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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에 기름 부은 계엄… "코로나 때가 나았다" 자영업자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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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의 복합상가 라페스타 중심 거리는 주말인데도 썰렁했다. 얼핏 잡아도 지나는 이들이 수십 명에 불과했다. 이곳에 들어온 지 1년쯤 됐다는 한 상인은 "오늘 손님을 딱 5명 받았다"며 "임대료와 관리비, 가스비 등으로 월 400만 원씩 나가는데 손님이 너무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2003년 문을 연 라페스타는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2집 수록곡 ‘My City(나의 도시)'에서 '집 같던 라페스타'라고 언급한 곳이다. 한때 해외 팬들까지 찾는 K팝의 성지로 유명해졌지만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며 소비시장이 온라인 위주로 재편된 데다 극심한 경기침체에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고객의 발길이 급격히 줄었다. 여기에 연말에는 생각지도 못한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까지 몰아치고 있다.
라페스타 상가관리단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점포 367개 중 50개가 공실이었는데, 계엄 사태로 새 임차인을 찾기는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공실이 많다 보니 상권 자체도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한 상인은 "우리 가게도 문을 닫은 줄 알까 봐 낮에도 조명을 환하게 켜 놓는다"고 씁쓸히 말했다.
경기침체의 후폭풍이 세밑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전국 주요 상권에서는 연말연시 특수는커녕 당장 생존을 걱정하고, 그나마 상황이 낫다는 수도권도 침체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안 그래도 수렁으로 빠져들던 내수경기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로 카운터펀치를 맞았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 때가 지금보다 좋았다"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지난 13일 오후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송도센트럴파크 인근 주상복합아파트의 상업시설 두 개 동에서는 사람 그림자를 찾기 힘들었다. 1층 상가 68개 중 불이 켜진 곳은 고작 21개뿐이었고, 중개사무소가 내건 '임대' '상가 문의' 현수막들만 텅 빈 점포의 유리창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로변에 자리 잡은 분양홍보관도 적막했다. 이 상가는 2019년 분양 때만 해도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는데, 5년이 흐르고 남은 건 잿빛 현실뿐이었다.
당시 주상복합아파트 평균 청약 경쟁률은 200대 1을 넘었다. 상가 주변 송도센트럴파크와 인천지하철 1호선 두 개 역을 오가는 유동 인구는 연간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상가도 상종가를 쳤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거액의 계약금을 포기하는 수분양자들이 속출했다. 계약 해지 물량 재분양이 진행 중이지만 경기침체에 비상계엄 사태라는 악재가 맞물렸다. 전용면적 54.5㎡ 기준 8억6,500만 원이었던 분양가는 계약금(10%)이 빠지면서 7억7,850만 원으로 떨어졌지만 관심은 5년 전만 못한 상태다.
지난 18일 송도국제도시와 인천대교로 연결된 인천 중구 영종하늘도시도 1층에 임대 현수막이 나붙은 신축 건물이 즐비했고, 기존 건물에도 공실이 적지 않았다. 한국부동산원이 분기마다 내놓는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영종지역 집합상가 공실률은 24.16%나 됐다. 이곳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기성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인천 중구지회장은 "영종도 신도시 상권은 어느 정도 업종이 갖춰져 신규 진입이 어렵다"며 "거기에 상가 공급이 과잉인 상태에서 경기까지 나쁘니 폐업과 함께 공실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상권 침체는 통계에도 나타난다. 법원 경매 정보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경기지역 경매 건수는 546건으로 지난해 연간(414건) 실적보다 31.8% 늘었다. 같은 기간 서울도 616건에서 773건, 인천은 38건에서 60건으로 증가했다.
수도권 상권 침체 이유로는 상업시설 과다 공급도 지목된다. 라페스타만 해도 '현대식 전통시장'을 표방한 지상 10층, 점포 500여 개 규모의 웨스턴돔이 일산문화광장을 두고 마주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상업시설이 포함된 원마운트와 아쿠아플라넷이 있고, 지하철 3호선 라인(백석역~마두역~정발산역)을 따라서도 크고 작은 상가들이 들어섰다.
여기에 호수공원 건너편 K컬처밸리와 방송영상밸리 등에 상권이 추가될 예정이라 동반 쇠락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주변 공인중개사들은 예상했다.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수도권은 도시 조성 과정에서 상업시설이 과다하게 공급됐다"며 "결국 상권 간 충돌이 발생해 공실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지역이 수도권에는 한두 곳이 아니다. 서울 주변에 조성된 신도시를 중심으로 고만고만한 쇼핑몰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폐업하는 점포도 늘고 있다.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에 따르면 경기 지역 소상공인들의 개업 대비 폐업 비율은 2022년 0.59에서 올해 상반기 1.01로 상승했다. 이 비율이 1을 넘으면 문을 여는 점포보다 닫는 점포가 더 많다는 의미다.
폐업은 고스란히 소상공인의 짐이 되고, 수도권은 창업 비용이 많은 만큼 폐업 부담도 더욱 크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상가 건물 임대차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경기와 인천 소상공인 창업 비용(보증금+권리금+시설비+원자재비+가맹비)은 각각 1억1,623만 원, 1억258만 원으로 전국 평균(9,485만 원)을 크게 웃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고금리로 소비 여력이 줄어든 데다 경기 부진에 최근 정치적 혼란까지 겹치면서 소비가 잔뜩 움츠러들었다"며 "상인들도 매출은 안 오르는데 임대료·공공요금·재료비 등 비용은 상승하니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리고, 가격이 상승하니 손님이 오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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