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기 SG배 한국일보 명인전] 수순의 중요성

흑 박정환 9단 vs 백 최정 9단
본선 8강전
[20]

2보

3도

4도

바둑에서 수순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특히 공격이나 타개 같은 수읽기가 집중적으로 필요한 장면에선 단 한 번의 오차가 돌의 생사와 직결된다. 수순이 중요한 이유는 상대방의 대응에 따라 시시각각 수법이 변화하기 때문. 상대 역시 이것을 비켜가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상대방의 대응에 대해 미리 읽어 놓았다는 듯 다른 수순을 밟는 것을 보면 경이로울 지경이지만 사실 프로기사라고 모든 변화를 읽고 두는 건 아니다. 긴 세월 동안 다져온 ‘직관’이라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제일 흡사한 정보 몇 가지와 연결하면서 대응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기사들은 이것을 보통 ‘결’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특정 선수를 평가할 때 “결이 좋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그 선수의 데이터베이스 질이 훌륭하다는 뜻이다.

박정환 9단의 연이은 응수타진에 최정 9단이 시험대에 올랐다. 백1은 흑6 방향으로 반발하는 게 일반적. 흑2에 찌를 때 모두가 흑의 다음 착점은 흑6으로 틀어막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환 9단의 선택은 흑4. 흑8의 끊음을 만들어내는 좋은 수순이다. 결과적으로 백5는 3도 백1로 나오는 것이 최선. 백13까지 흑이 삭감에는 성공했지만 크게 엷어져 서로 둘 만한 변화다. 실전 흑12에 언뜻 당연해 보이는 백13이 커다란 실착. 4도 백1, 3을 교환한 후 빠르게 백5에 지켰어야 했다. 최정 9단이 이 선택을 간과하자 흑엔 흑16, 18로 좌하귀를 끌고 나오는 묘수가 생겼다. 결국 실전 흑24로 좌변을 넘어갈 때 백25의 보강이 불가피해선 완연한 흑의 우세. 백27, 29의 팻감으론 실점을 만회하기 부족하다.

정두호 프로 4단(명지대 바둑학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