도식이 열릴지 모릅니다. 반성은 없고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잔치가 매년 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외교 성과'라고 강조했던 추도식은 우리 스스로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 최대 '오점'이 된 셈입니다.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직후 외교부 당국자는 "한일 합의에 따라 실시하는 것이니 어떤 의미인지는 명백하리라고 본다"고 강조했습니다. 조태열 외교장관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우리는 강제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협상 결과는 내가 책임질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이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참사를 어떻게 해결할 것입니까. 어떻게 책임질 것입니까.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