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검찰·경찰 "김신혜가 수면제로 죽였다"면서 증거도 못 찾고 재판 넘겨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수면제 탄 술을 먹여 친부를 살해했다며 김신혜(47)씨에게 25년 전 무기징역을 선고해달라고 한 검찰과 경찰이 수면제 증거는 전혀 찾지 못하고 진술 정황과 위법하게 수집돼 효력이 없는 증거만으로 기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심 재판부는 검찰이 유죄로 든 근거를 모두 배척하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은 이 같은 재판부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했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지원장 박현수)는 지난 6일 선고 공판에서 검찰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은 크게 ①고모, 고모부 등 친척 진술과 김신혜의 자백을 들었다고 하는 경찰 진술 ②피해자 부검 감정서 ③김신혜씨 주거지에서 압수된 노트 ④금융감독원 자료 등이다.
한국일보가 49쪽 분량의 김신혜씨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재심 재판부는 ①친척들의 진술이 모두 엇갈리고 김신혜의 자백을 들었다고 하는 경찰 진술 역시 신용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친척들 진술이 시작된 첫 지점이 모호하다고 판단했다. 김신혜씨로부터 처음 자백을 들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고모부인데, 재판부는 김신혜씨가 고모부 앞에서 최초로 존속살해 범행을 자백할 이유가 없다고 봤고 그 진술도 일관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모부와 김신혜는 전남 완도에서 살 때도 거의 만난 적이 없고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지 않은데, 그런 상황에서 김신혜씨가 범행을 털어놓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고모부는 이후 법정에서 "김신혜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고 진술했고, 고모부로부터 "김신혜가 의심스럽다"는 말을 들은 큰아버지 역시 자백을 들은 사람의 반응이라기보다는 의심에 가깝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김신혜씨의 진술을 온전히 듣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삼았다. 경찰은 2000년 3월 8일부터 12일까지 매일 김신혜씨에 대해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했는데, 김신혜씨가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한 3월 13일부터는 추가 조서를 작성하지 않고 15일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신혜씨가 3월 14일 고모와 접견하며 "수사관이 내 말을 믿어주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는데 조서도 받아주지 않으며 사람 취급도 안 한다"며 범행을 부인한 점을 주목했다. 또 강압적인 경찰 조사로 김신혜씨가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됐고, 그런 상태가 검찰 조사 때까지 이어졌다고 봤다.
②경찰과 검찰은 김신혜씨가 수면제 30알을 간 뒤 양주에 타서 건네는 수법으로 아버지를 죽였다고 봤지만, 정작 수면제 증거는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시신을 부검한 결과 전날 밤 중국음식점에서 잡채를 배달시켜 먹은 흔적이 육안으로 확인되는데, 위에서는 약 복용 흔적이 없었다.
재판부는 "가루 형태든, 알약 형태든 30알 이상 많은 약의 복용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술에 취해 판단력이 부족했다고 해도, 간에 좋다는 이유만으로 30알을 먹을 개연성이 낮고 30알을 갈아서 줬다고 하더라도 침전물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돼 이를 받아 마신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 없이 위법하게 김신혜씨 집에서 가져온 밥그릇과 노란색 행주 등에서도 수면제 성분인 독실아민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피해자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수면유도제 독실아민을 많이 섭취한 것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303%로 고도명정(의식 희미·혼수 직전) 상태가 합동으로 작용해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했다.
재심 재판부는 그러면서 위법한 증거 수집에 해당하는 것들은 일체 증거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찰이 압수수색영장 없이 남동생 김후성씨를 데리고 ‘임의제출’이라며 김신혜 집에서 가져온 물건들은 ‘위법한 증거’로 효력이 없다고 봤다. 김신혜씨가 피해자 명의로 가입한 보험 8개도 범행동기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재차 지적했다.
김신혜씨는 소아마비가 있는 아버지의 신체 상태를 속였고 무직 상태였던 아버지를 '선박 임대업'으로 속여 가입했다. 재판부는 "보험 가입 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며 "보험설계사 자격이 있는 김신혜씨가 고지 의무 위반으로 2년 동안 보험금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몰랐을 리 없다"고 봤다.
김신혜씨를 변호한 박준영 변호사는 "처음부터 김신혜씨를 목표로 해서 진행된 수사로, 진술받는 과정과 압수수색 과정, 자백을 강요하는 현장 검증 등 수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위법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