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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뷔페앳강남' 갈래?...국어학자의 일침 "'더(the)'와 '앳(at)' 쓰면 고급스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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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생각한 리사이클 시팅 쿠션과 함께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고 편안하게!"(스타벅스)
"종이나 비닐 대신 패브릭 랩으로 무엇이든 아름답게 포장하세요."(알라딘)
두 업체가 몇 년 전 기획 상품을 출시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상품 설명이다. 얼마 안 가 사람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게시물 속 '시팅 쿠션(sitting cushion)'과 '패브릭 랩(fabric wrap)'이 다름 아닌 각각 '방석'과 '보자기'였기 때문이다.
과도한 외래어 사용은 패션 업계에서 일상이다. 의류, 화장품 광고에선 '이번 시즌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출시된 글로시한 레드 립 아이템으로 홀리데이 무드를 연출해 보세요'와 같은 일명 '보그체(패션 잡지에서 볼 수 있는 문체라는 뜻)'가 흔하게 쓰인다.
황선엽(54)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첫 책 '단어가 품은 세계'에 따르면 위와 같은 사례는 "외래어에 대한 선호와 선망" "낯선 외래어가 더 고급스럽다는 막연한 인식"이 초래한 결과다.
황 교수의 부모님은 '예식장'에서 결혼했지만 본인은 '웨딩홀'에서 결혼했으며 얼마 전에 다녀온 결혼식장의 이름은 '더채플앳○○(The chapel at 지명)'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를 두고 "정관사 '더(the)'에 전치사 '앳(at)'까지 상호에 그대로 쓰는 지경이 되었다"고 꼬집는다.
최근 체인점일 경우 상호 뒤에 유독 '앳'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강남점'이라고 하는 대신 '앳 강남'이라 하는 식이다. '더'도 마찬가지다. '뷔페'라고 하면 될 것을 '더 뷔페'라고 이름 짓는다. 이런 경향이 모여 '더뷔페앳강남' '더웨딩앳청담' 같은 상호를 우후죽순 늘렸다.
황 교수는 이런 말을 쓰지 말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국어학자의 역할이란 "앞장서서 '이쪽으로 오시오' 하고 사람들을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뒤쫓아 가면서 확인"하는 것이라서다. 다만 그 방향이 어딘가 잘못됐다면 "'이건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는 정도라고 선을 긋는다. 국어사를 전공한 그는 서울대에서 '한국어의 역사', '한국어학의 이해', '한글맞춤법의 원리와 실제'를 강의하고 있다.
황 교수가 "언중이 항상 옳다"는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쓰고 있는 언어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수차례 일본어를 우리말로 순화하려 했다. 서울시는 1972년 요식업소의 메뉴를 우리말로 고치도록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이런 강한 압박에도 어떤 단어는 살아남았다. 대표적인 게 돈가스와 우동이다. 당시 서울시는 돈가스를 '포크스틱'으로, 우동은 '밀국수'로 바꾸려 했지만 실패했다. 1996년까지 당시 문화체육부는 돈가스를 '돼지고기너비튀김, 돼지고기너비튀김밥, 돼지고기튀김, 돼지고기튀김밥'이란 대체어를 제시하며 없애려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끝내 돈가스를 돈가스로 부르기를 선택했다.
"무분별한 외래어 남용도 문제이지만 외래어는 가능한 배격하고 고유어로 바꾸어야 하며 심지어 이미 들어와서 널리 쓰이는 단어까지도 모두 고유어로 순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대목에서 황 교수의 유연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단어엔 생명력이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단어는 태어나면 하나의 유기체처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황 교수가 "단어를 들여다보면 인류의 변화상, 민족의 역사, 세태의 변천을 볼 수 있다"고 하는 이유다. 사소해 보이는 단어라도 그 단어가 품은 세계를 공부하다 보면 그간 세상을 종종 오독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와 박목월 시인이 작사한 동요 '얼룩 송아지'에 각각 등장하는 '얼룩백이 황소'와 '얼룩 송아지'를 보자. 대다수가 '홀스타인 젖소'를 연상하겠지만 과거 한국 땅에 흔했던 '칡소'다. 순우리말로 오해하기 쉬운 '김치'가 실은 '침채(沈菜)'라는 한자어에서 왔으며, 옛 한자음인 '딤채'가 음운 변화를 통해 김치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한자어 유입 전인 삼국시대에도 김치가 밥상에 올랐는데, 이때는 김치를 '디히'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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