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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럭 소리치고 귀 닫으면 '스타 의원'?… SNS 노리는 국회 '불통 질의'

입력
2025.01.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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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에서 증가한 질의 유형은
①갑분 격노에②증인 입틀막 질의
호통, 샤우팅만 주목하는 SNS가 문제?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한덕수 국무총리(앞줄 제일 왼쪽)를 비롯한 증인들이 지난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1차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증인선서에 동의하지 않아 자리에 앉아 있다. 뉴스1

한덕수 국무총리(앞줄 제일 왼쪽)를 비롯한 증인들이 지난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1차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증인선서에 동의하지 않아 자리에 앉아 있다. 뉴스1

질문을 해놓고 답변을 채 듣지도 않고 버럭 화부터 내는 국회의원. 답변을 미처 마무리도 못한 채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닫아버리는 증인. 22대 국회 들어 부쩍 자주 연출되는 장면입니다. 회의 중계를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들조차 "이럴 거면 왜 증인을 불러냈느냐"는 의문을 표하는 댓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올 정도입니다.

물론 국회 질의는 정해진 시간 안에 질문과 답변이 모두 이뤄져야 하는 만큼 증인에게 충분한 답변 시간을 보장하기 어려운 구조이긴 합니다. 불성실한 태도의 증인들이 이 점을 악용해 시간만 끌면서 답을 피하는 경우도 있어 애초에 경청이 불가능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유독 22대 국회 들어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런 상황들이 잦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왜 다수의 국회 관계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원인으로 꼽고 있을까요.

난데없이 호통 치고, 증인 불러놓고 입틀막?

우선 22대 국회에서 가장 잦아진 질의 유형은 ①난데없이 호통을 치는 '갑분(갑자기 분위기) 격노 질의'입니다. 지난해 11월 20일 열렸던 박장범 KBS 사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뜬금없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소환했습니다.

박 의원은 박 후보자에게 "대한민국 역사에 어떤 자치단체장이 법인카드로 1억 넘게 쓴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어요? 그런데 KBS가 한 꼭지만 보도합니까"라고 버럭 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에 박 후보자가 대답하려 하자 말을 끊고 "이렇게 파렴치한 잡범이 야당 대표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정치적인 희생이라고요?"라며 고성을 질렀습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이 즉각 항의하면서 여야 의원들은 한참 동안 설전을 주고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정작 인사 검증 대상이 돼야 할 박 후보자의 답변은 총 질의 시간 7분 동안 단 네 문장에 그쳐야 했습니다.

②증인을 불러놓고 한마디도 못하게 하는 '입틀막(입을 틀어막는) 질의' 유형 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2일 열렸던 박상용 검사 탄핵소추 조사 청문회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수감된 상태에서 처음으로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이 전 부지사는 청문회 질의가 시작되고 나서도 30분 이상 입을 떼지조차 못했습니다. 질의에 나선 의원들이 질의 시간 7분 동안 증인에게 질문을 던지기는커녕 쉴 새 없이 본인 말만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보다 못한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나섰습니다. 정 위원장은 같은 당 소속인 전현희 민주당 의원의 질의가 끝나자 "위원님들, 증인을 신문하려고 지금 증인을 출석시켰습니다"라면서 "증인에 대해서 가급적이면 질문을 하는 것이 오늘 청문회의 주된 취지"라고 지적했습니다. 이후 질의에 나선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도 여전히 증인에게 질문을 하지 않자, 정 위원장은 "지금 여야 위원님들이 질문을 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전 부지사를 향해 "국민들이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위원장 직권으로 여쭤보겠다"면서 직접 질문을 던져야 했습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지난해 10월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검사 박상용 탄핵소추사건 조사 청문회에서 정청래 법사위원장에게 증인선서문을 제출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지난해 10월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검사 박상용 탄핵소추사건 조사 청문회에서 정청래 법사위원장에게 증인선서문을 제출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호통, 샤우팅만 주목하는 '쇼트폼'이 문제?

다수의 국회 관계자들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SNS'를 꼽습니다. 한 3선 의원은 "일부 의원들의 경우 의정 홍보 활동의 주요 포인트로 '유튜브'를 삼고 있다"면서 "그러다보니 질문이 아니라 연설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의원들이 SNS에 편집돼서 확산되는 영상들을 의식하다보면, 질의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쌍방향의 과정이 아닌 일방적인 연설로 흐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질의의 목적이 증인들의 '답변'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원들의 '질문' 그 자체로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옆자리에 앉은 의원이 너무 소리만 질러대서 그러지 말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며 "그러자 그 의원이 내게 오히려 '본인이 호통치는 영상 조회 수가 얼만지 아느냐'고 말하더라"며 탄식했습니다.

실제로 앞서 갑분 격노 질의의 사례로 언급했던 박정훈 의원의 '잡범 질의'는 SNS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초선 의원으로서 지지자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을 기회를 얻었죠. 이에 박 의원은 최근에도 '잡범'을 또다시 들고 나왔습니다.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파렴치한 잡범 이재명 역시 국회 차원의 청문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입니다.

특히 최근 15초~3분 남짓의 짧은 길이의 영상을 말하는 '쇼트폼(Short-form)' 콘텐츠가 성행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졌습니다. SNS 홍보 활동에 열중하는 한 의원실에서는 "의원의 질의가 끝나면 우스갯소리로 '방금 질의 정말 '쇼츠각이었다'고 하거나, '쇼츠용 질의'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실제로 조회 수가 높은 국회 질의 영상들의 경우, 제목 대부분이 '호통' '분노' '샤우팅' '불호령' '급발진' 등이었습니다. 짧은 영상에 압축적으로 각인이 돼야 하니, 분노하고 소리를 치는 질의를 위주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질적 저하로도 이어졌습니다. 국회 관계자는 "과거에는 의원들이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충분히 조사한 후에 정부를 몰아세웠다"며 "정부가 국회에 자료를 부실하게 제출하는 문제도 있지만, 지금은 화만 내도 스타 의원이 되니 자료를 얻으려 노력할 필요도 적어졌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지지층을 제외한 여론은 냉담하기만 합니다. 10년 이상 국회에서 근무한 보좌관도 "의원에게 제발 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발언하라고 조언해도 고쳐지지 않는다"며 "국민들은 태도도 중요하게 보는데, 질문을 해놓고 답변을 듣지도 않는 모습이 보기 좋겠는가"라고 우려했습니다.

다시 '스타 의원'이 되는 공식을 점검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과거 속이 뻥 뚫리는 질의로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던 '청문회 스타' 의원들에게선 뜬금없는 분노도, 일방적인 연설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철저한 사전 준비를 바탕으로 증인들의 답을 충분히 이끌어낸 다음, 이를 되치기하는 능수능란한 문답 과정이 감탄을 자아내는 대목이었습니다. 22대 국회에서도 일방적인 호통과 샤우팅 없이도 별의 순간을 누릴 '진정한 스타 의원'이 등장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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