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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불똥 튈라 선 긋는 장군들의 몰염치… 軍, 신뢰 회복하려면 [문지방]

입력
2025.01.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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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제 육군대장 계급과 제 지상작전사령관 직책을 걸고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12·3 비상계엄 관련 내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지작사는 병력 출동이나 어떤 임무를 받거나 관여한 것은 분명히 없습니다."

14일 국회 내란 국조특위에서 강호필 지작사령관

"북풍이라든가 외환유치라는 얘기를 하는데 군은 그렇게 준비하거나 계획한 정황이 절대 없다고, 제 직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14일 국회 내란 국조특위에서 김명수 합동참모의장

강호필(왼쪽) 육군 지상작전사령관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비상계엄 사태 기관 보고 및 현안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명수 합참의장. 뉴스1

강호필(왼쪽) 육군 지상작전사령관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비상계엄 사태 기관 보고 및 현안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명수 합참의장. 뉴스1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내란 국조특위)'에서 육군대장 4명 가운데 한 명인 강호필 지작사령관과 군내 서열 1위 김명수 합동참모의장은 '자신의 직책을 걸고' 12·3 불법 계엄과의 연관성을 적극 부인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의 성토가 쏟아졌습니다. 정작 불법계엄이 결정되고 수행될 땐 '직을 걸고' 반대하지 못하고서 왜 책임을 회피할 시점에 돼서야 '직을 걸고' 결백을 주장하느냐는 겁니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강 사령관, 김 의장,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 차관 등에게 "다들 핵심 목격자이자 관련자들"이라며 국민께 사죄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는 못할망정, 뭐가 떳떳하다고 핏대를 세워가며 해명하느냐고 질책했습니다.

자기변명도 모자라 계엄 당일 병력을 출동시킨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은 재판에서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따라 군사적 조치를 했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재판이 끝난 뒤엔 "아버지부터 아들까지 3대가 충진한 군인 집안인데, 내란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이런 군 고위 장성들의 태도는, 현시점에서 군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국민 신뢰 회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국민들은 물론 군 내부에서도 실망감이 적지 않습니다. 한 현역 대령은 "군의 핵심인 장성들이 자기만 위기에서 모면하기 위해 변명하고, 정당화하고, 윗선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면서 난생처음 군복을 입고 다니는 게 부끄럽게 느껴졌다"며 "마음 같아선 3성 이상 장군 전원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가담해 구속 기소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23일 서울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해 있다. 뉴시스

12·3 비상계엄 사태에 가담해 구속 기소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23일 서울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해 있다. 뉴시스

고위급 장성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국방부가 올해 목표로 내세운 '신뢰받는 군대 구현'도 공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지난 16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주제로 열린 외교안보부처의 '2025년 주요 현안 해법 회의'에서 국방부는 이렇다 할 조직 쇄신 방안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과연 쇄신 의지가 있는지마저 의아한 상황입니다. 군에서 내놓은 메시지 중엔 김 직무대행이 24일 하달한 지휘서신 1호에서 '법과 규정에 기반한 군대 문화 정착'을 위해 "고위급 리더들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게 전부입니다.

과거 군은 군기문란에 따른 병영 사고와 경계 실패 등을 겪을 때마다 군 조직문화 개선을 강조하며 위기를 수습해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대대적인 불법계엄 가담이라는 참담한 결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근본적인 군 문화 쇄신이 가능하냐는 회의론을 제기하기보다, 당장 군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전문가와 전·현직 고위급 장교들에게 물었습니다. 이들이 첫손에 꼽는 건 '문민 통제' 강화입니다. 민간이 군을 통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미 우리 군의 원칙으로 명시돼 있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군 출신 국방부 장관은 합참의장이건 참모총장이건 까마득한 후배로 여기며 자신이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는 강압적 문화가 여전합니다.

김선호 국방부장관 직무대행이 23일 경기 포천시 승진훈련장에서 열린 혹한기 공지합동 통합화력운용 실사격 훈련 현장을 찾아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김선호 국방부장관 직무대행이 23일 경기 포천시 승진훈련장에서 열린 혹한기 공지합동 통합화력운용 실사격 훈련 현장을 찾아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국방부 장관은 국무위원으로서 정부와 국회로부터 예산을 확보해 어떻게 군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국방부 장관이든 합참의장이든 전방 부대에 가서 하는 얘기가 똑같을 정도로 장관이 군 전반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고 말했습니다.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 같은 구호는 장관이 꺼낼 화두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박성진 안보22 대표는 저서 '용산의 장군들'에서 "천문학적인 국방 예산을 쓰는 군대인 만큼 경영인 출신 장관이 나올 때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비역·퇴역 단체나 외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군 조직 및 국방 사업의 효율화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웁니다. 전투 임무태세는 전쟁 전문가인 합참의장과 각 군 지휘관에게 맡기면 된다는 것이죠.

예비역 육군 장성 A씨는 각 군의 사관학교장 등 교육기관의 장 역시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사태가 고위 간부들의 윤리 의식 및 책임감 부재, 짧은 법 지식에서 비롯된 만큼 교육기관의 쇄신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A씨는 "간부 교육을 책임져야 할 학교장이 야전부대 보직 하나 정도로 인식하고 차후 보직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특히 육사 교장은 1년 만에 교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전임 교장은 6개월 만에 교체됐다"면서 "교육의 연속성과 질이 높아질 수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습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던 중 웃음 짓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던 중 웃음 짓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인사시스템도 개선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대선 캠프가 꾸려지면 학자 출신의 전문가들이 맡아야 할 자리에 장성 출신들이 국방·안보 전문가로 합류하고, 이들이 다시 국방부 장관·국가안보실장 등 요직을 맡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정치군인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입니다.

엄 사무총장은 "장교들 사이에선 전역 후 취업 자리가 마땅치 않아 진급이 최우선 가치가 됐고, 그러다 보니 전역을 한 이후엔 취업 제한 3년 동안 정치권을 기웃거리게 되는 것"이라며 "자연스럽게 군인으로서의 능력보다 연줄과 인맥에 기대는 문화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장교들이 제대 후 제2의 인생이 더 기대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죠. 또 대통령실이 찍어 내리는 현 장성 인사 구조를 타파해, 각 군 참모총장에게 장성 인사 권한을 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고위 장교에 대한 헌법과 윤리 교육 강화도 거론됐습니다. 다만 교육은 일방적인 강의 형식의 주입식이 아니라 고민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현직 대령 B씨는 "요즘 군대는 싸워서 이기는 전략 전술 못지않게 군대 윤리와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부분도 강조돼야 한다"며 "미군이 베트남전, 이라크전을 겪으며 강조한 윤리 교육을 이제는 우리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합니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군이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진정 '국민에게 신뢰받고 존경받는 군'으로 거듭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봅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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