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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명령' 설 자리 없게 된 공직사회

입력
2025.01.17 00:10
27면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계엄·탄핵 사태가 더 큰 파국으로 번지는 것을 막은 데는 부당한 명령과 지시를 거부한 공무원들의 역할이 컸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수색영장 집행을 막지 않은 대통령경호처 직원들과 비상계엄 선포 당일 의도적으로 태업한 군과 경찰이다. 이들은 윤 대통령과 상급자들의 압박에도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헌법 7조)는 소명에 따라 행동했다.

윤 대통령과 경호처 지휘부는 무력을 써서라도 영장 집행을 저지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체포 과정에서 경호처와 경찰 등 국가기관끼리 충돌해 유혈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2차 영장 집행일인 15일 중간간부급 이하 경호처 직원 대다수는 대통령 관저로 진입하는 인력을 막지 않았다. 차벽으로 쓴 버스에는 옮길 수 있게 차 키를 꽂아두는가 하면, 일부 직원은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경호처가 “대통령님의 절대 안전 보장”(홈페이지)을 최우선 임무로 삼은 조직이라 해도 영장 집행 방해라는 위법적 지시는 통하지 않은 것이다. 체포를 방해하면 형사 처벌, 연금 박탈 등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경찰 경고가 효과를 본 측면도 있겠으나 공직사회 문화가 바뀐 영향도 크다.

'명령에 살고 죽는다'는 군도 마찬가지다. 계엄 당일 윤 대통령과 군·경찰 수뇌부는 국회에 계엄군을 투입해 계엄 해제를 막으려 했으나 현장에선 명령을 적극 이행하지 않았다. 국회에 진입한 육군특수전사령부는 시민들과의 충돌을 피했고, 수도방위사령부는 국회 등으로 향하는 특전사 헬기의 미승인 비행을 막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국군방첩사령부 대원들이 시간을 끌며 주변을 배회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경호처와 군·경찰은 상급자의 어떠한 명령도 헌법·법률 밖에서 이행돼선 안 된다는 선례를 남겼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에서 항명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박정훈 대령도 마찬가지다. 효율성 미명하에 폭력적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공직사회는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과 어울리지 않는다. 새로운 공직사회 문화를 수용하고 독려해야 한다. 내란 수사 과정에서 불법 지시에 항명한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처벌이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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