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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까지 퍼진 '이재명 포비아' 달래려 '우클릭' 전환... 與 "정치 분장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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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최우선주의"로 요약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3일 신년 기자회견은 파격 선언에 가깝다. 그가 강조한 기업 주도의 경제 성장은 보수 진영의 전유물일 뿐 아니라 그의 정치적 자산인 기본 사회 시리즈와도 180도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성장 없이는 분배도 없다'며 시그니처 정책이었던 기본소득 공약도 저만치 밀어놨다.
먹고사는 문제를 절체절명의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이를 완수하기 위해선 이념과 진영에도 구애받지 않고 정책을 펼치겠다고도 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우클릭 전환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3년 내내 정치투쟁·이념투쟁에 골몰하던 기조와 정반대의 말이라 다소 의아스럽다"며 "정치적 변신이자 분장술이 아니기를 바란다"(신동욱 수석대변인)고 평가절하했다.
이 대표는 탄핵 정국을 주도하고도 △민주당 지지율이 최근 국민의힘에 역전되고 △강공일변도의 입법 독주 체제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데다 △이 대표를 옭아매는 족쇄인 사법리스크까지 짙어지자 중도층 표심을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보수를 넘어 중도층까지 깔려 있는 이른바 '이재명 포비아'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유연하고 안정적인 실용주의자 지도자의 면모를 부각하려는 것이다. 당장 이 대표의 기본소득 공약 후퇴와 맞물려 민주당은 '전 국민 25만 원 지원금' 지급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 성남시장 시절 '무상복지 전도사'로 불렸던 이 대표를 관통하는 단어는 '보편적 복지'였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도 출생기본소득∙기본주택∙무상교육 등을 골자로 하는 '기본 시리즈'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의지가 강했다. '퍼주기'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본 시리즈를 밀어붙였던 이 대표였지만, 이날은 "나누는 것보다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며 기본사회 공약마저 내던졌다.
이 같은 변신에는 급락한 지지율에 대한 위기감이 우선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달 초만 해도 각종 신년 여론조사에서 37~38%의 지지율로 독주체제를 굳건히 했던 이 대표는 불과 2주 만에 지지율이 흔들리며 불안한 조짐을 보였다. 이날 공개된 전국지표조사(NBS)의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이 대표는 28%로 1위를 달렸지만, 하락세는 면치 못했다.
반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14%), 홍준표 대구시장(7%), 오세훈 서울시장(6%),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6%) 등 이 대표를 제외한 여권 대선 주자 4명의 지지율을 더하면 33%로 이 대표를 웃돌았다. 불법 계엄 사태에서도 정권교체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지 않은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이 대표 입장에선 보수와 중도층의 민심을 끌어 오기 위한 확실한 반전 카드가 필요했고, 정통 보수주의자들의 어젠다인 △친기업 △민간주도 성장 어필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표가 탈이념, 탈진영을 표방한 것도 극심한 정치 진영 대결을 멈추고 유연하고 안정적인 수권 리더의 면모를 강조하려는 행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민주당이 강공모드로 일관한 데 대한 중도층의 반감이 상당하다는 데 이 대표도 공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선 지난달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으로 직무를 정지시킨 게 중도층이 민주당을 불안하게 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취임 이틀 만에 직무를 정지시켰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이날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면서 탄핵 역풍 부메랑이 돌아오게 된 것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이 대표는 무리한 정쟁을 중단하겠다며, 통합과 포용을 입에 올렸다. 집권 이후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정치에서 선출된 책임자의 가장 큰 역할을 통합과 포용"이라며 "집권하고 나서 정치 보복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 대표를 옭아매는 족쇄인 사법리스크를 정면 돌파하려는 목적도 깔려 있다. 이날 회견이 끝난 뒤 질의응답에서 사법리스크 관련 질문을 받았지만 이 대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대신 성장 담론 등 비전을 강조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사법리스크 이슈를 미래 비전과 정책 담론으로 전환시키려는 의도다. 이날은 서울고법에서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재판이 처음 열리는 날이었다. 당초 참모진들은 관련 질문이 쏟아질 것을 우려해 기자회견을 만류했으나 이 대표가 정면 돌파에 나서겠다는 뜻을 피력하며 성사된 것으로 전해졌다.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NBS나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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