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 주요 인사들의 가면을 쓴 국제 환경 시민운동 단체 '아바즈' 활동가들이 2022년 2월 "가스와 원자력은 '녹색'이 아니다"고 항의하며 EU의 녹색성장 전략인 '그린딜'을 매장하는 장례식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브뤼셀=AP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은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탈탄소ᆞ에너지 전환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석연료 중심 에너지정책이 본격화할 경우 정책 수정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높은 에너지 비용에 따른 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회원국들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에너지 구조, 정치적 입장 등에 적잖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EU의 탈탄소 정책은 명분이 있고 실제 성과도 적지 않다. 1990년 대비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4% 감축했고, 현재는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를 40%에서 55%로 높인 상태다. 2023년 기준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전체 전력 생산의 38%까지 끌어올렸다. 700여만 명이 신재생에너지 분야 및 에너지 효율 증진,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 환경보호 등의 녹색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유럽 그린딜’을 통해 글로벌 기후 리더십을 발휘하고,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 도입으로 역외 국가들의 기후정책 강화도 유도해왔다.

하지만 긍정적 평가만 있는 건 아니다.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에 따르면 2008년부터 15년간 미국 경제는 82% 성장한 데 비해 유럽 경제는 6% 증가에 그쳤다. 그 결과 미국에서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미시시피와 아이다호 2개 주(州)를 제외한 48개 주가 EU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섰다. 또 2010년대 초반까지 별 차이가 없었던 미국과의 GDP 격차는 지난해 67% 수준에 그칠 정도로 커졌다. 십수 년래 애플ᆞ메타ᆞ아마존ᆞ엔비디아ᆞ테슬라(미국)와 알리바바ᆞ샤오미ᆞ비야디(중국) 같은 혁신기업도 없었다.
미국과의 격차에 대해선 유럽 재정위기 등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이 ‘셰일혁명’을 거치며 제조업 생산원가를 낮춘 게 상당한 요인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에너지 전환 과정에 있는 EU의 산업용 전기ᆞ가스요금은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훨씬 높다.

트럼프가 개별 국가들을 상대로 관세폭탄 위협 등의 방식으로 사실상 석유ᆞ천연가스의 수입을 요구할 경우 EU 차원의 단일대오 형성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당장 폴란드ᆞ헝가리 등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 그동안에도 에너지 전환 속도 조절을 요구해왔다. 독일ᆞ프랑스 등 주요 산업국에선 CBAM에 따른 무역 불이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정치적 판단에 따라 러시아산 천연가스 대신 미국산을 수입할 경우 탈탄소 기조가 후순위로 밀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개별 국가에서 민족주의 성향 정당의 영향력이 커질 경우에도 탈탄소 정책이 흔들릴 수 있다. 기왕에도 유럽의회를 구성하는 정당들의 스펙트럼이 넓고 주요 회원국들이 연정을 구성하고 있어 정치적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여기에 원자력을 탄소중립 정책에 포함시킬지를 둘러싼 독일과 프랑스의 해묵은 논쟁도 균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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