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한국에 남고 싶은데 받아주질 않아요"... 갈 곳 없는 외국인 유학생들

입력
2025.01.28 11:00

국내서 석·박사 학위 받아도
전공 무관한 통역 일만 맡겨
'유치' 넘어 '정착' 지원 절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채용연계형 인턴으로 입사했는데, 얼마 안 가 베트남 소통 업무를 하는 글로벌 사업 부서로 발령이 났어요. 회사가 전공을 살릴 기회는 주지 않고 통역 역할만 기대하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습니다.”

최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베트남 국적 유학생 A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인턴 기간의 대부분을 입사 조건과 전혀 다른 일을 하며 보냈다는 것이다. A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외국인 유학생이 적지 않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서 공부했지만, 원하는 일을 하며 정착할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 기업들은 외국인을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다리 역할 정도로만 여기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외국인 위한 기회 너무 적어요"

"통역과 회의록 정리만 하고 있어요. 상사에게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맡겨달라 요청했는데,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지난해 말 온라인 인터뷰에 응한 미얀마 국적의 B씨는 이렇게 호소했다. 그는 중국과학원에서 생태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의 산림 관련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취업했다. 숲을 보존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곳이라, 모국보다 과학기술 수준이 높은 한국에서 전공 관련 연구를 이어가며 현장 경험도 쌓고 차근차근 정착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정작 연구소는 B씨에게 통역이 할 만한 업무만 시켰다.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나가사키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인 C씨가 20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줌 캡처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나가사키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인 C씨가 20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줌 캡처

중국 국적의 C씨는 석사학위를 한국에서 받고도 한국을 떠나야 했다. 성균관대 건설환경시스템공학부에서 4.5점 만점에 4.21점의 높은 학점을 받고 한국어 토픽 6급 자격도 땄지만, 박사과정 대학원에서도 취업 시장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생계비를 벌기 위해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텼다"던 C씨는 얼마 전 결국 일본으로 건너갔다. 지난 20일 화상으로 만난 그는 "외국인 유학생이 미래를 꿈꾸기엔 한국보다 일본이 낫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부는 우수한 해외 인재를 국내에 유치하겠다고 했지만, 그들이 유학생 신분을 넘어 국내에 정착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큰 게 현실이다. 석사와 박사학위 모두 한국에서 받고 한양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중국인 D씨 역시 "한국 학계에서 일하기도, 기업에 취직하기도 쉽지 않다. 외국인을 위한 기회의 창이 너무 좁다"며 한숨을 쉬었다.

"장기 고용 방안 고민해야 할 때"

지난해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중국인 D씨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현기 인턴기자

지난해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중국인 D씨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현기 인턴기자

과학기술인력개발원에 따르면 한국에서 이공계 박사학위를 받은 외국인 가운데 취업을 해서 국내에 남아 있는 사람은 약 30%(579명, 2022년 기준)에 그친다. 첨단기술 인력 부족이 사회문제가 된 만큼 해외 인재 정착을 제도적으로 도울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반도체, AI 등 첨단기술 발전을 위해 외국인 연구인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정부는 유치 단계를 넘어 취업과 정착을 위한 지원책을 보여야 할 시기”(최수진 국민의힘 의원)라는 지적이 나왔다.

해외 인재를 바라보는 기업들 시각에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외국인 취업 컨설팅 플랫폼 '왈라왈라'의 장혜진 대표는 "외국인 유학생이 재학 중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인턴십 과정부터 많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최서리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산업계에 외국인 고용 경험이 부족하다”라며 "외국 인재들을 한시적으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기업들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현기 인턴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