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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을 찾은 군인이 말했다 "더는 군복을 못 입겠어요"

입력
2025.01.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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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생활전문상담관이 지켜본
12·3 계엄 이후 군 심리 상태
"젊은 초급 간부 심리 소진 커"
안보와 조직 사기 저하 우려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국회 본청 앞에서 진입을 시도하는 군인들과 시민들이 충돌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국회 본청 앞에서 진입을 시도하는 군인들과 시민들이 충돌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전투복은 제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 이후에는 군복 입고 출퇴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웠고 창피한 마음도 들었어요."

한 간부급 군인이 군 상담실을 찾아 무너진 일상과 감정을 털어놨다. 그는 뉴스에 군복 입은 장성들이 나오는 게 창피하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일부 군 최고위층 등이 저지른 12·3 불법 비상계엄은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키던 절대 다수 군인들의 마음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김태민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도덕적 손상과 트라우마 대책 긴급 토론회'(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 주최)에서 이 같은 군 내부의 상태를 전하며 "군인들은 막연한 긴장과 불안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언론에 보도되는 계엄군의 모습과 뉴스에 달린 댓글, 여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덧붙였다.

계엄 트라우마, 몸까지 아프다

더 큰 문제는 군인들이 불안감을 넘어 '도덕적 손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명령 탓에 해야 할 때 겪는 심리적 고통을 뜻한다. 북한을 상대로 작전하는 줄 알고 한밤중 헬기에 올라탔다가 국회에 내려진 군인들이 겪은 정신적 혼란이 대표적이다.

신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젊은 초급간부일수록 업무의 의미를 따지고, 내가 하는 일이 나의 개인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을 많이 한다"면서 "이번 계엄이 젊은 간부들의 소진을 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트라우마가 심해 몸이 아픈 군인들도 있다. 김 상담관은 "담담한 듯 표현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불면이나 두통, 계속되는 긴장감과 피로감과 같은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상당수"라고 했다. 이를 초기에 관리하지 못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이어질 수 있다.

'계엄 트라우마'가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진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 회장은 "장병들의 트라우마는 국가 안보와 조직 내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민영 센터장은 "많은 군인들이 자긍심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면서 "효능감이나 조직에 대한 회의감, 조직 내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진희 센터장은 "트라우마는 초기 관리가 중요하다"며 군인들이 정신건강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군은 계엄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 재난 현장에 동원되는데,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주로 국군병원이나 군 정신건강센터에 집중돼 일반 장병들이 접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우호석 국방부 보건정책과장은 "다음 달 첫째 주까지는 계엄에 출동했던 부대 전체에 대한 교육을 마칠 것"이라면서 "향후 군 심리 지원을 위한 민관군 협의체를 구성해 대응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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