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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국제 콩쿠르 우승, '1세대 피아니스트' 한동일 별세

입력
2024.12.30 14:46
수정
2024.12.3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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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후 13세 때 미국 유학
16세 때 카네기홀에서 협연해

피아니스트 한동일(오른쪽)과 그의 부모. 한국일보 자료사진

피아니스트 한동일(오른쪽)과 그의 부모.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1세대 글로벌 피아니스트’ 한동일이 별세했다. 향년 83세.

함경남도 함흥시 태생인 고인은 교회 찬양대에서 지휘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3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전쟁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1954년 13세의 나이로 유학을 떠나 미국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학사·석사를 마쳤다. 주한 미공군 사령관 새뮤얼 앤더슨 중장이 우연히 고인의 연주를 보고 감탄해 유학을 주선한 일화가 유명하다.

피아니스트 한동일. 한국일보 자료사진

피아니스트 한동일. 한국일보 자료사진

뉴욕 필하모닉이 주최한 영 피플스 콘서트 경연 대회에 합격한 후 1956년 카네기홀에서 뉴욕 필하모닉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축전과 장미를 보냈다. 1962년 케네디 당시 미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와 나란히 연주했고, 1965년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심사위원장이었던 레벤트리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한국인 최초의 국제 콩쿠르 우승자가 됐다.

뉴욕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로열 필하모닉 등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와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샤를 뒤트와 등 유명 지휘자들과 함께 작업했다. 미 인디애나대, 일리노이대, 보스턴대 등에서 교수로도 재직했다. 한국 음악의 위상을 높인 공로로 1973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2019년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해 최근까지도 현역 피아니스트로 활동했고, 울산대와 순천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1월 1일 마련될 예정이다. 발인은 1월 3일.

피아니스트 한동일이 이승만 대통령 내외를 내방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피아니스트 한동일이 이승만 대통령 내외를 내방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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