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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자'만 바라보다 몰락한 역대 경호처장...'尹호위무사' 박종준도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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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된 충성. 영원한 명예.'
국가 원수의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경호처는 경호 업무를 전담하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 24시간 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을 보호하는 경호처 직원들에게 충성심은 필수 덕목이다. 경호처가 처훈에서 대놓고 '하나 된 충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의 정점엔 경호처장이 있다. 역대 처장은 대통령이 신임하는 인물들로 임명됐다. 이들 중 일부는 '경호 대상자의 절대 안전'이라는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권력을 탐하거나 정치 문제와 엮이면서 '영원한 명예'를 지키는 데 실패했다.
12·3 불법계엄 사태로 내란 수괴 등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박종준 전 처장도 벼랑 끝에 몰려 10일 사퇴했다. 윤 대통령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을 가로막은 그는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권위주의 시대 유산인 경호처를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건국 초기에는 경찰이 대통령 경호 업무를 맡았다. 이승만 정부 시절의 경우 1949년 창설된 '경무대경찰서'가 지금의 경호처 역할을 했다. 제2공화국이 들어선 1960년부터는 서울시 경찰국 소속 '청와대 경찰관 파견대'가 경호 임무를 수행했다. 경호처가 별도 기구로 승격된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취임한 1963년 '대통령경호실법'이 제정되면서였다. 이때 대통령경호실이 처음 탄생했다. 경호실은 민주화 이후 문민정부를 거쳐 참여정부까지 운영되다, 이명박 정권 들어선 경호처로 격하됐다. 이후 집권한 박근혜 정부가 다시 경호실로 승격했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경호처로 환원했다.
경호처가 명칭을 바꾸는 동안 처장들 위상도 달라졌다. 경호실 체제에선 실장이 장관급이었지만, 경호처의 경우 다른 부처들과 마찬가지로 처장이 차관급이다. 역대 실장, 처장 자리엔 19명이 거쳐 갔다. 지난해 9월 윤 대통령이 임명한 박종준 전 처장은 20번째다. 역대 처장들은 군 출신이 13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호관 출신이 4명 있었다. 박 전 처장을 포함해 경찰 출신은 3명이다.
경호처장은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과 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권력 2인자'로 군림했다. 2대 경호실장이었던 박종규 전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5·16 군사정변에 참여한 군 출신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항상 권총을 소지하고 다녀 '피스톨 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후임이었던 차지철(3대) 전 실장 역시 군사정변 멤버로서 '실세 중 실세'로 통했다. 제5공화국에선 장세동(5대) 전 실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심기 경호'로 신임을 얻으며 위세를 떨쳤다. 그 또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군 출신이었다. 장 전 실장은 이후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정원장)까지 맡으며 영전했다.
군 출신 경호 수장들의 말로는 좋지 못했다. 국회의원까지 지낸 박 전 실장의 경우 전두환 정부에서 '권력형 부정 축재자'로 지목돼 의원직 사퇴 및 전 재산을 헌납하는 수모를 겪었다. 차 전 실장 사례는 극단적이었다. 그는 1979년 '10·26 사건' 당시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국정원장)이 쏜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장 전 실장은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군사반란 가담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제6공화국 출범 후에도 경호처장들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국민이나 국가가 아닌 '권력 1인자' 대통령 개인만을 바라보며 일했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이현우(7대)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전 실장 역시 신군부 세력 '하나회'의 멤버로서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재임한 김인종(14대) 전 처장은 이 전 대통령의 내곡동 자택 부지 매입 과정에서 9억여 원의 국고를 손실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전 대통령 측이 부담해야 할 매입 대금을 줄이고 경호처 부담은 늘리는 식으로 국가에 손해를 끼친 사실이 인정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도 경호실이 수사기관의 법 집행을 방해한 사례가 있었다. 2017년 2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던 특별검사팀이 청와대 압수수색에 나서자 박흥렬(16대) 전 실장은 청와대가 군사상 보안시설 및 공무상 비밀 보관 장소라는 이유를 들어 압수수색을 거부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특검팀의 수사팀장은 검사로 재직 중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박 전 실장은 국정조사 청문회의 핵심 증인으로도 채택됐지만 출석을 거부해 비난받았다.
박종준 전 처장은 경찰청 차장 출신이다. 박 전 처장은 12·3 불법계엄 사태를 주도한 김용현(19대) 전 국방부 장관의 후임으로 임명됐다. 박 전 처장은 지난 3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경호처 직원들을 동원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한 인물이다.
박 전 처장은 윤 대통령이 '버티기 모드'를 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는 10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출석해 "현직 대통령 신분에 걸맞은 수사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며 영장 집행을 비판했다. 박 전 처장은 이날 경찰 조사에 임하며 최상목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최 대행은 사직서를 수리했다.
이세환 전 대전과학기술대 경찰경호학과 교수는 박 전 처장에 대해 "박정희 정권 시절의 차지철 실장처럼 맹목적인 충성을 통해 권력을 비호했다"면서 "체포영장 저지에 동원된 경호원들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호위무사로 나선 박 전 처장은 불명예 퇴진과 동시에 경호처 폐지론을 불러일으켰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권력의 상징이었던 대통령경호실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집권 후 현실적인 문제 등을 이유로 경호실을 경호처로 격하하는 데 그쳤다.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앞다퉈 경호처를 폐지하고 대통령 경호 업무를 경찰 등으로 이관하는 내용의 법안들을 발의한 상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야당 간사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한국일보에 "경호처가 윤 대통령의 사병화되는 일이 없었다면 폐지 법안이 나올 이유가 없다"면서 "독립 기관으로 존재하는 이상 언제든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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