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9세 아동도 결혼 가능… "여성·아동 권리 종말"

이슬람 율법에 따라 결혼 연령 정해
시아파 9세·수니파 15세부터 가능
"조혼 막아야 할 정부가 부추긴다"

지난해 8월 이라크 의회에 최저 혼인 연령을 낮추는 법이 발의되자 이라크 여성들이 바그다드의 한 광장에 모여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바그다드=AP 연합뉴스

결혼 최저 연령을 이슬람 율법에 따라 정할 수 있게 한 이라크의 법이 인권단체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이라크인의 대다수가 믿는 시아파의 일부 종파는 율법 해석 상 9세에도 결혼이 가능해 "정부가 여자 아동의 조혼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국 가디언은 22일(현지시간) "전날 이라크 의회가 결혼 최저연령 등 가족문제를 이슬람 율법에 따라 처리할 수 있게 하는 법률을 통과시켜 여성·인권단체에서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앞으로 이라크 여성의 최저 혼인 연령은 각자 믿는 이슬람 종파의 율법에 따라 달라진다. 이슬람 수니파의 혼인 최저연령은 15세고, 시아파의 한 종파인 자파리 학파의 경우 9세 어린이도 혼인이 가능하다. 1959년 혼인 최저 연령을 18세로 규정한 기존 법은 사실상 무력화되는 셈이다. 보수 시아파 의원들은 "법을 이슬람 원칙에 맞추고 이라크 문화에 대한 서방의 영향을 줄여야 한다"며 법 개정을 추진했다.

인권운동가들은 "여성과 아동 권리의 종말이 왔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라크여성연맹회원 인티사르 알 마얄리는 가디언에 "어린 나이에 여자아이들을 결혼시키는 것은 아동으로서 삶을 누릴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권운동가 라야 페이크는 "법이 통과된 후 어린 딸이 조혼을 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여성들의 울음이 가득하다"고 날을 세웠다.

조혼은 이라크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2023년 유엔 조사에 따르면 이라크 여성의 28%가 18세 이전에 결혼한 것으로 파악됐다. 가디언은 "이라크 여자아이들은 이미 조혼으로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었다"며 "미성년자 결혼을 막아햐 할 의회가 오히려 종교를 이유로 소녀들의 결혼 가능성을 높였다"고 비판했다.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