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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신혜 사건, 수사 과정 전반이 위법"...재심 전문 변호사도 화냈다

입력
2025.01.09 12: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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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김신혜 인터뷰… 검경 수사의 문제점>
①바뀌는 친척 진술... 김신혜는 동생 위해 허위 자백
②수면 유도제 30알로 독실아민 수치 나오기 어려워
③아버지 장애 숨기고 보험 가입 "보험금 목적 아냐"
박준영 변호사 "수사 처음부터 끝까지 위법 있었다"

24년 10개월 만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김신혜(47)씨가 7일 동생 김후성(43)씨와 지난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완도=조소진 기자

24년 10개월 만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김신혜(47)씨가 7일 동생 김후성(43)씨와 지난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완도=조소진 기자


"내 말을 한 번만 믿어주지. 얼마나 억울했는데...
경찰이랑 검찰 조사받으러 갈 때마다
'밖에서 증인이 이렇게 얘기하는데 니가 어떻게 밝힐 거냐.
각본대로 가야 한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내가 아니면 동생이 뒤집어쓸 수 있다고요."

김신혜(47), 7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어떻게 되는 걸까?
난 정말 결백하니까... 희망을 버리지 않을 거야.
빨리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마음 뿐이다.
눈앞에 친구들은 있는데 손도 못 잡고 만질 수도 없고.
할 수만 있다면 철장을 부숴버리고 싶어.

2001년 3월 19일 김신혜(47)가 동생 김후성(43)에게 쓴 편지

수면제 탄 술을 먹여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이 선고된 김신혜(47)는 사건 발생 24년 10개월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사법부가 복역 중인 무기수에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한 건 헌정사상 처음이다. 김신혜는 수감 기간 내내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유의 몸이 된 후 한국일보를 만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재심 재판부가 김신혜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무엇일까.


2000년 3월 7일 완도에서 무슨 일이

2000년 3월 7일 오전 5시 50분쯤 전남 완도군 완도읍의 한 도로 옆 버스 정류장에서 김재훈(당시 52세)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했던 그는 집에서 7㎞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었다. 경찰은 뺑소니 사고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수사했지만 고모부 진술로 수사 방향이 바뀌었다. 고모부는 경찰에 "피해자의 딸 김신혜가 아버지를 수면제 먹여 살해했다고 장례식장에서 말했다"고 전했고, 김신혜(당시 23세)는 그해 3월 9일 오전 1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김신혜는 경찰 조사에서 "수면제를 양주에 타 아버지에게 '간에 좋은 약'이라고 말하고 먹였다"고 했다. 검찰은 이 같은 진술에 더해, 김신혜가 자신과 여동생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아버지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고, 아버지 명의로 8개 보험에 가입해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살해했다고 보고 존속살해·시체 유기 혐의로 기소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검찰은 ①진술 증거 ②수면제 검출 관련 전문가 감정과 승용차에서 발견된 모발 감정 결과 ③김신혜 집에서 발견된 노트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친척들의 진술이 있고, 양주에 다량의 수면유도제를 섞어 마시면 피해자 몸에서 나온 수면유도제인 독실아민 혈중 농도(13.02㎍/㎖로)처럼 나와 치사량에 이를 수 있고, 김신혜 집에서 나온 일기장 등을 볼 때 살해 동기가 충분하다고 봤다.

“증거 능력 없다”고 판단한 재판부

김신혜씨가 사건 발생 2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6일 오후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 법정동 앞에서 김씨 측 법률대리인 박준영 변호사가 기자들에게 소회를 밝히고 있다. 해남=연합뉴스

김신혜씨가 사건 발생 2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6일 오후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 법정동 앞에서 김씨 측 법률대리인 박준영 변호사가 기자들에게 소회를 밝히고 있다. 해남=연합뉴스

하지만 재심 재판부인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지원장 박현수)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자백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형사소송법 제316조1항에 따르면, 자백 진술은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져야만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 재판부는 김신혜가 진술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면 다른 동기에서 허위 자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친척들 진술이 엇갈린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신혜는 "고모부가 장례식장 휴게실에서 '동생이 그런 것 같다'고 말해 이를 오인해 대신 처벌받고자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범행 도구가 된 수면유도제 독실아민에 대한 입증도 부족하다고도 지적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 몸에선 혈중 독실아민 수치가 13.02㎍/㎖로 나왔는데, 이는 검찰이 제시한 수면유도제 30알로 나올 수 있는 수치가 아니란 것이다. 검찰은 사망 후 약물이 장기로부터 혈액 속으로 재분포되는 '사후 재분배'로 혈중 농도가 높아졌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부검이 사망 후 35시간 만에 신속히 이뤄졌기 때문에 이 같은 농도가 나오기 어렵다고 봤다.

수사 과정도 문제로 지적됐다. 경찰은 영장 없이 김신혜 집에서 일기장 등을 압수해 계획 범죄라는 증거로 제시했는데, 재판부는 이는 위법하게 수집됐기 때문에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신혜가 아버지를 살해할 동기가 부족한 점도 언급했다. 검찰은 아버지의 성적 학대가 있었고 김신혜가 보험금 8억 원을 타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러나 성적 학대가 있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고, 김신혜가 보험금을 탈 수 없는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범행 동기가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동생 김후성(43)은 한국일보에 "이렇게라도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그동안 '아버지 김재훈'의 존재 자체를 잃어버렸었다"고 말했다. 김신혜도 본보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하늘에서도 '미안해하지 마라, 괜찮다'라고 하실 분"이라며 "이제서야 편히 눈을 감으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24년 10개월 만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김신혜(47)씨는 6일 전남 장흥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김신혜씨 변호를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와 동생 김후성(43)씨 등이 '김재훈의 딸 김신혜 무죄'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장흥=조소진 기자

24년 10개월 만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김신혜(47)씨는 6일 전남 장흥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김신혜씨 변호를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와 동생 김후성(43)씨 등이 '김재훈의 딸 김신혜 무죄'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장흥=조소진 기자


24년 10개월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김신혜(47)씨가 교도소에서 가족에게 썼던 편지. 김씨는 수면제 탄 술을 먹여 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았으나, 재심 청구 이후 10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완도=조소진 기자

24년 10개월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김신혜(47)씨가 교도소에서 가족에게 썼던 편지. 김씨는 수면제 탄 술을 먹여 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았으나, 재심 청구 이후 10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완도=조소진 기자

김신혜는 아버지 이름으로 보험에 가입할 당시 소아마비가 있는 아버지의 신체 상태를 속였고 무직 상태였던 아버지를 '선박임대업'으로 속여 가입했다. 재판부는 김신혜가 보험설계사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고지 의무 위반으로 2년 동안 보험금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몰랐을 리 없다고 봤다. 김신혜는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에 아버지에게 돈 걱정 말고 병원에 가시라고 보험에 가입했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가입한 보험 8개 중에선 수익자가 중학교 때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새어머니로 된 것도 있었고, 치료비를 보장하고 만기에 납입한 보험료를 환급해주는 저축성 보험도 있었다.

김신혜를 변호한 박준영 변호사는 "처음부터 김신혜를 목표로 해서 진행된 수사였다"며 "진술받는 과정, 압수수색 과정, 자백을 강요하는 현장 검증 등 수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위법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신혜·김후성 남매는 한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사과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완도·장흥= 조소진 기자
김나연 기자
최현빈 기자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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