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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선거 개입" 계엄 사태 일으킨 가짜뉴스, 도대체 왜 믿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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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시스템의 비밀번호 ‘12345’는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연결번호입니다. 중국 통해서 이걸 풀고 들어오라고 만든 것처럼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16일 열린 탄핵심판에서 변론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 측 배진한 변호사가 한 말이다. 윤 대통령 측은 ‘부정선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장악한 비상계엄은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데, 그 근거 중 하나로 중앙선관위가 서버 관리를 부실하게 했다는 주장을 하면서 중국을 끌어 온 것이다.
이날 윤 대통령 측은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투표지를 접지 않고 펴서 넣는다’며 가짜 투표지 삽입 의혹도 제기했다. 극우 성향 유튜브와 매체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는 ‘중국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음모론을 탄핵심판정에까지 가져 온 것이다.
선관위가 선거 관련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부인했으나 음모론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고 있다. 과거 선거에 패배한 진영에서 흔히 제기했던 개표 조작 의혹이 어떻게 선거 시스템 전반에 중국의 개입을 의심하는 황당무계한 음모론으로 발전하게 됐을까. 현역 국회의원까지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에 중국인이 대거 참석한다”며 선동을 하게 된 이유와 배경을 분석해 봤다.
윤 대통령은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중국 정부가 한국에서 정치 공작을 벌인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1일 관저 앞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와 15일 체포된 후 마지막으로 공개된 손편지에서는 ‘주권 침탈 세력’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나라의 안팎에 주권 침탈 세력과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의 적대적 영향력 공작을 늘 경계해야 하는 것’ ‘국내 정치세력 가운데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과 손을 잡으면 이들의 영향력 공작의 도움을 받아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데 유리하다’ 등이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주권 침탈 세력’은 중국을 의미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북한과 대한민국은 특수관계이므로 북한의 대남 공작은 ‘반국가단체의 반국가행위’이지 ‘주권 침탈’이라 하지 않는다”라며 “주권 침탈 세력은 극우 시위대의 음모론을 고려한 표현으로, 이러한 점으로 본다면 ‘주권 침탈 세력’은 중국”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 편지는 중국공산당의 간첩들이 입법과 사법을 장악하고 있고 부정선거도 이들의 소행이라는 식의 음모론을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극우 매체들도 음모론에 합세해 윤 대통령의 논리를 지원사격했다. 최근 극우 성향 매체인 스카이데일리는 ‘선거연수원 체포 중국인 99명 주일 미군기지로 압송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비상계엄 당시 계엄군이 미군과 함께 선거연수원을 급습해 중국 국적자 99명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내용으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 기사가 급속히 확산하자 선관위는 바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계엄 당시 선거연수원에는 선관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었다. 계엄군은 선거연수원 청사 내로 진입하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선관위가 허위 사실에 기반한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 등 법적 대응을 검토중이라 밝혔는데도 16일 열린 탄핵심판에서 윤 대통령 측은 이 기사를 인용하며 음모론의 근거로 제시했다.
시사인은 17일 이 가짜뉴스의 재료 중 하나가 시사인이 지난해 24일 단독 보도한 ’12·3 선관위 연수원에서 실무자 민간인 90여 명 감금 정황’이라며 이 기사가 ‘중국인’ ‘간첩’ ‘미군’과 같은 키워드와 자의적으로 조합되면서 가짜뉴스로 양산됐다고 지적했다. 원래 기사는 12월 3일 선관위 연수원에 계엄군과 경찰이 출동해 당시 숙박 교육 연수 일정을 진행 중이었던 선관위 실무자와 외부 강사 등 내외부 출입을 통제했다는 내용으로, 중국인 등의 단어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극단적인 음모론이 널리 퍼지는 것일까.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음모론이나 선동적 주장은 외부나 공동체 내부의 적을 설정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이 거기서 비롯됐다고 지목한다”며 “내부에서는 ‘빨갱이’나 ‘종북세력’, 외부에는 주로 ‘공산주의 세력’이라고 부르는 중국을 적으로 설정해 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재검표’ 등을 주장하는 것은 과거부터 선거에서 패배한 진영에서 흔히 나오던 주장이다. 이 주장이 음모론 차원으로 부상한 시점은 방송인 김어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승리한 18대 대선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때다. 김씨는 투표지 분류기가 ‘미분류’로 판정해 수개표한 박근혜 후보의 표 비율이 문재인 후보 표 비율보다 1.5배 높다는 의미인 이른바 ‘K값 1.5’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K값’이 ‘1’이 나와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으니 개표 조작이라는 것이다.
이 내용은 2017년 영화 ‘더 플랜’으로 제작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뉴스타파는 당시 전문가들과 분석한 결과 19대 대선에서도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K값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비교할 때 18대 대선과 비슷한 수치인 1.6으로 나왔다며, 김씨 주장이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박 사회비평가는 “K값 의혹이 거짓으로 밝혀진 후에도 김어준씨 측은 사과한 적이 없다”며 “현재 극우 진영의 음모론이 반드시 김씨의 의혹 제기 때문이라고 얘기하긴 어렵지만, 이 의혹은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양쪽에서 음모론의 핑곗거리가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며 심화한 중국 혐오가 가세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를 분석해 ‘보통 일베들의 시대’를 쓴 김학준 작가는 “2019년 말에서 2020년 초까지 온라인에서 중국에 대한 혐오 표현은 지역 혐오보다 훨씬 더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국에 대한 우파 진영의 경계심도 그 즈음을 전후해 굉장히 강해졌다”며 “2020년 문재인 정권의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대한 반감과 중국 혐오를 부추기는 선전, 선동이 먹히면서 중국 위험론이 극대화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 작가는 ‘필터 버블(알고리즘의 필터링에 의해 늘 접하던 정보의 벽에 갇히는 현상)’을 극대화시키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온라인 커뮤니티보다 더 위험하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게시글이 ‘베스트 게시판’에 올라가면, 나와 조금 다른 의견이라도 어쨌든 클릭해서 보게 된다”며 “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은 자신이 굳이 클릭하지 않아도 지금 보는 것과 유사한 텍스트와 영상이 자동으로 나오게 해 ‘이것이 세상이구나’라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필터 버블에 갇히게 된다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전 국회미래연구원 초빙 연구위원)는 “여야가 그간 자신의 지지세력만 바라보고 시민을 분열시키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음모론도 잘 먹히게 된 측면이 있다”며 “정치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음모론은 인간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 정도로 관리할 수 있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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